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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달 Dec 12. 2020

72일 차

시계를 샀다

 어제 외출하려고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했다. 손목에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 예고도 없이 툭 시계줄이 끊어졌다. 급히 다른 시계를 찾아 손목에 거는데 이런! 이 시계는 어느새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멈춰있었다. 난감하네.


 장신구 착용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그나마 유일하게 꾸미는 것이 손목시계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장 난 시계 두 개 모두 십 년 정도 썼던 것 같다. 하나는 디자인이 특이해서 내가 샀고 하나는 선물 받았던 것이다. 선물 받았던 시계는 내가 처음으로 해 본 메탈 재질이었고 예뻐서 꽤 오래 좋아했다. 정장 입을 때 그 시계를 손목에 차면 평소보다 나 스스로 꾸민 것 같고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 시계 이후로 한 번도 다른 시계를 사본 적이 없었다. 디자인이 특이했던 시계는 줄 교체만 두 번 했는데 이제 우리 동네에는 해당 브랜드 매장이 모두 철수해서 결국 줄 교체를 하지 못하고 그냥 들고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새 시계를 사버렸다.


 줄 교체를 위해서 백화점에 갔다가 처음 방문한 매장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시계를 발견하고 말았다. 내공이 엄청난 점원께서 내 취향에 딱 맞는 시계를 추천해주신 데다가 그분에게서 퍼져 나오는 우아함과 경쾌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우라에 반해버렸던 것 같다.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한 가격의 예쁜 모델을 내 손목에 두르고 집에 왔다. 지금 내 상황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제품이지만 이 시계가 내게 주는 의미는 크다.


 내가 백화점 오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찾게 해 주었다. 좋은 냄새와 깨끗한 새 물건이 가득하고 친절하고 준비된 직원이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로 응대해주는 곳. 내가 더 나아질 수 있게 상담하고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해주는 곳. 비록 그것이 돈으로 산 친절이라고 해도 준비되어 있는 외모와 매너로 무장한 점원들과 좋은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참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도 전환되고 더 예뻐져서 집에 올 수 있고.


 십 년 간 내가 새 시계를 살 생각을 못했던 생각을 뛰어넘어 나 스스로 결정해서 시계를 사면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동안 내게 맞지 않는 모습으로 맞춰가기 위해 애써온 것이 살짝 억울하게도 느껴졌는데 또 잘 생각해보면 그걸 선택한 것도 나니까 다른 사람을 탓할 수는 없네. 하하하.


 올해는 이것저것 새로 시작하는 게 참 많다. 내년을 위해 남은 20일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시계가 참 예쁘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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