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달 Dec 09. 2020

69일 차

자세히 들어야 아름답다

 좋아하는 가수가 미니 앨범을 냈다. 앨범 출시 전부터 앞으로 나올 새로운 음악에 대한 기대가 커서였을까? 뮤직 비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만난 그들의 음악은 생각보다 강렬하지 않아 살짝 밍밍한 느낌이었다. 그 후로 차로 이동할 때나 설거지할 때 등등 생활 속에서 그 노래를 틈틈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작은 아쉬움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서서 큰 기대 없이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그들의 노래를 들었는데, 와! 그동안 내가 들었던 것과 전혀 다른 사운드가 펼쳐졌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CD와 스트리밍 사이에서 갈 길을 잃고 한 동안 음악 감상과 거리를 좀 두고 지냈다. 특히 출산하고 난 후로는 혼자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잘 없었다. 아이들과 있을 때 내 귀는 항상 아이들에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소리를 막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등원하고 나서도 변변찮은 스피커가 없어서 그저 휴대전화에 있는 내 손톱보다도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도 아마 설거지를 앞두고 음악을 듣게 된 것 같다. 휴대전화 구입 시 기본으로 들어있던 이어폰을 휴대전화에 연결하고 평소 듣던 음원을 재생해서 들었는데 그동안 못 들었던 소리가 잔뜩 들려서 놀랐다. 다양한 악기 소리, 더 잘게 쪼개지는 비트 등 그동안 내가 온전히 듣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리는 음악가가 내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의 정말 일부분밖에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음악은  일상의 배경을 담당하게   같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해 본 시간이 언제였을까. 예전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이 나오면 자켓커버부터 가사집까지 샅샅이 다 훑고 플레이리스트를 줄줄 외우고 가사를 숙지해서 콘서트에 가서 가수보다 더 자신 있게 노래를 따라 불렀던 것 같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음악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여러 번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나조차도 음반을 사는 일이 확 줄어들었고 다루기 쉬웠던 파일들을 찾아 헤맸고 운전하는 시간이 아니면 음악 감상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본 지 오래된 것 같다. 그나마도 요즘은 영상물에 많이 밀려 음악만 듣는 일은 더 줄어들었다.


 휴대전화, 블루투스 이어폰, 스피커로 내 공간에 음악을 초대한 적은 있지만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나와 음악만 남아 압도당하는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가수의 숨소리, 더 섬세해진 현악기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 밀려와 나를 감성의 한가운데로 밀어버린 느낌이었다. 비록 아이들이 내게 부탁하는 몇몇 가지를 놓치기는 했지만 가정보육으로 인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만의 시간을 짧고 강하게 즐긴 셈이다. 들을수록 노래가 더 좋고 예전에 듣지 못했던 것들까지 풍성하게 들리는 이 현상이 기쁘고 신기하다. 그래서 결론은 좋은 스피커와 음반 재생기를 사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끝.

작가의 이전글 68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