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선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거리에 대해 민감한 요즘이다. 그동안 미미하게나마 바뀌고 있던 개인주의적 사고 확대에 확실한 가속도를 붙여준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개인주의는 꽤 멋진 개념이었다.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고 타인에게 간섭받거나 당하지 않는다는 질척이지 않고 세상 쿨한 냄새가 풀풀 나는 시크한 느낌. 이기주의보다는 내게 유리하고 이타주의보다는 내게 편한 그런 말.
개인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이전부터도 있었다. 내 일기장을 부모님이 볼 수 없게 자물쇠가 있는 것으로 구입하거나 숨기기, 사춘기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는 내 방문 걸어 잠그기 등 간섭이나 사생활 침해를 벗어나고 싶은 예전부터 이어진 인류의 욕망이 있었다.
내가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한동안 드라마나 순정 만화에 아무것도 듣지 않으면서 괜히 이어폰 끼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다 듣고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는 장면은 익숙한 공식 같은 느낌이다. 그 침묵을 깨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하려면 굳이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을 흔들어서 그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빼서 듣게 할 만큼 내 이야기가 중요한가 라는 자기 검열을 하게 될 것이다. 어지간히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침묵을 깨는 일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물론 꿋꿋한 분들도 계신다).
이어폰(헤드폰 등) 다음에는 스마트폰이 비슷한 역할을 해주었다. 지하철을 타도 거리를 걸어도 눈과 손을 뗄 수 없게 하는 존재. 심지어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서로의 존재를 잊게 하거나 소홀하게 만들 정도의 위치에 있는 스마트폰. 사실 그다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서로의 자유를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의 세계에 갇혀있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요즘의 분위기.
게다가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에 그나마 남아있던 따뜻한 연결고리까지 끊어버려서 소소한 위로마저 타의로 인해 차단당해 마음이 괴롭기도 하다. 완벽한 집순이, 건어물녀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는 나를 집 밖으로 더 나가고 싶고 무언가에 도전하기 좋아하는 품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사랑할수록 더 만나면 안 되는 이 상황이 어서 끝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