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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Feb 13. 2016

위험한 기회라서 '위기'

#38. 간헐적 강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여지없이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시장 골목,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분식집에서 점심을 주문했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에 흙 묻은 손 털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처럼, 인근 상인 대부분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업무를 털고 ‘행복분식’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곳에서 함께 자라온 이들끼리 오랫동안 공유해온 약속 같은 것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던 오토바이 소리는 마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마냥 그 시간대의 알람 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5분 간격으로 울렸는데 점심시간이 지난 두어 시까지 이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이 소박한 골목에도 도심에서 봤던 익숙한 이름의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그곳들은 거의 모든 한식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각종 찌개와 분식으로 이곳의 점심을 책임지던 행복분식도, 체계적인 시스템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대리야키 치킨 덮밥을 당할 수는 없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맛은  다양해졌다. 그렇게 오토바이 소리는 점차 줄어갔다.


최근 봉다방에 한차례의 제안이 있었다. 행복분식 자리를 봉다방에 넘긴다는 것이다. 동류 체인점들에게 눈 뜨나 감으나 코 싹싹 베이던 분식집 사장님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한 권리금에서 '피할 수 없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거대한 권리를 팔려는 것일까. 더군다나 봉다방은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봉순은 돈 없다며 깔끔하게 고사했고 안달 난 봉팔이만 시간을 달라며 중재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주일? 아니, 그도 안 된 것 같다. 건물주가 봉다방 문을 열고 봉순의 안색을 새하얗게 만든 바로 그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행복분식 간판이 내려지고 있었고, 건물주와 분식집 사장님, 부동산 사장님 그리고 50대로 보이는 초면의 남성이 그 앞에 서있었다. 내려지는 간판을 보며 무언가 심각하게 얘기하던 그들은 내가 옆을 지나치자 웃음인지 뭔지 모를 표정을 보이며 인사를 받았다.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 네 명은 서로에게 달콤한 존재였던 것 같다. 행복분식은 보다 많은 액수를 통해 그 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 권리, 그러니까 봉다방으로 인해 발생한 위치적 특수를 얻게 된 누군가는 대담하게도 그곳에 카페 체인점을 들였다. 건물주는 더 높은 월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연결해준 부동산 사장은 묵직한 수수료를 챙겼다. 네 개의 이권이 모여 도무지 상도라고는 없는 신의 한 수를 놓았다.


그들 모두 봉순이 자라온 모습을 봐온 이들이다. 봉다방이 처음 생겼을 때 내가 돌린 시루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동안 봉순이가 그리고 그녀의 다방이 얼마나 많은 침을 삼키며 꿋꿋이 전진해왔는지 봐왔다. 그들은 안다. 이 건물이 본래 그녀의 부모님 소유였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이 건물, 특히 골목과 정면으로 맞닿는 행복분식 자리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말이다. 행복분식이 없다는 건 그곳에 봉다방이 있다는 것, 그녀는 몇 번이고 말했다.


그들 모두 아비의 마음으로 봉순을 응원해 주었고 봉다방은 잘 자라 왔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주변으로 젊은 층의 유동인구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정말이지 모든 건 시간의 문제였다. 그런데 그렇게도 아비 같던 사람들이 봉순의 주머니에 작은 칼집을 내고는 ‘그래도 다 찢은 건 아니다~?’라며 능글맞게 웃고 있다. 탓할 순 없다. 내 자식 같다 하였지만 친 자식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냥 그런 웃음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이 왕십리 시장 골목에서 봉다방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초기 비용이 적었기 때문이야. 예상보다 적자 상황이 길어져도 버틸 수가 있었지."


그녀가 머신의 노즐을 통해 시냇물처럼 흘러나오는 커피를 바라보고 있다.


“반대로 체인점은 초기 비용은 물론, 인건비, 수수료 등 유지비용도 꽤 많이 들어. 봉다방이 세발자전거라면, 체인점은 2500cc 세단 승용차랄까? 기사까지 딸린.”


