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May 25. 2020

멈출 수 있어서, 자유

영화 <즐거운 인생>

우리는 천천히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곧 다리가 아파오면서 구부러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유인의 눈으로 그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게 되었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많이 꿈에게 사기를 당해 왔던가! 자유의 날이 와서, 석방되고, 집으로 돌아가고,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아내와 포옹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는 꿈,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그 소리와 함께 자유의 날을 맞은 그 꿈도 끝이 나고 만다.

지금 그 꿈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 꿈을 믿을 수 있을까?

-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자유를 꿈꿀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서는 출근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화요일인 줄 알았는데 월요일일 때, 연초 계획이 하나도 달성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때, 지루한 일상조차 연초 계획이 끼어들 틈은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될 때, 딱히 이룬 것도 없이 먹어버린 나이를 실감할 때 말이죠.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에 갇힌 것도 아닌데 암담하고 갑갑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일까요.


영화 <즐거운 인생>의 기영(정진영 분)도 자유를 원합니다. 지독한 일상의 굴레 속에서 아침과 점심, 저녁 그리고 심란한 밤을 채우는 모습은 마치 삶의 어떤 지점에서 같은 장면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죠.

오늘도 이른 아침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든다. 눈을 뜨진 않는다.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알람을 끄고 방을 나선 후에야 눈두덩의 긴장을 푼다. 그녀가 딸아이와 헐레벌떡 집을 나가면 밖으로 나와 그들이 못다 치운 아침밥을 먹는다.


그는 증권사 명예퇴직 후 주식으로 어떻게 인생 한 번 바꿔볼까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40대 남성입니다. 말투와 행동이 어딘가 굼뜨고 답답한 면이 있지만 친구들과 놀러 오고 있다는 딸의 연락을 받았을 땐 무척 기민하게 집을 나서는 아빠이자, 아내의 말수가 줄고 눈빛이 차가워질수록 키와 어깨가 쪼그라드는 남편이죠.


하루를 시작해볼까...


기영에겐 대학시절 락밴드 멤버이자 절친이 세 명 있는데요. 그들의 삶 역시 딱히 윤기 나진 않습니다. 성욱(김윤석 분)은 두 아들의 학원비를 위해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하루를 이틀처럼 보내고 있습니다. 혁수(김상호 분)는 타국 땅에 아내와 자식을 유학 보내고 홀로 중고차 장사를 하는 기러기 아빠입니다. 밤에는 멍한 표정으로 방안 가득 스민 고독을 바라봅니다.


"어이, 운전! 내 말 안 들려??"  /  '하... 저걸 주님 곁으로 보내버릴까...'


나머지 한 명은 밴드의 리더인 상우인데요. 어느 날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기영을 포함한 세 사람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계기죠. 그 분위기가 참 음울합니다. 이토록 처량 맞게 늙어버린 자신들, 저토록 기별 없이 떠나버린 벗, 그 모든 비애를 한 잔 술에 눌러 담고는 삼킵니다.

상우의 아들 녀석이 그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기타를 태우려고 한다. 말리려 하자 난리 치며 대든다. 이 녀석 뭔가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자식 같은 기타 때문에 정작 지는 자식 취급을 못 받았다나... 아무튼 태우는 건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집으로 들고 와서는 아내한테 한 소리 듣는다. 그래도 안돼. 상우가 죽었잖아. 이건 그의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고.


"네 아버지가 자식처럼 아끼던 기타라고!" / "네, 그런데 자식은 전데요."


기영은 깊은 밤 깊은 서랍 속에서 대학 밴드 사진을 꺼내보고는 상우의 유품인 기타를 튕기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의 죽음이 뭔가 느끼게 한 걸까요. 다음 날 잔뜩 상기된 얼굴로 혁수의 사업장을 찾아갑니다. 평소 작디작았던 목소리를 크게 키우고 소리칩니다. "혁수야! 밴드 하자."


매장을 방문한 고객을 응대 중이던 혁수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기영을 밀어냅니다.


"그걸 왜 하냐 우리가. 정신 차려 인마."

"혁수야, 나 밴드 안 하면 죽을지도 몰라!!"

"어, 죽어라. 죽어.


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역사는 흑으로 남는다.


