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을 줄이려면?
부자의 기준이 뭘까요?
김○○ : “글쎄요. 음… 하고 싶은 걸 시간 고민 없이 바로 하고, 갖고 싶은 걸 가격표 안 보고 선택할 수 있으면 부자일 것 같아요.”
유○○: “그런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자식이 날 책임지지 않아도 되면 부자라고.
그런데 나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까지 내가 커버할 수 있으면 더 부자. 손주까지 커버할 수 있으면 핵부자라고. ㅎㅎ”
박○○: “저는 좀 현실적인데, 건물 한두 채와 주식 등의 투자 자산을 갖고 있어서 일을 하지 않아도 매월 특정 수준의 돈이 들어오는 상황이요. 일종의 경제적 자유 상태?”
경제적 자유라…
말 만으로도 숨이 트이네요.
그렇다면 돈이 넘쳐서 그 자유를 얻게 되면 뭘 할 것 같아요?”
김○○: “회사부터 관둬야죠. ㅋㅋ 취미로 다니거나.”
유○○: “맞아요. 부담 없이 다니면 더 즐겁게 열심히 일할 것 같아요. 저도 일단 회사를 관두고, 음,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박○○: “뭐, 달라질 거 있나요. 그냥 지금 이 생활에서 걱정 하나 주는 거죠. 돈 걱정."
하하, 그렇겠네요. 돈이 많아진다고 모든 걱정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면 질문을 바꿔서…
돈 걱정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추운 겨울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설 때, 상사한테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차게 까였을 때,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제품이 나왔을 때, 둘 다 맘에 드는데 하나만 사야 할 때, 여유롭게 지내는 주변인을 볼 때, 월급날인데 통장 잔액이 어제와 다르지 않을 때, 10년 동안 모은 돈이 기대와 다를 때, 월셋값이 부족해 방을 빼야 할 때, 전셋값이 올라 은행을 방문할 때, 사랑하는 이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을 때, 통장은 여전히 그럴 수 없다고 외치고 있을 때, 그 모든 갈증을 한방에 해소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꿈꿔왔다.
이런 이유로, 어젯밤에도 한 잔 소주에 자유의 날을 담아 들이켰거나, 구입한 복권을 어루만지며 환희의 순간을 상상했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걱정이 없는, 경제적 자유의 삶은 무엇일까. 원하는 지역의 집 한 채와 차, 월 얼마 이상의 불로소득, 이따금 한 달 이상 자릴 비워도 되는 직업, 바닥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곳간 등, 이상적인 조건들이 먼저 떠오른다. 선택과 집중, 기회비용, 그리고 가성비를 따질 필요가 없는,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없는 삶 말이다. 그 삶에 이르게 되면 돈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도달하지 못한 지금에서는, 돈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돈 걱정을 안 하려면 정말 저런 수준까지 도달해야 할까.
다시 말해, 그런 지점에 도달하기까지는, 계속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걸까.
글 서두의 문답은 실제로 주변인들로부터 들었던 답변을 각색한 것이다. 나는 사실 더 많은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그들의 답변을 들으며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넉넉한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말보다 ‘제거하고 싶은 현재의 갈증이나 고통’에 대해 먼저 답한 것이다.
이쯤 되면 부자가 되려는 건 현재의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인 것만 같다.
그러니 오늘도 지속되고 있는 돈돈돈, 돈 걱정의 근원을 뜯어볼 필요가 있겠다.
인터넷에서 재밌는 질문을 봤다. 상황을 좀 추가해서 친구에게 던졌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억 주면 군대 다시 갈 수 있어?”
“네버. 안 가지.”
“10억 주면?”
“간다.”
“간다고…? 군대를? 다시?”
“가야지. 평생 일해도 모을지 모르는 돈인데 2년만 고생하면 생기는 거잖아.”
“오… 대단하군. 그러면 군대보다 하기 싫다거나 그런 거 있어?”
“아 왜 또. 뭔 이상한 소릴 하려고.”
“대답해 줘. 친구.”
“음… 예전에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영화를 봤는데.”
“어 나도 봤어. 인도 영화지?”
“맞아. 어떤 시골 동네에 슈퍼스타가 오거든. 근데 주인공 꼬마가 재래식 화장실에 갇힌 거야.” 친구는 그때의 장면이 다시 생각나는지 미간과 인중을 찌푸리며 말했다. “근데 그 슈퍼스타를 보기 위해 똥통에 빠지는 선택을 해. 화장실에서 나가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거든.”
“으응….”
“이해가 안 가더라고 슈퍼스타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게…. 그때 생각했었어. 목숨이 걸려있어도 나는 못 들어가겠구나,라고.”
“아 진짜? 목숨이 달렸는데?”
“응, 못해. 할 수 없는 일이야.”
“10억을 줘도?”
“그럼 해야지. 들어가야지.”
그는 매일 집 청소를 하고, 한 여름엔 하루에도 샤워를 세 번씩 하는 친구였다. 나는 그의 반전 답변에 놀라며 말을 이었다.
