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혼혈왕자>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을 아마 한번 이상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다른 말로 '위약 효과'라고도 하며 그 의미는 '특정한 효과가 없는 약에 의한 심리적 치료 효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아무 성분이 없는 밀가루를 환자에게 주며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약입니다. 이제 곧 완치하실 거예요."라고 하면 이를 먹은 환자의 병이 실제로 호전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실례로 2009년 위스콘신 대학의 연구결과가 있는데요. 감기환자에게 효과가 없는 알약을 주었을 때 그걸 받지 못한 그룹보다 약 반나절 빠르게 회복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수면제를 먹고 평소보다 쉽게 잠드는 것은 그 효능보다 약 복용에 따른 심리적 안정 때문이라고 도 밝혔었죠.
플라시보 효과의 유래는 프랑스의 '에밀 쿠에'라는 약사로부터 형성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친한 지인이 처방전도 없이 찾아왔다고 해요. 병원에 갈 시간도 없고 당장 죽을 것 같으니 약을 지어 달라고 하소연했죠. 약사는 처방전이 없어서 거절하였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결국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고통에는 아무 효과가 없는 포도당류 알약을 주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며칠 후 우연히 마주친 그 환자는 '그 약이 너무나도 신통하여 병이 다 나았다'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플라시보 효과는 어떠한 현상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플라시보의 어원인 '만족시키다, 즐겁게 하다'에서 더 잘 알 수 있지요.
론 위즐리의 플라시보 효과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의 '론 위즐리'는 플라시보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시합을 앞두고 상당히 의기소침해져 있습니다. 파수꾼(축구로 말하면 골키퍼)인데 잘 해낼 자신이 없는 것이지요. 강당에 들어서자 다른 학생들이 야유를 섞어 수군댑니다. 점점 더 위축되고 있는 그를 위해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귀여운 이벤트를 기획하는데요. 론의 관점에서 살짝 살펴볼까요?
해리포터가 힘내라며 음료가 담긴 잔을 건넨다. 잔을 받자 다른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 음료에 아까 약 타지 않았어?"
"무슨 약?"
내가 묻자 해리포터 녀석이 황급히 물약을 숨긴다. 뭐야 무슨 약인데?
"아니야. 너는 몰라도 돼."
왜 나한테만 숨기는 거지? 이렇게 모르고 지나칠 론 위즐리가 아니다! 나는 그들을 닦달해서 이 잔에 담긴 것이 행운의 물약이라는 걸 알아냈다. 해리포터가 우수한 성적의 상으로 받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끌어 주는, 행운의 묘약!
"마시면 안 돼. 귀한 거라고! 그리고 마시면 위험할지도 몰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해리포터가 잔에 담겨있는 음료를 모두 마셔버렸다. 역시, 마법이란 대단하다. 겪어본 적 없는 기운이 내 몸을 휘감는 것 같다. 이제 날아드는 모든 공을 다 막아낼 수 있다.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되었냐고요? 예상대로 론은 게임에서 영웅적인 성과를 거둬냅니다. 요술 빗자루에 안정적으로 앉지도 못했었던 그가 여유까지 부리며 모든 공격을 가뿐하게 막아낸 것이죠. 경기가 끝난 후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론. 그런 그를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가 멀리서 바라봅니다. 그녀가 행운의 물약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자, 해리포터는 미소를 지으며 답합니다.
"안 탔어."
"뭐?"
"약을 타지 않았어."
결국 론을 '최고의 파수꾼'으로 만들었던 것은 '나는 행운의 약물을 마셨다.'라는 심리 효과뿐이었습니다. 참 귀엽죠?
플라시보 효과는 꼭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 역시 론과 같은 '귀여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플라시보 효과의 실제적인 유효율은 30%나 되며 때에 따라서는 이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하니,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그 영향력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
플라시보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노시보 효과'가 있습니다. 가령 암환자 병동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유감입니다만 이번 달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실제 그 환자는 그 달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노시보 효과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요. 첫 번째 사례인 냉동창고 사건을 1인칭 관점에서 간단하게 재구성해보겠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문을 두드렸다. 철문은 굳게 잠겨 있다. 온 힘을 다해 철문을 두들겼지만 모두 운반선 엔진의 굉음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곳은 칠흑같이 어둡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스코틀랜드의 항구에서 짐을 내리며 다음 목적지인 리스본에서 옛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냉동창고에 갇혀버렸다. 손과 발에 감각이 없다. 나는 이 배가 앞으로도 몇 시간 이상을 이동할 것을 알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냉동창고의 철문이 열릴 일이 없다는 것도. 살아서 나갈 가능성은 없다. 주머니 속의 수첩을 꺼내 한 글자씩 천천히 적는다. "내 몸은 점점 얼고 있다. 숨 쉬기가 힘들다. 나는 죽어간다."
결국 그는 사망했습니다. 발견되었을 당시 그의 시신은 차갑게 얼어있었다고 하는데요. 놀라운 점은 그 냉동창고의 온도가 영상 19도였으며, 심지어 먹을 것도 충분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사형집행 사건인데요. 냉동창고 사건보다 좀 더 놀랍고 무서운 사례입니다.
그날이 되었다. 몸이 고정된 채 머리엔 두건이 씌워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은 작은 그릇에 담겨있다. "정맥을 끊어서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 집행관의 말과 함께 손목 부근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닿았다. 그 고체는 내 손목을 좌에서 우로 그었고 이내 뜨거운 피가 손을 타고 내려갔다. 그릇이 채워지며 오른손이 내 피에 잠기고 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진다.
사실 사형수는 실제로 정맥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상처만 낸 후 혈액과 같은 온도의 액체가 손목을 타고 내려가 그릇에 담기도록 한 것이죠. 그럼에도 사형수는 결국 사망했습니다.
앞의 두 가지 사례는 노시보 효과의 끔찍한 면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냉동창고의 온도를 알려주었다면, 두건을 풀어주었다면 같은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앞의 플라시보 효과와 더불어 노시보 효과의 사례는 인간이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결과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며 - Placebo vs Nocebo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는 동일한 메커니즘의 믿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죠.
이따금 손쉽게 털긴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곤 합니다. 그 감당하기 어려운 일상을 겪다 보면 마치 그 시간이 내 현실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한잔 술잔에 기대다 보면 그 음울함은 더 크고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 역시 자신만의 냉동창고 안에서 식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일상의 패턴과 맥락을 벗어나, 조금은 이상적으로, 늘 바라던 대로 자신의 삶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어쩌면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들이 쌓여 '행운의 물약'을 갖고 올지도 모르니까요. 설령 론에게 진짜 행운의 물약을 주었다 한들 "그걸 마셨으니 경기에서 지게 될 거야."라고 했다면, 그에게 영광의 순간은 안 왔을지도 모릅니다.
물약은 이미 여러분 손에 주어져있습니다.
어떤 효과를 선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