성욱에게도 찾아가 보지만 반응은 같습니다. 오히려 밴드 생각이나 하는 그가 팔자 좋다며 서운해합니다. 하지만 기영은 눈에 뭐가 씐 건지 마치 이들의 일상을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번갈아 찾아와서는 꼬드깁니다. 고단한 삶에 지쳐가던 터라 별수 없이 기영의 제안에 마음이 동하게 되죠. 결국 이 철딱서니 없는 아재들, 악기를 집어 듭니다. "그래, 밴드. 해보자. 자유를 향해 달려보자!"


그런데 이 자유라는 게 막상 시도하려니 쉽지가 않아요. 리드 기타였던 상우가 없으니 연주도 불완전하고 무엇보다 노래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실력도 관절도 녹슬었고, 합주에선 입 속 모래알 같은 느낌이 납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업소 오디션도 보지만 '요즘 그렇게 연주하면 병 날아온다'라며 업주의 날 선 반응만 접합니다. (슬기로운 의사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즐기는 밴드와는 대조적이네요. ㅎ)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어둠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그녀이기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큰 소리보다 무서운 건 낮은 읊조림이라 하였던가. 아내는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당신 마누라 맞아...? 당신 주희 아빠 맞냐고. 이대로 아내한테 얹혀서 살다가 늙어 죽을래?



불행인지 다행인지, 밴드는 상우의 아들인 '현준(장근석 분)'이 투입되면서 연주의 날개를 달게 됩니다.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얻게 되죠.

 

드디어 무대를 설 수 있게 됐다. 돈도 준단다! 1인당 12,500원. 돈 벌어보는 게 얼마만이냐. 연주할 때의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다. 내 삶이 완전히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 같은 이 해방감. 정말 신바람 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상에 배려는 없었습니다. 성욱의 아내는 그가 밴드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집을 나가버립니다. 밤낮으로 일하며 두 아들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 놓이죠. 혁수는 캐나다에 있는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밴드가 다 무슨 소용일까요. 결국 그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캐나다로 떠날 거라던 혁수의 연락을 받았다. 한 걸음에 그의 매장으로 달려갔다. 다 처분했는지 차들은 없고 천막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 가운데 혁수가 앉아서는 쌓아놓은 타이어를 드럼스틱으로 치고 있다. 툭. 툭. 툭. 나를 보더니 이 자식 웃는다. 입으로 기타 소리를 내며 녀석의 드럼에 얹어본다. 징징자자끽끽자자. 어째 실제 연주보다 듣기 좋은 것 같다. 뒤늦게 도착한 성욱이 베이스의 중저음을 채운다. 둔둔둔둔운둔둔둔. 우리의 연주는 그렇게 완성된다.


딱 떨어지는 방정식처럼 여지라고는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꿈꾸던 자유를 이룬 걸까요. 혹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있던 걸까요.



눈 앞에 음식이 있을 때 다릅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에 대한 한 학자의 말입니다. 동물은 본능의 지배 하에 살아가기 때문에 눈앞의 음식을 무조건 먹으려고 하는 반면,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동물에겐 '먹지 않는다'는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 내에서 가장 강한 자극을 좇게 됩니다. 본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죠.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갖추며 조금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저마다의 이유도 다양합니다. 내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혹은 건강을 위해. 인간은, 본능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멈춰 선 사람들. 그들의 반복되는 일상은 수용소 속 세상 같았습니다. 무엇을 시도해도 반기지 않는 기영의 세상, 밤낮으로 심신을 갈아 넣어야만 가정이 평안했던 성욱의 세상, 정신 차려보면 홀로 어두운 방에서 청승을 떨고 있는 혁수의 세상. 그 모양은 제각각 다르지만, 원치 않는 것들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밴드는 곧 자유였습니다. 뭐랄까, 좀 짠내 나는 자유랄까요. 밴드에 대한 제안을 승낙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더 멈추고 슬쩍 나아가는 일을 반복합니다. 어렵사리 성사된 공연에서 조차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무대 뒤편에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 연주가 더 자유로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하고 싶은 걸 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하는 것은 사실 진짜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들은 지근거리의 강한 자극에 현혹되지 않고 해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들을 고민하며 더 어려운 선택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자유란 대단한 반전이나 결과가 아닌, 그저 '잘 멈추는 일'이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저도 쉬러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