“좋아. 10억에 대한 너의 의지는 잘 봤어. 자 그럼 다른 상상을 해보자. 내가 지금 당장 10억을 줄게.”
“어, 일단 내놔. 딱 여기 올려놔.”
“대신 네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그 돈의 10배인 100억을 줄 거야. 어디선가 마주치는 관계고…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돈이지.”
“어? 하….”
“받을래?”
“하….”
친구는 긴 고민 끝에 10억을 포기했다.
군대를 다시 가고 똥통에 들어가서라도 얻으려 했던 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는 월스트리트의 젊고 잘 나가는 금융인들이 회의 때마다 명함 배틀을 한다. 명함의 서체, 색상, 질감 등을 언급하며 마치 도박 패 뒤집듯 자신의 명함을 번갈아 꺼내고는 최고라고 어필한다. 그날의 베스트 명함 주인은 웃으며 돌아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며 좌절한다. 심지어 주인공인 베이트먼은 이 과정에서 살인 충동까지 느낀다.
<오베라는 남자>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오베는 먼저 떠난 아내를 따라가기 위해 매일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이승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친한 이웃이자 친구가 차를 바꾸면 그 브랜드와 연식에 따라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리학에서는 ‘이웃효과’라는 개념을 통해 이런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웃효과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이웃, 그러니까 가까운 주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함으로써 삶의 만족감이 달라지는 효과’다.
이웃효과를 잘 설명하는 어록은 정말 많다. (그만큼 공감대 형성이 잘 되는 심리효과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엔 ‘존스네 따라하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라는 표현이 있다. 가상의 이웃인 존스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는 의미다.
심지어 헨리 루이스 멩켄(Henry Louis Mencken)은 “부자란 그의 동서(아내의 여동생의 남편)보다 많이 버는 사람을 가리킨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관련 조사도 진행됐었는데 여동생의 남편이 자기 남편보다 소득이 많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취업 확률이 실제로 20퍼센트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는 이웃효과를 잘 나타내는 국가별 어록들이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만큼 한 사람의 복지와 판단에 혼란을 주는 것은 없다.”
미국 경제학자 / 찰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
“만일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 6두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을 부러워할 경우, 4두마차를 탄 사람이 6두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느끼는 시기심보다는 강도가 약하다.”
네덜란드 작가 /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
“우리는 자신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보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자신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불행해한다.”
프랑스 사상가 /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거지는 자신보다 많은 돈을 번 다른 거지들을 시기할망정 백만장자를 시기하진 않는다.”
영국 철학자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이처럼 이웃효과는 ‘비교 가능한 대상끼리의 눈치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IT 강국인 만큼 PC와 스마트폰 안에도 수많은 이웃이 있다. 그만큼 비교할 대상도 넘친다.
돈 걱정으로 돌아와서,
이웃효과의 관점을 빌리자면 이러한 걱정은 내가 주변으로부터 수집하여 조합한 상상 속 라이벌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려는, 혹은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피어나는 각성제인 셈. 마치 섀도복싱을 하듯 가상의 빌런을 향해 부지런히 허공을 휘젓는다. 마땅히 부족함이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째려본다.
따라서 돈 걱정을 줄이려면, 혹은 효과적인 돈 걱정을 하려면 그 상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막연하고 모호할수록 벽에 비친 그림자처럼 거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지 않으니 더 불안하고 마음만 급해진다. 단 한 번의 주먹이라도 제대로 뻗기 위해, 나에게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또렷하게 따져보는 게 좋겠다.
어쩌면 애초에 비교할 대상이라는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걱정만 했을지도.
만약 그렇다면 내가 가진 세계에서,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내 속도로 나아가면 된다.
돈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자기 분석과 관련된 결론을 내는 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접근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게 최고의 답인 것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도인에 가까운 사고를 갖는 건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쉽지 않다.
설령 내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밀접한 주변인, 가령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평생을 고통받을 수 있다. 가족 모두가 한마음을 이뤄 무척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말을 타인에게 뱉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살 곳은 늘어나는데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바람 막을 벽과 비를 피할 천장이 있는 집에 감사하며 살라'고 말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정확히 해야겠다. 보릿고개 시절을 생각하면서 안분지족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부를 쌓고자 하는 이유 자체를 깊이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외부에서 온 상대적인 관점이 아닌, 나에게서 출발한 절대적 기준이 먼저다.
상대적인 관점을 버리지 못하는 한, 돈이 많아진다고 해도 경제적 자유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에 적합한 비교 대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성에 차게 가져본 적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그러리라 고집부려 본다...) 그래서인지 자수성가한 이들은 목표가 절대적이다. 주변의 삶이나 성공 소식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걱정할 시간에 내 목표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목표가 또렷하므로 위험을 감수하려는 능력과 의지가 강하다. 일상을 성실하게 대한다.
누군가는 절실함만이 부를 만든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한다. 다만 부자가 되려는 의지와 그에 따르는 걱정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의지는 행동을 견인하고, 막연한 걱정은 스트레스를 만들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