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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소설 속에서 살고 있다면?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과 '죽음 현저성'

by 왕고래 Jan 06. 2025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소설 속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요?

이 소설은 실존하며, 그것을 쓰고 있는 작가도 존재해요. 나는 그 작가가 쓰는 소설의 내용대로 살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것대로 살게 된다고 합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작가를 만나 볼까요? 소설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쓸까요?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의 주인공인' 해롤드 크릭(웰 페렐 분)'이에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해롤드는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그는 IRS(국세청) 감사관으로 일하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72번 칫솔질을 하고, 같은 넥타이를 매며, 8시 17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그의 인생은 숫자와 시간에 맞춰진 완벽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해롤드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소설 속 내레이션처럼 그의 행동과 생각을 모두 알고 있었죠.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목소리가 "곧 다가올 그의 죽음도 모른 채"라는 구절을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수소문 끝에 해롤드는 자신이 '케이 에이펠'이라는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이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모두 죽여 왔다는 사실도요.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니, 이번 작품에서도 해롤드의 죽음을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하고 있을게 분명해요.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해롤드.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이 남자의 일상은 바뀌게 됩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기타를 배우고, 오토바이를 타요. 평소 다가가지 않고 지켜보던 ‘아나 파스칼(매기 질렌할)’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죽음 현저성


본디 해럴드는 별생각 없이 규칙적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작가 케이 에이펠이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신의 삶이 이미 정해져 있고, 심지어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삶은 빠르게 변화했어요. '언젠가' 하려고 했거나 '오늘은' 내지 못했던 용기를 하나씩 실현한 것이죠.


그가 이런 변화를 겪게 된 이유는 '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이라는 현상 때문입니다. 이 현상의 의미는 '개인이 죽음에 대해 깊이 사로잡힌 상황'인데요. 무의식 세계에 있던 죽음이 의식세계로 또렷하게(현저, 顯著) 나타나 활성화된 것을 의미해요.


'활성화'된다는 것은 그것이 평소엔 '비활성화' 되어 있다는 의미겠죠? 인간에겐 방어적인 차원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억압해 두는 장치가 있는데요. ‘죽음’에 대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내 생명은 꺼져가고 있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살면 어떻게 될까요. 횡단보도, 엘리베이터, 심지어 내가 대화하고 있는 사람과 먹고 있는 음식까지 모든 것들이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아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이유로든 반드시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이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무의식의 영역으로 비활성화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가까운 이의 장례식장에 가거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뉴스를 접하거나, 사고로 인한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등, 죽음에 가까운 일을 겪고 나면 억압되어 있던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나도 죽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돼요. 이 상태가 바로 '죽음 현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죽음 현저성이 나타나면 인간은 그로 인한 공포감을 조절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 삶의 의미와 목표를 조정하는 것이에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택하던 행동들을 철회하고'더 나은 오늘'을 위한 선택들을 우선 시 하게 되는 것이죠.


영화 속 해롤드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오히려 자신에게 '실제로' 의미 있는 것들로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합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인식이 더 충만한 일상을 이끌게 된 것이죠.



오늘이 만드는 결말


작가 케이 에이펠은 결국 해롤드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그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해롤드의 변화된 삶을 지켜보면서 고민에 빠져요. 그렇게 소설의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그녀는 깨닫습니다. 언제 어떻게 죽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오늘 하루의 삶이라는 것을. 그것은 결국 신이 만든 이야기의 결말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만약 당신이 소설 속에 있고, 7일 뒤에 어떤 사고로든 죽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당신은 오늘이 몇 번째 날인지 오전인지 오후인지 매 순간 알아채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 눈과 코와 귀와 입을 크게 열고 모든 감각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기간이 늘어났을 뿐, 우리는 여전히 어떤 소설 속에 있습니다. 언젠가 끝이 날 텐데, 심지어 남아 있는 페이지가 얼마 없을지도 몰라요. 각 페이지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담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고, 불쾌하며, 막막한 일들이 범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는 오늘의 소중한 순간들을 눈치채 보면 어떨까요.


영화가 끝나며 작가인 케이 에이펠은 하나의 메시지를 남깁니다. 소설 속 인물인 해롤드를 관찰하던, 또 다른 소설 속의 우리에게.


때때로 우리가 두려움과 절망을 느낄 때,
판에 박힌 일상에 빠질 때,
희망이 없고 비극에 빠질 때,
우린, 설탕 쿠키를 주신 신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쿠키가 없을 때
피부에 닿는 친근한 손에서 인식을 찾을 수 있다.
혹은 자상한 선물에서,
혹은 미묘한 격려에서,
혹은 포옹에서,
혹은 위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뉘앙스, 예외, 미묘한 차이 등.
우리가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훨씬 크고 고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구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오늘의 의미를 찾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많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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