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너머에 뭐가 있길래
취업.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순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눈앞으로 다가와도 그 노련한 수를 이기기 쉽지 않다. 학벌, 스펙, 지연, 혈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될놈될, 바늘구멍 등, 연상되는 단어들도 기분 나쁘고, 하여간 보통 신경 쓰이는 녀석이 아니다. 다가올 듯 내빼는 녀석의 꼬랑지라도 잡아볼까, 하루하루 가랑이를 찢곤 했다.
선배들의 의견을 발판 삼아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학 점수도 만든다. 취업사이트와 커뮤니티를 들락거리기도, 명작가가 되어 자소서를 써보기도 한다. 하지만 메일함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이라는 문구가 맘에도 없는 슬픈 표정을 하곤 기다리고 있다. 주변에선 심심치 않게 취업 소식이 들리고, 이 기회가 나에게도 허락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나름 회사처럼 생긴 곳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이제야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기대감에 몸과 마음은 물론, 옷가지까지 준비하며 대망의 첫 출근일을 기다린다.
그런데 바로 그 첫 출근일은 기억이 나질 않을 것이다. 긴장감 탓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뭔가 대단히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은데 딱히 이룬 것 없이 끝나 버린다. 내일은 다르겠지? 아니. 다르지 않다. 같은 날이 반복될 뿐이다. '열심히 배우겠다'며 노력해보지만 선배들은 내 질주보다 항상 더 빠른 성장을 기대한다. 초조함에 노력에 노력을 더한다. 그렇게 고쳐야 할 생각과 배워야 할 스킬들이 퇴근길 너머까지 따라왔을 때쯤, 문득 궁금해진다. 혹 뭔가 잘못된 건 아닐지.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성공적인 취업'은 단순히 입사에 성공하는 것과 의미가 다르다. 심지어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취업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취업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알 수 있다.
* 취업: 일정한 직업을 찾아 직장에 나감 (네이버 국어사전)
취업이라는 말은 한 시점이 아니라 지속적인 생활을 의미한다. 취업의 '취(就)'는 '나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성공적인 취업은 회사의 높은 벽이나 두꺼운 유리문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아, 입사 후 얼마나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적인 직장 생활이 구직 단계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구직 단계에서부터 취업을 잘 헤아리고 준비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성공적인 취업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세 가지 요인, '구직강도, 구직효능감, 구직명료성'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먼저, 구직강도는 '취업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가'를 의미한다. 이력서를 작성하거나 잡포털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 구직업체에 문의를 하는 것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구직강도가 높은 사람은 입사 후에도 열정적으로 일한다. 상사가 "A 좀 확인해볼래요?"라고 하면 "혹시 몰라서 B와 C도 알아봤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구직강도는 일종의 에너지다. 높을수록 강인한 다리를 갖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방향성을 갖지는 못한다. 따라서 방향에 따라 다른 결과를 견인한다. 만약 고인물 과장이 "어이 신입. 열정페이 좀 지불해볼래?"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높은 구직강도를 가졌다면 "네!"하고 밤낮으로 일할지 모른다. 개인의 선택이기에 그 자체의 의미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견뎌야 할 시간으로 투자하는 것과 그저 에너지가 넘쳐서 소모되는 경우는 효율성 면에서 다르다. 후자는 오히려 올바른 방향으로의 시야를 가릴 수도 있다.
구직효능감은 '내가 갖고 있는 구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구직효능감이 높을수록 구직활동을 좀 더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높을수록 성취감 높은 일상을 경험한다.
다만, 구직강도와 동일하게 그 자체로 방향성을 갖긴 어렵다. 구직강도가 팔과 다리의 근육이라면, 구직효능감은 심장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효능감이라는 건 다양한 성공 경험에 기반한다. 따라서 구직 단계에서 내 직업에 대한 효능감, 그러니까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건 구직명료성이다.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나 직무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의미하는데, 구직명료성이 높을수록 스스로에게 필요한 활동에 더 잘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방향이 잡히는 셈이다. 당연히 불필요한 요소에 휩쓸려 시간을 쓰는 일이 줄어들고, 성공적인 직장 생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글은 구직명료성을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
취업을 하려는 이유
나의 구직명료성 수준을 확인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면 된다. "취업이 왜 하고 싶어?"
