터닝 포인트
사람에게 시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위기에 닥쳤을 때 우리는 직관력이 높아지기도 하고 무언가를 결심하게도 된다. 나의 경우에는 첫사랑과 헤어지고 처음으로 콘택트렌즈를 꼈던 때가 외모 꾸미기의 첫 번째 변환점이었던 것 같다.
처음 안경을 쓰기 시작했던 초등학생 때부터 그 날까지 나는 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주변에서 안경을 벗어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눈에 렌즈를 넣는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났다. 눈에 작은 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아프고 불편해서 어쩔 줄 몰랐는데 그 커다란 렌즈를 눈에 집어넣는다니. 그것도 내가 내 눈꺼풀을 뒤집고 렌즈가 눈동자에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습적인 재채기가 터질 때도 본능적으로 눈을 감게 되는데 내 눈 앞에 커다란 이물질이 들어온다는 것이 뻔히 보여서 겁이 많이 났다. 처음에는 한쪽에 렌즈 끼우는데만 삼십 분은 걸렸던 것 같다. 렌즈를 삽입한 곳은 앞이 잘 보이고 나머지는 아직 흐릿한 그 묘한 기분. 어렵게 렌즈를 양쪽 눈에 다 넣고 나서 그다음에는 눈 화장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 인생에 가장 열심히 정성껏 화장한 때인 것 같다. 새내기 때 친구가 메이크업 베이스를 사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내가 사본적은 없었다. 마스카라도 하고 쉐도우도 바르고 나가면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갑갑한 기분도 들었다. 눈곱이 생기는 자리를 수시로 만지는 편이라 눈 화장이 번지는 일이 많았고 화장한 내 모습이 썩 예뻐보이지 않았다.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였다. 한 친구가 꾸준히 내게 “얘, 너도 화장한 게 훨씬 나아.”라고 이야기해줬는데 그때는 잘 와 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참 자만했구나 싶다. 하하하.
최근 나는 두 번째 외모 터닝 포인트가 온 것 같다. 예전에는 나를 꾸미는 것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만이라고 생각해서 뭔가 자존심을 접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요즘 내면과 자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진정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가꾸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게으른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부정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이가 되기 위해 애쓰고 갈고닦을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