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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10. 2016

트라우마가 남기는 것들

아이언맨


10년 대서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게 제법 고마울 만큼 마블의 이야기를 따라온 시간은 즐거웠습니다그 출발인 아이언맨. 음습한 동굴에서 탄생한 깡통 로봇 '마크 1'과 첫 완성작 '마크 2'의 데뷔전은 아직까지도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이언맨의 탄생은 인공인 토니 스타크가 겪은 어떤 사건에서 비롯되는데요. 그래서 늘은 로봇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는 세계 최고 군수업체의 CEO이자 6살 직접 엔진을 만든 천재입니. 제가 두 발 자전거를 못 타서 울고 불던 나이에 엔진을 만들었군요. 로봇인가.


만약 우리가 영화 속의  제삼자라면,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인 것을 모르는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올까요. 부족한 것 없는 금수저로만 보이던 한 남자의 피랍 사건, 그 이후로 나타나는 괴이한 행태 어떤 단서가 될까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한 것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이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라우마 우리말로 '외상'이라고 며, '정신적 충격을 일으킨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겪은 외상이 그 이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라고 합니다.


암환자 및 가족, 성폭력, 전쟁, 사별, 재난과 같은 심각한 외상부터 질병, 실연, 따돌림, 이혼, 실직과 같이 상대적으로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경험들도 PTSD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사건에 대한 반복적인 공포와 심리적 재경험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며,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증상을 보이는데요. 토니 스타크는 외상 후에 어떤 증상들을 나타낼까요. 우선 그가 겪은 사건을 1인칭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외상 - 토니 스타크에게 일어난 사건


#1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성공적 계약 후 돌아가던 수송 차량 에서 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그 일'은 예고 없이 일어났다. 선두에 있던 차량이 뜨거운 열기를 으며 폭발했다. 총탄은 차체를 거세게 두들겼다. 함께 있던 군인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몸을 흔들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내 농담에 어색한 미소로 답하던 사병 유리창을 피로 뒤덮었다. 두렵다. 아니, 그런 감정조차 느끼기 힘들 만큼 짧고 강렬한 순간이 이어졌다.



이성을 움켜쥐고 바위 뒤로 몸을 던졌다. 호흡을 고르 찰나 포탄 하나가 무심 날아다. 굉음이 들렸고 하늘이 구르기 시작했다. 강렬한 태양이 눈앞을 바삐 지나간다. 등에 땅이 와 닿는다.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불현듯 낯설고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끓고 있는 쇳물이 가슴 어딘가로 쏟아지는 것 같날카로운 고통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2

깨어나며 처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불쾌감이었다. 그 아련했던 기분은 이내 통증으로 변했다. 그것은 가슴에서 오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건 새하얀 병원 벽지와 나를 응시하는 지인들이 아니었다. 어둑한 동굴의 천장만이 보일 뿐. 춥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상당히 습했다. 옆에는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가 나의 현재 상태와 처한 상황을 알려줬다.


믿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도 추앙받으며 세상 모든 부 누리던 내가, 가슴에 박혀있는 전자석을 차량용 배터리에 연결한 채 어느 동굴에 피랍되어 있었다. 수많은 의문점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그런 혼란은 오래갈 수 없었다. 낯선 무리들이 들어서고 있.


"미국 역사상 최고의 살인마 스타크 씨를 환영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목적을 알게 되자 혼란은 더 가중됐다. 난 테러 단체 무기 제작을 위해 계획적으로 납치되었다. 내 능력 개인의 야망을 위한 대량 살상 장치로 발현되고 있다. 아니, 결국 내가 만들던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닌, 그저 죽이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 손끝에서 탄생한 무기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살점을 흩뿌렸는가. 난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고문에 굴복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유일한 친구 '잉센'을 위협했을 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묘한 분노와 책임감이 끓는다. 탈출하자. 그들이 아닌, 나를 위한 무기를 만들자.


#3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수많은 생명, 무엇보다도 정들었던 동지 잉센을 잃었다. 남은 건 나뿐이다. 사막 어느 지점에 추락했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기엔 내리쬐는 태양이 너무 뜨다. 식도 타들어갔고 발끝 쇳덩이 같았다. 그저 오른쪽 발자국을 스치며 왼쪽 발을 뻗을 뿐이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한 가지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후 증상 - 사회적으로 드러난 그의 모습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온 남자, 그의 트라우마는 이후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세간을 통해 들리는 소식을 통해 그에게 나타나는 사후 증상을 유추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우리는 그가 아이언맨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하물며 그 존재 자체를 믿는 게 쉽지 않겠죠. 하늘을 나는 로봇이라니, 참.



