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차

귤을 구워봤다

by 글쓰는 달

노지에서 자란 귤을 잔뜩 따왔다. 겉모습은 투박하지만 싱싱하고 껍질이 굉장히 두꺼워서 내가 까기에도 어려워서 자꾸 방치되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에어프라이어에 귤을 구웠다.


방송에서 종종 귤을 재배하는 분들이 별미라며 귤을 구워드시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시원하게 먹어온 귤을 구워 먹는다니 무슨 맛이 날까 궁금했다. 파인애플도 구워 먹으면 더 달콤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귤은 어떨까 기대가 절로 되었다.


향긋한 냄새가 퍼지고 나서 그이는 나만큼이나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짙은 갈색으로 구워진 귤을 꺼내왔다. 한 번도 뒤집지 않아서 윗부분만 초콜릿 바른 듯 그을리고 공갈빵처럼 쪼글거리는 모습이었다. 귤을 좋아하는 큰 애의 감상부터 듣게 되었는데 아이 입맛에는 안 맞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안 먹었다. 하하.


거실에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밀크티 향이 진하게 풍겼다. 여기저기 들춰봐도 냄새의 진원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구운 귤을 보게 되었고 코를 갖다 대는 순간 궁금증은 풀렸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귤에 엄지 손가락을 비스듬히 밀어 넣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굽기 전보다 껍질은 얇아졌지만 아주 쉽게 까지는 것도 아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어 터뜨리는 순간 익숙한 맛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바로 단단한 유리병 안에 담겨있던 오렌지 주스 맛이었다. 귤을 끓여서 냉장 보관하는 그 주스 맛. 그래서 애매하게 시고 달큰한.


그리고 알았다. 굳이 다시는 안 먹을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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