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내 발밑까지 스미는 시각에 잠이 들곤 했다. 그런 새벽에 잠을 자면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오후 늦게서야 살아있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일어나게 된다. 시선이 닿는 어느 곳 하나 정리되어 있지 않던 그곳엔 잎이 바싹 마른 화분 두 개와 밖으로 나갈 유인을 만들지 않는 수많은 전선들, 그 자체로 침구류가 되어버린 옷무덤으로 가득했다.
공복에 빨아들이는 담배연기는 메마른 땅에 날리는 흙먼지처럼 가슴속을 뒤덮는다. 남은 잠을 물리려 한 개비 더 집어 들곤 하루를 시작한다. 누런 바닥엔 내 것이라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껍질과 털들이 널려있는데 매트리스뿐이던 침대를 벗어나면 끈적한 바닥에서 그것들이 발바닥으로 달라붙었다.
주린 배 탓에 습관적으로 부엌(으로 겨우 구분할 수 있는 공간)을 향하지만 쌓인 접시들엔 언제인지 모를 음식찌꺼기가 그것을 지키는 날파리들과 함께 산화되고 있을 뿐이다. 냉장고를 열어본들 생수 반 병 외에 입으로 넣을 수 있는 건 없다. 날파리가 지키는 그것들과는 또 다르게 나름의 역사를 남기며 썩어가고 있다. 흙먼지 덮인 몸속에 물 한 덩이 축이고 집을 나서는 것, 이 역시 반복되는 일상이다.
추억이라 껴안기엔 퍽 잔인하고 반복적이던 삶의 어둑한 공실, 그곳에서 기어올라와 마주치는 것들 중 나에게 희망이라 할만한 건 없었다. 햇살 아래 분주하게, 때론 웃는 표정이란 걸 지으며 하루를 채워가는 이들. 그들과 나 사이에 깊게 박힌 촘촘하고 두터운 벽을 상상할 뿐이다. 그렇게 담배 한 개비를 더 물며 발목에 아스라이 매달린 갈색 구두를 번갈아 앞으로 밀어낸다.
<구스펍> 앞에 도착할 때쯤엔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때 하루 중 유일하게 더위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밤까지 이어질 추위를 생각하면 외투 안에 머무는 후끈함이 벌써부터 아련하다. 이제 마른오징어에서 물을 짜내듯 있는 힘을 다해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앰프를 내려놓고 스탠드를 세운다. 기타와 마이크를 앰프에 연결한 후 음을 조율하며 호흡을 고른다. 아무것도 없던 길바닥에 내 잡동사니들이 깔렸다.
땀이 식어갈 때쯤 현을 튕기고 자작곡 <불빛이 내리던 밤>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 길목에 기타 케이스를 열어 두는 걸 깜빡했다. 먹고살려면 필요하다. 다시, 노래 시작.
그 해의 마지막 밤
소녀의 마지막 바로 그 밤
살 에이는 추위보다 아픈-
창 너머 크리스마스트리와
따뜻한 웃음소리 들리던 밤
작은 성냥 하나가 온기를 더해줄지도 몰라
작은 성냥 하나가 온기를 더해줄지도 몰라
다 타버린 소녀의 성냥
다 타버린 소녀, 그리고 성냥
소녀의 마지막- 바로 그 밤
불빛 내리던 밤에
난 어디에- 있었을까
광장에 도착할 때쯤 맞은편에서 1미터 남짓 테이블에 보라색 천을 덮고 있는 그녀를 보곤 한다. 한 치수 커 보이는 검은색 패딩 점퍼와 청바지 차림 위로 오후 내내 해를 피할 흰색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나보다야 깔끔한 행색이지만 긴 시간 마주치다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몇 안 되는 옷들을 주기적으로 번갈아 입고 있다.
눌러쓴 모자 탓에 얼굴은 자세히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녀가 꽤 작은 체구라는 것이다. 길에서 마주친다면 여인보다는 소녀로 착각할 정도. 그리고 그 체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짐들을 들고 나타난다. 그 모습이 비용절감을 위해 차체보다 큰 짐들을 쌓고 달리는 과적차량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일 그 짐들을 양 어깨에 매달고 한 손에 테이블 프레임을 들고 나타난다.
보라색 천을 깔고 나면 신중한 모습으로 테이블이 수평인지, 천에 구김 간 곳은 없는지 몇 번이나 살피고서야 더플백을 열고 야광 장식품들을 꺼낸다. 테이블에 쏟아 놓고 정리해도 될 것 같은데, 그녀는 마치 순서라도 정해진 것처럼 하나씩 꺼내서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생일 케이크에 초를 꼽듯 정성스레 놓았다.
