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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14. 2016

여섯 발자국의 힘

#15. 군중심리를 일으키기 위한 조건


 <봉순이네 다락방 시음회>


짙은 흑색 보드의 입간판에 봉순의 필체가 오밀조밀 묻어있다.

그 옆으로는 봉다방의 화려한, 그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샛노란 색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위 형형색색의 미니 컵들과 ―봉순이 직접 고른 원두 모양의 보온병이 그 화려함을 더한다. 보온병 안에는 살얼음 흐느적거리는 냉커피가 얄궂은 초여름 더위와 신경전을 펼친다. 전방에 배치된 미니 컵들도 그 몸 가득 냉커피를 품고 비장하게 도열되어 있다. 우리는 시음회를 하고 있다.


짙은 간판, 밝은 테이블, 수려한 컵들. 그 시각적 강렬함으로만 본다면, 이 회색빛의 시장 골목에서 우리가 눈에 안 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터운 분칠 위로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한 노랑머리 여학생이, 수업 중인 강의실의 앞문을 열었다고나 할까. 심지어 무지개 색의 옷을 입고!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도 그 여학생을 봐주지 않는다. 봉순이네 다락방 시음회입니다. 우리의 애틋한 외침과는 달리, 흘러가는 사람들은 손끝의 과자를 채가는 갈매기처럼 살얼음 잔만 쏙 받아서는 사라졌다. 그 야속한 인파의 흐름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야심 차게 문을 박차고 나온 뒤 한 시간 만에, 다시 그녀의 팔을 잡는다.


"또 왜?"


봉순의 눈에서 쌍심지가 피어오른다. 눈을 마주치면 내 동공까지 태워버릴 기세다. 난 그녀의 인중 부근인지 또는 볼 부근, 여하튼 눈이 아닌 그 어떤 곳을 바라보며 심경을 토로한다.


"좀 더, 좀 더 인상적인 뭔가가 필요해."  


나의 과거는 어땠지.

나는 '계획 부자'였다. 수많은 계획과 설계들. 하나의 원대한 계획을 짰을 땐 마치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양, 벅찬 기분이 일렁거렸다. 그렇게 어느 지점부터인가 난 계획의 부자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필름이 영사기를 통해야만 스크린으로 비치는 것처럼, 계획에는 실행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 뒤따라야 했다. 난 실행에 있어서는 빈민이었다. 게으른 성격은 아니었다. 신중함, 완벽함. 항상 그 녀석들이 따라다녔을 뿐이다. 계획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영사기의 필름은 처음부터 다시 감겨야 했다.


그렇게 되감기를 수어 번.  

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듯 항상 도입부에 서있었다.


물론 봉순은 다르다. 그녀의 항해는 완벽한 돛과 촘촘한 설계의 함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돛단배라도 있으면 항해는 시작된다. 비바람에 돛이 찢어지면 꿰매고, 돌부리에 부딪혀 구멍이 나면 씹던 껌으로라도 메우며 항해를 이어간다. 그리고 때때로, 그 작은 범선은 누구보다 빨리 수평선에 닿아있기도 한다. 확실히 그녀는 선장의 기질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선장이라도 1평 크기의 돛단배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항구에서 배만 만지작거리는 나.

돛단배에 앉아 빨리 가자고만 외치는 봉순.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손 놓기 무섭게 후다닥 질주해버리는 봉순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배에 태우고 싶다.


"월드컵 때 상황 기억나?"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불탔던 봉순의 전대.  그곳에  수십수백 장의 지폐가 파고들기 전,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을 알아내야 한다. 그녀의 성공에 날개를 달아준 그 기폭제가 있을 것이다.


“글쎄... 처음에는 한두 명? 어슬렁거리던 게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 확 늘어났어.”