누구나 하니까? 돈도 벌어야 하고, 효도하고 싶고, 사회생활도 해보고 싶어서. 목에 사원증 걸고 아메리카노 한 잔, 퇴근 후 지글지글 곱창에 소주 한 잔 등,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서의 삶 전반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시간에 쫓기다 보면 취업을 단순히 '문턱만 넘어가면 끝나는 것' 정도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 그 너머엔 주변에서 듣거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정도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취업 후의 삶도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그곳에도 내가 있고 주변이 있다. 얄미운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도 있으며, 솔선수범하는 사람, 예의 없는 사람, 마음이 잘 맞는 사람, 영어 학원에 다니는 사람, 운동을 즐기는 사람, 잘 노는 사람, 똑똑한 사람, 애주가,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눈에 거슬리는 사람,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감기에도 걸릴 거고, 이따금 배탈도 난다. 친구들도 만난다. 사고 싶은 물건 앞에서 고민하기도, 밀린 카드값에 걱정하기도 한다. 바빠서 끼니를 거를 때도, 뭔가에 몰입해 잠을 줄이는 날도 있다. 상황이 조금 달라질 뿐, 결국 비슷한 장면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다만, 그곳에서 최소 하루에 8시간, 주어진 무언가에 집중해야 하고, 그 시간은 일주일에 5번, 한 달에 약 20번씩 반복된다. 1년 기준 약 240일. 나는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매년 그 시간은 어떻게 반복되어야 할까.
구직명료성은 위의 질문에 얼마나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요인이다. 이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직활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하며, 입사에 성공한 후에는 혼잡한 일상의 길잡이가 된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선 구직명료성을 얼마나 높이는 가에 따라 취업의 질이 달라진다고도 볼 수 있다.
구직명료성을 향상하는 팁
이런 류의 질문에 대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명료한 답을 찾는 건 어려울뿐더러 질문을 던지다 보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
돈이 무한대로 있다고 상상해보자.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보고 싶은 곳을 모두 가보고, (강남의 빌딩 몇 채를 포함하여) 사보고 싶었던 것을 다 산 후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그렇게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는지 상상해보자. 그 안에 작지만 또렷한 답이 있다.
처음엔 그저 '뭔가 만드는 것', '뭔가 꾸미는 것', '뭔가 고치는 것' 정도로 모호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구직활동과의 시너지, 그리고 입사 후의 직장생활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질문을 고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 년 후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점이다. 구직명료성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 일에 대한 동기 수준이 높아 동일한 업무에도 남들보다 적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연히 단위 시간당 업무 성과도 훌륭하고 그에 따른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스스로 느끼는 일상의 만족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첫 직장을 구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구직강도'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당연하게도 노력한 만큼 더 좋은 결과가 있는 셈. 그런데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더 노력하라는 말은 왠지 화딱지만 나게 할 뿐이다. 그러니 구직강도의 효과 증진은 물론, 성공적인 취업 수준을 높이는 구직명료성 수준을 높여보는 게 어떨까.
첫 직장의 의미
시간이 지나 쫓아갈 사람보다 쫓아올 사람이 많은 입장이 되고 보니, 어떤 곳에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일을 시작하는가 보다, 어떤 일을 지속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첫 직장은 예상만큼 많은 것을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첫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갖고 경험을 잘 흡수한 사람은 그 이후에 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기존에 좋은 대우를 받았던 그렇지 않든,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었든 현시점에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늘 더 좋은 환경에 들어선다. 그러니 첫 직장의 수준으로 스스로를 너무 단정할 필요는 없다.
첫 직장의 의미는 그 경험 자체보다는 준비했던 시간들에 있다. 오랜 시간 맘 졸이고 잠 설치며 준비했던 그 시간의 가치가 곧 첫 직장의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이 시간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나의 역할에 대해 가장 오래도록 몰입하고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의미 있는 첫 직장, 그리고 더 먼 미래의 삶을 위해 지금이라도 질문해봤으면.
취업이 왜 하고 싶어?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