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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ul 09. 2019

미래를 바꾸는 세 가지 속임수

똑똑한 듯 멍청한 뇌녀석 이용법


참 많은 것을 달성했다. 어쩐 일인지 지면에서 손을 떼고 엄마를 향해 발을 뻗었던 순간부터 말이다.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달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눈물 작전은 목표 달성에 최적화된 무기였다. 때때로 감정이 잡히지 않아 눈을 질끈 감으며 즙을 쥐어짜기도 했지만.


또래 무리에서는 다른 아이에게 어렵사리 말도 걸었다. 그렇게 친구가 생겼다. 누군가의 벗이 된다. 갖고 싶은 게 생겨 용돈을 모으거나 아르바이트도 했다. 바라던 그것 내 손으로 왔을 때는, 세상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행여나 망가질까 애지중지 광을 냈었더랬다.


책상과 펜을 곁에 둔 후로는 목표들이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내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보다 원대하고 간절한 소망들. 그것들 중 일부는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성공의 어머니'가 되어 웬수로 남은 것들도 적지 않다.


한 해의 시작의 시작은 남아있는 웬수들을 정비하고 새로운 목표를 만들기 좋은 시점이다. 주변을 보면 여전히 외국어, 운동, 자격증, 진학, 취업, 취미, 결혼, 출산 등 하루 이틀로는 이룰 수 없는 큰 단위의 그것들을 연초에 정하곤 한다. 원어민과 수려하게 대화하는 모습, 몸짱이 되어 걸어두기만 했던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순간, 원하는 학교나 직장에서 어우러지는 장면 등, 그 원대한 목표가 달성된 순간을 떠올린다. 아, 왠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찌할까.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들이 일상의 숙제로 다가올 때는 그 온도가 참 다르다. 계획할 때는 분명 따뜻하고 시원하며 부드러우면서 달콤했는데, 오늘 마주친 그것은 뜨겁고 차갑고, 날카로우며, 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어느덧 그것들이 내 삶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이제 그 부담을 일상에서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참 오묘한 순간을 겪는다. 이상하게도 이런 경험은 매년 반복된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목표'라는 단어가 '이루기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이루기 어려워야 목표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날이 얼마나 까다롭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데, 이루기 어려운 이유는 숨 쉬듯 쉽게 떠오른다. 왜일까. 지면에서 손을 뗀 순간부터 그렇게 많은 것들을 달성했는데, 왜 예전만큼 원하는 걸 이루기 어려운 걸까.

 


하.. 왜 안되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왼손으로는 '세 개' 오른손으로는 '두 개'를 표현해 보자. 목표라고 할만한 노력이 필요했나? 한때는 시간을 들여 골똘히 생각해야만 이룰 수 있었던 일이다.


이처럼 뇌는 이미 달성한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애를 쓰지 않아도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이 행동을, 사람들은 '익숙하다'라고 표현한다.


유아기엔 익숙한 게 없었다. 당시의 뇌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말하자면 잠재력 초갑부 상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동기나 목적에 의해 학습하고 흡수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한 번 익숙해진 것들은 다시 배울 일이 없도록 [익숙함] 파트에 저장했다. 내가 두 발로 걸어가기 위해 부모님의 '옳지 잘한다'라든가 박수소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이 파트에 단단히 저장되어 있어서다. 고로 [익숙함] 파트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상 ‘노력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뇌라는 녀석이 융통성이 없다. [익숙함] 파트에 저장된, 그러니까 한번 익숙해진 것들은 나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바꾸려 하질 않는다. 예컨대 영화관에서 팝콘을 즐기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오래된 팝콘이든 신선한 팝콘이든 이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먹은 양은 같았다. 심지어 오래된 팝콘이 맛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집어 입 속으로 넣는 일련의 행위를 멈추지 못했다. 미각 파트에서 맛이 없고 눅눅하다는 컴플레인을 줄기차게 보냈을 텐데, 익숙함 파트에서는 끝까지 모른 척하며 손과 입에게 평소와 같은 양의 팝콘을 집도록 한 셈이다.


뇌의 이런 고집스러움은 달리 말해 '익숙하지 않은 게 들어서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뭔가 파고들려면 적잖은 텃새를 감내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준다는 건 뇌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 시도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그럼에도 분명히 나는 새로운 목표를 달성해왔다. 어떻게 이 타협이라고는 없는 '뇌녀석'을 설득했던 걸까. 어떻게 하면 늘 하던 대로 '밥 먹고 배 긁으면서 폰 보다가 취침하려는' 뇌를 납득시켜 '밥 먹고 헬스장으로 출발시킬' 수 있을까.




목표를 달성하는 세 가지 속임수


심리학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일들을 어렵고 복잡하고 지루한 시간을 들여 연구 결과로 발표하고는 한다. 그런데 당연한 생각들이 연구를 통해 정립되면서 확보되는 게 하나 있다. 그 생각의 신뢰성이다. 연구자는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뇌를 속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원하던 목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어디 뭐 얼마나 대단한 비결인지 한번 보자.



목표를 습관으로 만든다.


어디선가 유창한 연사의 입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첫판부터 장난질인가. 효과가 입증된 방법이라고 하니 살펴보겠다.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전 이를 닦던 당신은 어느 날부터 치실도 함께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쉽죠? 간단해요. 양치가 끝난 후 치실을 한 번 더 사용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날 밤, 평소처럼 거울 앞에 서서는 칫솔통에서 칫솔을 꺼내 들고 그 위에 치약을 짭니다. 입 속에 넣고 구석구석 마찰을 일으켜요. 이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죠. 오히려 새로 난 뾰루지 같은 건 없는지 거울 속을 들여다보다가 오늘따라 유독 피곤해 보이는 안색에 놀랍니다. 문득 늙어 보이는 것 같아 속상해하다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 학업, 직장, 알바, 직장 상사 놈, 동생 놈 등을 원망하죠.