미국의 영웅, 군수 산업을 포기하다.

증상 1. 사건과 유사하거나 상징적인 단서에 대한 심리적 고통 및 경계


그가 미국에 발을 딛고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군수분야의 생산 중단을 선언합니다.  


그야말로 날벼락같은 소리입니다. 미국의 영웅적 공로로 추앙받던 핵심 사업을 그만둔다니 말이죠. 아마도 최근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군수 산업에 대한 판단을 바꾸어 놓았나 봅니다. 그의 독단적인 결정이 미국의 사회 및 경제적으로, 그리고 관련 분야에 관련된 이들의 삶에 미치게 될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모두가 충격에 빠집니다. 언론은 그를 향한 우려와 규탄의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동업자이자 친구인 '오베디어 스텐(민머리 아저씨)'과의 사이도 악화됩니다.



더 이상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증상 2. 현실과의 연결 고리 단절


기자 회견  이후 그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저택 지하실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으며, 어떤 방문객도 만나주지 않습니다. 든 사회적 활동 정지된 상태. 마치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지하실의 얇은 유리벽으로 단절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주위 지인들의 독려와 충고에도 그의 유리벽은 열리지 않죠. 어느 날 문득 파티에 나타나 자신의 비서와 춤을 추는 등, 엉뚱한 행동을 할 뿐입니다.



그의 지하실이 궁금하다.  

증상 3. 외상과 연관되는 자극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곳에 몰두



그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들려오는 풍문에 의하면 무슨 로봇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요. 군수 산업을 주도하던 그가 로봇을 만들다니, 자신의 전공인 기계공학에 몰두하고 있나 봅니다.



사이코 과학자

 증상 4. 현실 검증력 약화


스타크 공업 건물의 폭발 및 사고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에서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사고 당시 로봇이 출현하였다는 설이 있던데, 어쩌면 토니 스타크에 대한 구설수들이 사실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내뱉은 말은 충격 그 이상입니다.


나는 아이언맨입니다.”


사실일까요. 아니면 단지 현실에 대한 그의 판단력이 약화된 것일까요. 우리는 아이언맨이라 불리는 그 로봇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기사 문구는 모호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래도 토니 스타크는 당시의 피랍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상태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이언맨이길 바랍니다.





트라우마, 최소한의 보상


SF영화에 심리 문제를 대입시킨다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네요. 그럼에도 토니 스타크를 통해 외상 후 증상들을 살펴본 이유는, 동일한 외상이라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대로라면 그에겐 공격적 성향,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약물 남용 등 또 다른 심리 문제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원작의 후속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죠.) 그런데 여기 좀 더 균형 있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외상(trauma)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초기 심리학 연구 연구들은 주로 실제 죽음이나 신체 위협, 극심한 무력감과 공포 경험에 대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뒀습니다. 따라서 극심한 스트레스의 지속, 통제감 상실, 일상생활의 마비, 자신과 타인의 비난 등 그 부정적인 영향을 주로 다루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개념을 정립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들에 삶에 있어서 중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는 다양한 단서들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관점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 PTG)'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습니다. 이는 '삶에서 겪는 역경에 대한 투쟁으로 얻게 되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여기에서의 '변화'가 해당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즉 사건 이전의 적응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심리적인 성장을 포함다는 사실입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 그대로, 힘든 사건을 겪고 그로 인해 감당한 고통과 시간만큼 그 반대의 영향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수년간의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것이죠. 갑작스러운 사건과 그로 인한 어둡고 습한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낸 이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보상일 것입니다.


잊지 못할 상처가 있나요?


당신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과거의 선택을 원망하기보다 지금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자신을 격려해주세요. 세월이 흘러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때, 척박하게 식어버린 것 같았던 그 길에서 반짝이는 어떤 것을 찾게 될 거예요. 앞으로 남은 길을 따스하게 비춰줄.


자신이 아이언맨이라던 미친 과학자. 그는 피랍 사건을 었으며 슴에 배터리를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어느 날,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가슴속에 있던 말을 다시 꺼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인류를 지켜냈습니다.


"I am Iro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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