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
<80년생이 간다>를 연재하다 보니 잊고 살았던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먼지가 자욱하게 쌓인 다락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벽에 붙어 있던 손전등으로 삭아가던 상자들을 하나씩 비춰보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기억을 담고 있을지 모를 그것들을 열다 보면 '아! 이런 일도 있었지'라며 놀란다거나, '와, 이건 반드시 써야겠다'라고 결심하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영화 <타이타닉>은 '와, 이건 반드시!'에 해당하는 상자예요. 그런데 <80년생이 간다>에 쓰려다 보니, 왠지 본래의 주제에서 멀리멀리 벗어날 때까지 TMI를 멈추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바로 그것)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 매거진으로 달려와 일러 바치 듯 적습니다. ㅎ
영화 <타이타닉>의 대단함에 대해 설명하는 건 입이, 아니 손가락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개봉 후 약 27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전 세계 영화 박스오피스 TOP 10]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작이니까요. 10위권의 작품 중 유일하게 20세기 영화이기도 합니다. 네이버 영화평을 보니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평이 "5년 단위로 재개봉해야 할 영화"네요. 흥행 순위를 넘어 이 영화가 갖는 가치를 잘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타이타닉>을 포함하여 1위, 3위의 아바타까지, 모두 같은 감독의 영화라는 점도 놀라운 포인트!)
1. 아바타(2009) - $29억
2. 어벤저스: 엔드게임(2019) - $27.9억
3. 아바타: 물의 길(2022) - $23.2억
4. 타이타닉(1997) - $22.6억
5.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 $20.7억
6.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018) - $20.5억
7.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 $19.2억
8. 쥬라기 월드(2015) - $16.7억
9. 라이온 킹(2019) - $16.6억
10. 어벤저스(2012) - $15.2억
영화 <타이타닉>의 줄거리나 감상평에 대한 글은 인터넷에 정말 많이 있어요. 저 역시 방어기제의 억압과 억제의 사례로 이 영화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영화의 소개는 생략하고, 조금 더 개인적인 내용으로 넘어갈게요!
<타이타닉>은 저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 인생 영화 중 하나예요. 최초 개봉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이 영화만 극장에서 세 번을 봤을 정도로 푹 빠졌었어요. 그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며칠간 끙끙 알았다죠. 당시의 일기장은 그 대사나 감상으로 몇 페이지씩 도배되어 있죠.
저는 잭 도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참 힘들었답니다. 어린 마음 반, 둘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반으로, 잭이 다시 살아서 로즈와 마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래서인지 일기장의 많은 부분은 잭 도슨의 죽음을 기리 듯 그의 생전 행동들을 기억하기 위한 묘사들이 주를 이뤘어요.
27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긴 여운을 달랠 겸 '죽은 잭 도슨을 다시 살려보자'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재미로 쓴 것이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찬란했던 순간으로 남아
#1.
잭 도슨은 바다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대서양의 칼날 같은 냉기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마지막 호흡이 빠져나가자 그는 이제 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점차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한 불빛이 다가왔고, 잭은 자신의 기운이 미세하게 회복되는 걸 알아챘다. 그는 무척 살고 싶었기에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굳어있는 다리를 힘껏 걷어차며 수면 위로 몸을 밀어 올린다.
수면 위는 아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하늘 아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타이타닉의 잔해와 함께 명운을 달리 한 수많은 사람들이 떠있었다. 로즈를 찾아야 한다. 잭은 미친 사람처럼 그들을 뒤집어 봤다.
얼마 후 구조대가 다가와 마지막 생존자인 잭을 구출하려 한다. 아직 그녀를 찾지 못했다. 잭은 있는 힘껏 뿌리쳤지만 결국 배에 실리고 말았다. 얼어붙은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2.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잭은 여전히 타이타닉의 비극에 대한 슬픔, 그리고 로즈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술집과 식당에 가고 예전처럼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그의 저변엔 늘 로즈가 머무르고 있었다. 타이타닉의 생존자 명단엔 그녀가 없었지만, 잭은 왜인지 로즈가 살아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즈에 대한 그리움은 잭의 미술 작품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봤던 로즈의 아름다움과 그녀의 영혼에 담겨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것만이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영원히 유영하는 방법이었다.
#3.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희대의 미술가 '잭 도슨'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머리와 수염 모두 백발로 덮인 그 작가는 자신의 전시회를 방문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던 도중 믿기 힘든 장면을 보았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로즈가 서있었다.
그녀는 잭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잭은 알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여인은 로즈라는 것을, 아니 로즈와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을.
#4.
메리는 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잭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할머니 로즈와 이 작가를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를 뉴욕으로 초대했다.
#5.
두 사람은 천천히 다가와 포옹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마주 보았다. 서로의 얼굴에 담겨 있는 지난 시간들을 살폈다. 아무 말 없이 보았다. 이윽고 눈물이 흘렀다.
잭과 로즈는 천천히 대화를 했다. 그들은 정오쯤 만났는데 해가 산 너머로 숨어들며 짙은 노을을 만들 때까지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배가 고픈 것도 모르고 그렇게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잭은 자신이 그동안 그림으로 남겼던 로즈의 삶을 보여주었다.
둘은 알고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정말 그러고 싶지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현재에 감사했다. 타이타닉에서의 시간이 비극의 무덤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는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찬란했던 순간으로 남아
이렇게 생생하게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