생각해보면 꼭 얼굴의 페인트를 지우고 놀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이미 흥이 오른 상태이기 때문. 어쩌면 얼굴에 그려진 다양한 월드컵의 흔적이 뒤풀이 축제엔 더 큰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은 낚시의자와 테이블 앞으로 모여들어 그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선택을 했다. 어쩌면 그들은 거대한 하나의 지성체가 되어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군중 심리,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에 따라 개인의 행동이 변화되는 심리. 봉순의 월드컵 신화에는 그 일등 공신이 숨어있었던 것 같다. 시음회에도 군중 심리를 일으켜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폭발적인 유동인구 그리고 '3의 법칙'.


재미있는 실험 하나가 떠올랐다.

인파가 넘치는 퇴근 시간. 누군가가 하늘을 가리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간다. 한 명이 더 투입된다. 두 명이 같은 행동을 한다. 역시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한 명 더. 이번엔 세 명의 사람이 하늘을 가리킨다.


거리의 흐름이 끊긴다.  그곳을 지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멈춰 선다. 그리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늘에서 뭔가를 찾기 시작한다. 단 세 명의 개인이 군중을 만드는 것, 이것이 3의 법칙이다. 최소 세 명부터는 조직의 개념이 생기기 때문에 사람들의 동요를 일으키기 쉽다. '세 명이 저러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는 것이다. 거리 홍보에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전략이다. 왜 지금 생각났을까.


"그런데 우리는 두 명이잖아?"


들떠있는 등 뒤로 날아오는 현실의 소리. 생각해보니 우리는 둘 뿐이다. 그런데 자꾸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구였지... 아! 다락방에 처음 왔을 때,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녀석!


"천장에 붙어 있던 마네킹 말이야. 정리할 때 버렸었나?"

"마네킹?"  


그녀가 마네킹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동안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일순간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고 반복된다. 고물상 앞, 리어카에 잔뜩 쌓여있던 잡동사니들, 아저씨와의 흥정, 봉순의 슬픈 표정, 마네킹, 남자 마네킹, 봉순의 우울한 표정, 그녀의 움켜쥔 주먹, 주먹에는 구겨진 지폐, 돌아오는 길, 리어카를 잡고 있는 내 손, 그리고 리어카, 리어카 안에는... 안에는?


“봉다방으로 가자.”


시음회 장비를 서둘러 챙긴 후 봉다방을 향했다. 도착하기 무섭게 계단 아래에 있는 창고로 내달린다. 창고를 가리고 있는 검정 색 벨벳 커튼을 들추자 그녀의 수많은 잡동사니들, 그 틈바구니로 보이는 녀석의 귀때기! 있다. 버리지 않았어. 저 녀석이 반가울 일이 생길 줄이야.


"봉순아."

"응?"  

"우리도 만들어 보자. 군중을."  


집에서 갖고 온 옷가지들을 입혀본다. 체격이 나랑 비슷하다. 그녀의 잡동사니에 있던 가발을 씌운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마무리. 그 남자는, 아니 그 마네킹은, 거의 사람이 아닌 '그냥 사람'이었다. 좋다. 아주 좋다. 그렇게 완성된 '1인'을 집어 들고 다락방을 나서려는 순간, 낯익은 여인이 ―아까부터 나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여인이 앞을 막아선다.


"너 최소한 얘 이름은 알고 부려먹어야 되는 거 아냐?"


얘? 그녀는 참 감성적인 여자였다. 그래, 이 고귀하신 남성분의 이름이 뭔데.


"걔 이름은 캔디야."


나는 가끔 그녀의 특정한 언행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방황하고는 한다. 지금 역시 그 순간이다. 상상조차 못 한 단어의 등장과 저 여운 깊은 말투. 이 상황에서 말문 막히는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이 녀석의 이름은 캔디. 사탕이다. 마네킹인데 사람대접을 받아왔고, 사람인데 사탕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남자인데 여자 이름으로 살고 있다. 왜. 어째서.


