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형 ‘나 때는’
A: “어떡해…. 나 살 너무 쪘어.”
B: “야, 나는 더 그래. 넌 괜찮아~ 내가 쪘지.”
나는 여성들이 나누는 체중과 관련된 주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눈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너무 쪘다며 걱정하는가 하면, 살을 뺐다며 좋아하는데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건지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성별을 떠나 내 눈은 외모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심리적 차이를 포착하는 것에 집중되었다고 위로해본다…). 그런데 위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의 차이는 이 막눈으로도 구분이 가능했다. 살이 쪘다고 걱정하는 A는 내 눈에도 살이 찐 상태였고, B는 날씬한 사람이었다.
나는 B의 답변을 들으며 A의 비언어적 패턴이 깨지는 걸 목격했다. “에이, 네가 살찔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라고 유연하게 답했지만, 말을 뱉기 전 밝은 표정이 일순간 해제되며 오른쪽 눈가가 경직되었다. 스산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웃는 얼굴로 뒤덮였지만 그녀에게 머물렀던 찰나의 살기를 보았다. 세상에, 왜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게 되었을까.
나는 더 그래:
① 네 고민은 별게 아니야.
누군가의 고민이나 고통을 뭉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 앞 단원에서 다루었던 ‘나 때는’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사용하려면 내가 상대방보다 앞선 경험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같은 연령대보다는 세대가 다른 선후배 사이여야 사용이 수월하다. ‘나 때는’이라는 표현은 ‘나는 더 그랬어.’로 풀어서 말할 수 있고, 이는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며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나 동료 간에 사용하려면, 이것을 현재형인 ‘나는 더 그래.’로 변형해야 한다.
“몸도 다 망가졌어. 심지어 애는 새벽에도 몇 번씩 우는데 남편은 쿨쿨 잘만 자는 거야.”
“어머, 나는 더 그래.”
(너는 미혼이잖…)“너? 왜? 뭐가?”
“남친이랑 1주년인데 회사 워크숍 때문에 못 만나.”
‘나 때는’은 이전 시대의 상황을 공유하여 보다 열악했던 당시의 세대적 고충을 스스로 보상받으려는, 어찌 보면 나름의 결의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반면에 ‘나는 더 그래.’는 이런 심오한 목적 따위 없다. 내 코가 석자라고 생각될 때, 상대의 고민을 받아들이기 싫을 때, 혹은 그냥 갑자기 자랑질을 하고 싶을 때 사용되곤 한다.
그 자리에 신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누구의 고민이 더 큰지는 알 수 없다.
나의 좋지 않은 상황으로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의도는 좋으나 앞서 ‘나 때는’에서 다룬 바와 같이 개인의 고통 수준은 개인 내에서만 비교가 가능하다. 만약 그런 의도로 자신의 처지를 말할 요량이라면, 상대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한 후에 ‘사실 나는 이런 일을 겪고 있다.’라는 말로서 내 공감의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다. 이어서 상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력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격려한다면 좀 더 효과적인 위로의 시간이 될 것이다.
< 나는 더 그래 >
파괴력: ★★★☆☆
지속성: ★☆☆☆☆
습관성: ★★★★☆
유의어: #그건아무것도아니야 #나때는 #고작
대체어: #힘들겠다 #나도그래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