놓아진 장식물들의 모양이 다양하다. 해, 달, 나무와 같이 형태가 분명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날갯짓하는 오리, 노래하는 모습의 인어처럼 나름의 주제를 가진 듯한 종류도 있었다. 어쩌다 관심을 가진 행인에게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모두 직접 만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 거리의 인파가 붐비는 오후 시간대에는 그 모든 창조물들이 태양의 압도적인 빛에 가려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태양이 붉은빛을 띠며 라파엘 성당 너머로 사라지고 어두운 밤의 배경이 깔린 후에야 이윽고 하나둘씩 자신만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달은 밤하늘의 달이 되고, 노란빛의 오리는 달 주변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인어공주의 분홍빛 노랫소리가 오리를 따르며 하모니의 선율을 이룬다. 아름답다. 하지만 그때의 광장은 인파가 없다. 고요하다.
해가 지기 전 더플백에서 나왔던 녀석들은 깊고 걸쭉한 밤이 되어서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행인에게 팔려 새로운 이야기를 갖게 된 녀석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들고 왔던 것들을 작은 몸에 차곡차곡 실은 뒤 광장 구석의 골목으로 사라지곤 했다. 솔직히 그녀를 보고 있자면 내 처지가 조금 더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한 걸음 더 뻗으려던 발끝도, 내가 살아가길 원치 않는 세상에 밀려 점차 그 의지를 잃어갔다. 특히 오늘 저녁엔 그것이 더 실감 난다. 휑한 기타 케이스 안의 동전 몇 개로는 한 끼 식사만 겨우 해결할 수 있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노래를 불렀지만, 결국 이렇다.
더는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 술 몇 병을 사서 광장 구석에 털썩 앉았다. 담벼락이 품고 있던 냉기가 등을 타고 몸 전체로 퍼진다. 감각이 사라지던 손 끝을 움직여 기타 현을 겨우 튕긴다. 병목을 입으로 밀어 넣고 가득 술을 채운 후 삼켰다. 떠밀려 나오는 숨에 노래인지 모를 것을 얹는다.
소녀의 마지막… 바로 그 밤
불빛 내리던 밤에
난 어디에 있었을까.
오- 성냥팔이 소녀여
그 밤에 있었다면, 내가 있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굶주렸던 몸과 세포들은 별안간 들어서는 알코올을 기다렸다는 듯 흡수했고 그만큼 나는 빠르게 의식과 멀어져 갔다. 그대로 두었다. 이대로 광장 옆의 강을 따라 흘러가도 괜찮을 게다. 나 하나 사라져도 신경 쓸 사람 따위 없으니.
그러다가 감고 있던 눈꺼풀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피부에도 그 불빛의 온기가 느껴졌다. 분명히 그랬다.
“저기….”
눈을 뜨자 푸른색의 기타가 환히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밝고 영롱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지난 시간의 위로가 되는 것처럼 가슴속 흙먼지가 사라지고 아릿한 느낌이 이어진다. 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순간에 보았던 장면이 이런 것일까.
“이거… 드리려고요.”
그 기타 뒤로 야광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기타는 그녀의 작은 손 위에 놓여서 홀연히 빛나고 있었다.
“이걸… 왜 저한테…”
그녀는 내 옆에 풀썩 안더니 두 손에 놓인 푸른빛의 기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몇 번이나 용기를 내고 싶었지만 못했다고. 오늘은 꼭 말을 해야겠다고.
“이 모든 것들 그만두고, 사라져 버릴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녀가 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밤, 맞은편에서 들려온 노래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보라색 테이블 뒤에 몸을 웅크리고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천천히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노래는 이어졌다. 마치 자신을 위한 노래인 것처럼.
“그때 만들어둔 건데, 한참이나 지나서 드리네요. 정말, 감사했어요.”
그녀는 푸르게 빛나는 기타를 내 품에 놓아주었다. 마치 케이크에 초를 꼽는 것처럼 천천히, 신중하게.
“아… 이건, 그… 저는….”
뭔가 말다운 걸 뱉어보려 했지만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기침 비슷한 것과 눈물만이 불규칙하게 쏟아졌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다만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다. 내 노래를 마음속 깊이 들어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에 담아둔 진심을 그대로 헤아리고 살아간 이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가 노래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런 일상,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
나는 수없이 연주했던 코드를 마치 처음 짚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누르며 천천히 현을 울리기 시작했다. 노랫말을 흘려낸다. 그것이 눈물과 함께 구스펍 광장의 하늘로 떠오른다.
오- 성냥팔이 소녀여
그 밤에 있었다면, 내가 있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이 노래를 들려줄 텐데
성냥팔이, 소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