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체감의 역습
올해 잘한 일 중에 하나는 사과 패드를 구입한 일이다. 구입하기 전 어떤 모델이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가성비가 좋은지 한참 고민했다. 유튜버들의 실제 체험기를 많이 찾아보고 주변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주사율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부 모델에만 적용된 120Hz를 경험하고 나면 일반적인 모델로 돌아갔을 때 60Hz의 주사율을 만났을 때 역체감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평균 3년 정도마다 교체하는 나는 전자기기에 대한 역체감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늘 사용하던 것보다는 좋은 스펙을 가진 전자기기를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체감이란 것이 꼭 전자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싶다.
내 삶에 가장 대표적인 하이브리드템은 바로 ‘고무줄 바지’이다. 이왕이면 스판 소재가 함유된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나도 처음부터 고무줄 바지를 입었던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내 하의는 단추나 지퍼, 훅으로 허리 부분을 고정해서 입는 것들이었다. 첫 번째 임신 기간 동안 입기 시작한 고무줄 하의는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꾸었다. 퇴근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가스로 인해 복부 팽창이 심해져서 출근 때마다 허리 부분에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 옷을 입어야 할까 고민했는데 신축성이 좋은 고무줄 바지는 그런 고민 따위 날려주었다. 내가 어떤 상태이든 내게 다 맞춰주던 사랑스러운 그 이름 ‘고무줄 바지’. 하지만 그렇게 너그러운 그 아이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기 점점 버거워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늘 애용하던 옷가게에 가서 겨울 바지를 한 벌 사 왔는데 아뿔싸! 이 녀석은 바지 일부분에만 고무줄 처리가 되어 있고 앞은 금속 단추로 잠그고 지퍼를 올려야 하는 구조였다. 그동안 앞뒤만 구별된다 뿐이지 지퍼나 훅, 단추가 달린 바지는 사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이 옷을 사버리다니. 교환하기도 애매해서 일단 옷걸이에 걸어두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무심코 입어보니.... 오오! 아주 편안한 핏은 아니지만 일단 복부를 욱여넣고 나니 단추가 잠기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그 뒤로 가끔씩 그 바지를 꺼내서 입어보고 있다. 조만간 바지가 내게 맞춰지든 그 반대가 되든 하지 않을까 싶어서 긴 시간은 무리지만 한 시간 정도는 입고 있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스판 재질도 아니라 신축성도 없고 고무줄 밴드도 없어 허리 부분이 좀 갑갑한 느낌도 들지만 그 때문에 배에 힘을 꽉 주고 걷게 되어 자세도 좋아진 기분이다. 우와!
신축성에 익숙해져 있다가 얄짤없는 바지를 입어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강산이 바뀐다는 시간 동안 서서히 변해버린 내 체형을 기성복에 넣어보며 더 나은 모습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든다. 그리고 내 배를 잡아주는 고마운 단추 덕분에 용기가 생겨서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하나씩 못 입었던 옷들에 내 몸이 쏙 들어가지길 희망하며 커피 한 잔 한다. 호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