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이동할 때마다 다같이 음악을 듣는다. 불과 2년 전쯤만 하더라도 우리의 배경음악은 반드시 뽀로로나 타요 등 유아 만화 주제곡이었디(괴로웠다 솔직히). 그러다가 서서히 좀 더 연령대가 높은(그래 봐야 7세 이하 관람가 만화지만) 만화의 주제곡으로 선곡이 바뀌고 작년 여름에는 드디어 아이들이 가요를 듣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듣고 왔노라며 'Pick me'를 들려달라고 한 후로 조금씩 가요 선곡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요를 들려주면서도 늘 조심스러운 부분이 바로 가사였다. 아이들이 글을 쓰고 읽을 줄 알게 되면서 어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몇 번 들려주지 않은 것 같은데 집에서도 함께 들었던 가요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아이들과 동요를 들을 때부터 귀를 쫑긋 세워 가사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려 애썼다(전래동화의 여성상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더 신경 써서 듣는 편이다). 요즘은 발랄하고 기분 좋아지는 걸그룹이 노래를 주로 들려주려고 하는데 걸그룹의 노래 가사에도 시대상이 참 많이 반영되는구나 느껴졌다.
오늘과 가장 가까운 노래일수록 그 내용은 걸 크러쉬와 자기표현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그에 비해 과거로 가면 갈수록 짝사랑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이성에게 수줍게 고백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즐겨 듣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사랑, 이별 둘 중 하나였다가 본인의 멋짐을 표현하는 새로운 갈래가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걸그룹의 노래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기가 참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래의 목적은 남성팬들의 마음을 훔치는 데 있었기 때문에 남자 친구에게 매달리거나 그에게 휘둘리는 내용이 생각보다 참 많았다. 세상에.
5년 전쯤 나온 노래에도 '널 위해 내가 잘 못하는 요리나 모닝콜도 해주겠다', '네가 심심하지 않게 내가 하루 종일 웃게 해 주겠다' 등의 가사가 나온다니. 딸들에게 들려주며 꼭 한마디 덧붙이는 삐뚤어진 나의 모습. 하하하
"얘들아, 이렇게 한쪽이 다 맞춰주는 건 좋은 게 아니야. 너희들을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렴."
얼마 전에 본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장면이 나왔다. 예전 같으면 나도 같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는 그 장면이 그저 오글거리는 순간이 된 건 왜일까. 내가 무덤덤해진 걸까, 아니면 시대에 맞지 않는 모습이라서 일까.
영원한 사랑을 믿었던 내가 정말 낯설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