그 와중에도 칫솔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양치를 끝낸 후, 입을 헹구고 칫솔을 칫솔통에 넣은 뒤 화장실을 나와 핸드폰을 확인합니다. 혹은 세수를 시작합니다. 혹은 변기에 앉습니다. 쨌든 치실은 없네요."


(이상하게 놀리는 것 같지만...) 위 예시는 목표와 습관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고 한다. 여기서 칫솔질은 습관, 치실은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는 습관과 목표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둘을 연결해 줄 곳이 필요한데, 이를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에서 수행한다. 뇌의 다른 공간에 있던 '목표'를 '견고하고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얼마나 자주 얼굴을 드미는 가에 따라 치실이 목표로 남을지 습관이 될지가 결정된다. 하지만 원한다고 막 입장하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우나도 가고 막 밥도 묵고 막 다 해도 소용없다.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s)라는 (발음도 어려운) 초대장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곳에 들어설 수 있다. 이 초대장만 많이 가질 수 있으면 목표를 습관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이 초대장은 일관성을 가진 행동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관성은 '내가 일관적으로 생각하고' 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장면에 반복하는 행동을 뜻한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습관화되고 있는지 혹은 효과가 있는지를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줄여 말하면 '걍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 정도가 되겠다.)


위의 치실을 예로, 매일 밤 10시에 이를 닦은 후(같은 시간), 칫솔통에 칫솔을 넣는 시점(같은 장면)에 치실을 사용하도록 근처에 메모지 등을 붙여서 반복 규칙을 만들 수 있다. 반복할수록 치실은 검증된 초대장과 함께 '안와전두피질' 관계자에게 인사를 드린다. 잦은 방문으로 점차 입소문이 퍼지면서 [익숙함] 파트까지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덧 그곳의 일원이 된다. '팝콘을 집어 드는 손'과 같은 공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을 찾는다.


때때로 새로운 환경은 인간의 뇌를 재배치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다른 대학으로 전학 간 학생들이 동일한 곳에서 재학 중인 학생들에 비해 더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그저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뇌에 미치는 영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뇌가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는 데 있어서는 '익숙한 환경'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경험할 때 뇌녀석은 작은 혼란에 빠진다. 늘 접수되던 정보나 요청들 중 일부가 통째로 사라져 버진 탓이다. 견고했던 기존 체계도 그만큼 물러진 상태다.


만약 내가 이루려는 목표가 지속적으로 실패한다면, 주변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실을 청소하려는 계획이 늘 실패한다면 의외로 그 원인은 텔레비전에 있을지도 모른다. 거실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 평소 즐겨가던 커피숍에 간다면, 평소처럼 멍하니 시간만 보낼 확률이 높다. 이럴 땐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평소와 다른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달라진다고 한다.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서관이나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그곳만의 습관을 만들기 수월하다.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 되어가는 뇌에게 한 차례 충격을 주는 것. 자신이 원하던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아무리 바빠도 여행을 다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곤해서 쉬려는 게 아니다.




이룰 수밖에 없는 목표를 만든다.


‘도파민’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화학물질이라는 걸 이제 꽤 많은 사람들이 안다. 그런데 뇌녀석이 이 도파민에 얼마나 환장하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끊임없이 반복하려고 한다.


놀랍게도 뇌는 원하는 것을 얻을 때도 도파민을 분비한다. 따라서 원하는 것을 자주 얻으면 그것을 반복하려고 한다. '원하는 것'에는 '목표'도 포함된다. 목표를 자주 달성할수록, 그 일은 더 자주 일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목표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이룰 수 있는, 때때로 '이룰 수밖에 없는' 목표를 계획한다. 그리고 달성하면 된다.


예컨대 오늘 저녁에 대중교통에서 서서 가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을 목표로 정할 수 있다. 달성하는 순간 뇌에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나는 하루의 목표를 '할 일 목록(To-do list)'에 5개 내외로 기록해두곤 한다. 꼭 해야 할 일이 없더라도 3개 이상은 적는데, 이 중에는 '점심 챙겨 먹기'와 같이 억지스러운 계획이 들어갈 때도 있다. 다음으로는 그것들을 달성하는 일에 매진한다. 이 방법으로 참 많은 수의 목표들을 달성했다.


사실상 내가 할 일 목록을 적극 활용하는 이유도 도파민을 얻기 위한 ‘뇌녀석’의 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 녀석은 도파민을 얻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마약의 중독성도 이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뇌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내 건강이나 심정 따위엔 관심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 이 도파민을 잘 활용해 보자. 이루고자 하는 큰 목표를 한 입 크기, 도파민 친화적인 조각으로 분해해하는 것이다. 매일 헬스장에 가고 싶다면 '방문' 자체만 목표로 잡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지면에서 손을 떼고 첫걸음을 걷던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나 그리고 당신은 이루지 못한 것보다 이룬 것들이 월등히 많다. 지금 이루려는 목표가 꽤나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달성의 역사가 뇌에 쌓여있다.


그러니 이루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도 이 뇌녀석은 어떤 행동의 초대장을 받아들 뿐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고민이라고 한들 도파민 얻을 궁리 정도겠지.


그냥 다시 시작해 보자.

같은 시간에 반복하고, 새로운 곳에 가보자. 작은 것들을 계획하고 이뤄보자.

그렇게 어느덧, 서로가 원하던 곳에서 만나자.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 참고문헌

원문: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truisms-wellness/201610/the-science-accomplishing-your-g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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