수년 전 봉순의 집에서 처음 대면하게 된 캔디는, 천장에 발을 붙인 채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그는 상당히 골격이 좋은 남성 마네킹임에도 치마만 입은 채 그렇게 매달려있었다. 뒤집어진 치마가 상체 전반을 가려 괴기스럽기 그지없던 그 모습. 초면이 아니었다면, 치마 밑으로 삐져나온 그 얼굴에 직접 이유를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방문하였을 때는 그 치마마저 온데간데없었다. 오묘한 피부색의 광채를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신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것일까. 하지만 봉순의 대답은 심플 그 자체.


"입힐 옷이 없어."


그의 이름이 '캔디'가 된 배경은 너무 진부해서 떠올리기 조차 숨 막힌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기' 위해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캔디가 온 뒤로는 외롭지가 않았다나... 그뿐인가. 그녀 인생 전반에서의 역발상적 접근은 캔디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한다. 거꾸로 매달려있는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도 거꾸로 생각을 하게 되고, 막혀있던 부분이 뻥 뚫린단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이런 그를 은인이라 해야 할지, 역적이라 해야 할지. 뭐 나로서는 분간이 안 가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도움될 것이 확실하다.


시장 골목 어느 귀퉁이. 봉순과 나 그리고 캔디가 나타나 자리를 잡는다. 샛노란 테이블과 원두 모양 보온병도 그대로, 형형색색의 미니컵도 그대로, 살얼음 흐느적거리는 음료와 봉순 자작 입간판도 그대로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들이 나타난 시간대와 위치. 우리는 유동인구가 가장 폭발적인 점심시간을 택하였다. 봉순이네 다락방입니다, 외침은 더 이상 없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춘 행인이 된다.


봉순 한잔, 나도 한잔, 캔디도, ―캔디는 손이 없네. 봉순아 테이프 좀 줄래.― 캔디도 한잔. 그렇게 정체불명의 3인은 각자의 음료를 홀짝 거린다. 입간판을 힐긋 거리며 간간이 대사도 뱉는다. 이게 뭐야? 시음회야? 어디서 하는 건데? 봉다방? 거기가 어딘데?  


그리고 날아드는 첫 타깃.


"뭐예요 시음회예요?"

"네. 그런가 보네요. 시원하고 맛있네."  


봉순의 신들린 연기.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


"어디서 하는 거지?"

"아, 맛있네." 봉순. (역시 자연스럽다.)

"봉순이네 다락방? 뭐하는 데지?"

"아, 아아~ 여, 여기요? 카페네. 카페!!" 봉팔. (어색한 남자 행인)

"봉순이가 뭐래. 하하. 주인 이름인가 봐~"

"이름 이쁘네~ 호호" 캔디. (음?)


당초 세 시간으로 예상하고 나간 시음회는 10분도 채 안 돼서  마무리되었다. 성냥, 그 유황의 심지에 불꽃이 일며 강렬한 불빛으로 타오르듯, 그냥 그렇게 되었다. '3의 법칙'은 실존했다. 사람들은, 아니 군중은, 봉순과 준비한 대사들을 다 뱉기도 전에 기하급수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든 엽서와 음료는 증발했다. 엽서를 받은 친구에게 ‘뭔데? 뭔데?’ 하는 여성들도 보였다. 돌아오는 길이 뿌듯하다. 봉순도 한 마디.


"대성공이야. 진짜 신기하다."


그래. 그런데 왜 캔디에게 말하니. 계획은 내가 세웠는데...


이 후로도 오랜 기간 우리의 시음회는  계속되었다. 점심시간, 곳곳으로 뻗은 시장의 여러 골목, 근처 학교의 하교 길, 회사의 퇴근길, 연인들이 많은 영화관 주변. 예외는 없었다. 우리의 여섯 발자국이 닿는 곳이면 여지없이 그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의 짐은 출발할 때만큼 무겁지 않았다. 그녀는 빈 테이블과 입간판을, 나는 캔디를 들고, 아니 캔디와 함께 돌아왔다. 캔디. 왠지 가벼워 보이는 이름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  그는 웬만한 사람 무게다.


어쨌든 우리의 복귀가 콧노래로 가득 찼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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