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달 Dec 06. 2020

66일 차

다시 만난 세계

 그러니까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한참 세일을 진행하고 있는 잡화점에 들어갔다. 평소에 그 가게에 들어가는 이유는 아이들 알로에 로션이나 나이트 바디 오일 살 때 정도였는데 오늘은 굳은 결심을 하고 입장했다. 당장 내가 사야 할 물품에 대해 미리 예습을 했기 때문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발을 내디뎠다. 친절한 점원이 내게 말을 걸기 전까지!


 사실 내가 보고 온 브랜드의 세부 설명을 듣고 결정을 확실히 하고 싶어서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지만 친절한 점원은 내게 필요한 정보도 주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고객님, 혹시 꼭 이 상품을 쓰셔야 하는 것 아니시라면 이 제품은 어떠세요? 가격도 아까 보신 제품보다 더 저렴하고 기능도 나쁘지 않아요.”라는 말과 함께 나를 새로운 브랜드 앞에 데려다주고 미소와 함께 사라지셨다. 그때부터 나는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은 검색하면 다 리뷰를 가장한 광고글이 나오지 않는가. 하여 점원이 내게 소개해준 제품에 대한 극찬만 가득했다. 그리고 미리 조사해오지 않고 진열대 앞에서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딘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점점 체온이 높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첫 번째 아이템은 그럭저럭 점원의 추천을 믿기로 하고 골랐는데 두 번째 제품도 나의 예상을 초월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된 제품은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히 단어를 따로따로 읽으면 무슨 말인지 아는 것들인데 여러 단어를 나열한 제품 이름은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롱 볼륨’이랑 ‘볼륨 롱’처럼 같은 단어를 앞뒤 순서만 바꿔서 표기해놓고 가격도 다르게 팔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또다시 점원의 조언을 기대하며 수줍게 손을 흔들었는데 아까보다 시크한 태도의 점원의 짤막한 설명은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하하하. 긴 결심 끝에 가장 잘 팔린다는 제품을 집어 들었다.


 메이크업에 대한 도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화장이라고는 1도 안 하던 범생이였기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딱히 그 분야를 발전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한 달 코스로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도 나의 상태를 보시고 “그래, 이젠 너도 배울 때가 되었지”라며 흔쾌히 학원 등록을 도와주셨다. 하지만 그때 내가 배운 기술은 딱히 없다! 그저 강사님 덕분에 비싼 화장품 브랜드만 잔뜩 알게 되고, 학원에서 우리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백화점에 매일 들러서 내 나이에 맞지도 않는 고가의 화장품들을 섭렵하는 배짱만 늘었다. 하하하. 그래도 그 덕에 뷰러 사용법도 알게 되고 마스카라도 바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다시 시험 준비하면서 화장은 립글로스 하나로 그냥 끝! 이 되어 버려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립과 눈썹까지는 꼭 하려고 노력한다(아예 안 하던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아는 척보다는 무지를 인정하는 편이 더 낫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 모르는 채로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노력해보는 게 덜 창피한 일인 것 같다.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러 다닌 적이 없는 것이 예전에는 자랑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젊을 때 이것저것 안 해보고 곱게(?)만 살아온 것이 아쉽고 후회되는 요즘이다. 여하튼 외모 가꾸기에 대해 그동안은 모른 척하고 살았지만 다시 그 세계에 진입하기로 결심했으니 이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자주 나를 돌봐야겠다. 얼마 전에 래퍼 스윙스가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타인에게 무시받지 않으려면 해야 할 기본이 외모 가꾸기라는 말을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나 자신이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살아가 보고자 한다.


 메똥 이지만 괜찮아, 곧 호박에 흔들림 없는 아이라인을 그릴 날이 올 것임을 믿자! 지지 말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 65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