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짧게, 빠르게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 등의 본방사수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에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도 보지 못해서 대중적인 문화 이해가 어렵기도 했고 더 이상 뒤쳐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동영상 다시 보기 서비스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가족들 모두 출근시키고 나서 혹은 일을 할 때는 주말에 몇몇 프로그램들을 몰아서 보았는데 그 재미가 꽤 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드라마보다는 예능 시청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급기야 요즘에는 유료로 사용하는 동영상 다시 보기 서비스보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들에 더 자주 눈이 간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대부분 16부작을 기준으로 제작된다. 한 회는 평균적으로 60분에서 80분 정도 되기 때문에 한 작품을 정주행 해서 끝내는데 2~3일이면 가능한 구조다. 매주 새로 올라오는 영상을 챙겨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휘몰아치며 보는 것도 굉장히 몰입도가 높고 재미있다. 단점은 1회를 보기 시작하면 최종회까지 다 볼 때까지 다음이 궁금해서 금단 증상 같이 괴로움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어서 다음 회차를 보고 싶은데 오늘따라 빨리 잠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원망이 들기도 하고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있다. 잠을 줄여야 하고 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들을 소화하면서 동영상 시청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어느새 내가 동영상을 고르는 기준은 긴 호흡보다는 짧고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예능프로그램도 한 회가 한 시간이 넘어가기 때문에 역시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다 보기에는 좀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10분 내외의 동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유튜브에 자꾸 기웃거리게 되었다. 유튜브 시청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미 몇 년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을 알게 되면 그야말로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 든다. 화수분처럼 보고 또 봐도 못 본 과거 영상이 올라오고 그것들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동영상이 업데이트된다. 또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새로운 유튜버에게 데려다 주기도 한다.
어느새 나의 지성적 멘토가 된 나의 동생은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보다 독서를 더 선호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자신이 시간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확실히 동영상은 내가 시간 조절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모든 시간 내내 내게 즐거움과 흥분을 주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그런 것들을 참고 재미있는 구간을 기다리는 게 지루하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내 인내심이 짧아지는 것도 같고 이래서 어린아이들에게 티비를 과도하게 보여주지 말라는 것일까 저 멀리까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