자동차에 문외한인 봉순에게 이 예시가 적절한지 되새기며 그녀를 살폈다. 커피의 향을 맡아보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멈추고 다시 향을 맡은 후 맛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흔들렸던 갈색 머리칼은 그녀의 고개가 향하려던 곳을 알려주었다. 뭔가 더 얘기해보라는 신호다.


"생각해봐. 만약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체인점으로 차리겠어?"


“아니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결국 돈 넣고 돈 빼기가 목표일 수 있다는 거야. 오래 못 버텨.”


사실 봉다방이 이 좁은 시장 골목에 버틸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커피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봉순의 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발자전거의 진심.


"어떤 식으로든 진심은 전달된다고 생각해."


내 진심 빼고.


"커피 잔의 온도에서 조차 말이지."

"치- 오픈이나 해."


그녀가 특유의 소리를 내고는 자리를 턴다. 밤새 잠을 설친 건지 유난히도 건조하고 주름도 그늘도 늘어난 그 얼굴에 잠시나마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내 얘기가, 그 마음이 그녀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웃음은 나에게 왔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시들어가는 꽃의 미약한 양분에서조차 흥분해야 하는, 그 짝사랑이란 것의 연약함에 혀를 차며 오픈 준비를 한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손님, 주문, 빵을 오븐에 넣고, 커피를 내리고, 초단위로 들리는 뿔테의 거친 발소리를 인내하고, 접시의 물기를 닦고, 설거지를 하고, 봉순의 안색을 살피고, “조인성 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뭐라노 2잔, 다방 라테 1잔 나왔습니다.”, 시럽 통을 갈고, 몇몇 테이블의 작은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구석 뙈기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고양이 눈을 피하고, 과일  사 오는 길에 얼개를 갖춰가는 카페의 공사장면 보고, 그 장면을 봤을 봉순의 안색을 살피고, 어느덧 다가온 뿔테에게 밝은 얼굴을 꺼내고, 다시 마로의 눈빛을 피하고, 번갈아 저녁을 먹고 나면 저녁 손님들이 찾아오고, 그들의 저녁시간을 완성시키기 위해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다.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다. 남은 접시를 닦는다. 커피머신을 끄고 분리한다. 씻는다. 뒤늦게 손님들이 들어선다. 내일도 봉다방이 있을 것임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다. 음악 소리를 줄인다. 그렇게 마감시간이 찾아온다.


“한잔?”


유리문을 잠근 후 그 앞의 진열장을 검은 천으로 덮으며 봉순이 물었다.


“아, 이런. 난 오늘 가봐야 돼.”

“술을 마다 한다고?”


마다할 리 없어. 더구나 너와 함께인 술이라면.


“응. 미안. 집에 일이 있어. 나 없이 회 먹으면 안 돼~!”


그렇게 외치며 뛰었다. 등 뒤로는 늦은 밤까지 공사 중인 1층 카페의 불빛 그리고 불 꺼진 봉다방이 있었다. 그 어딘가에서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봉순도 있을 것이다. 난 그녀의 제안, 특히나 그것이 술자리인 경우엔 거절한 적이 없다. 오늘 같은 날이라면 더더욱 그녀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어주고 싶다. ‘한 잔?’ 이라며 하루 내 모아뒀던 웃음을 꺼내 보였다. 그 얼굴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동했고, 아팠고, 그녀와 함께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할 일이 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가방을 던진 후 컴퓨터를 켰다. 건물주가 다녀간 어제, 그리고 오늘 밤, 아니 새벽, 나는 프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좀 더 명확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제는 부동산법과 상권의 원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잠자는 시간을 3시간으로 줄이며 알아보았음에도, 별도의 소모전을 거치지 않고 1층의 카페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오히려 좁은 장소에 유사 업종이 많이 생기는 경우 ‘경쟁적 군집화’ 효과가 발생하여 지역발전 차원에서 좋다는 사례만이 눈에 띄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진다니, 시장 골목에선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오늘 낮, 봉순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뱉었지만 어쩌면 그건 굴러들어 온 돌에 대한 감정적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떤 수확도 없었던 지난밤의 초조함이 그렇게 그녀에게 전달되었을지도, 그녀도 그런 내 초조함을 읽었을는지도 모르겠다.


11시. 아직 시간이 많다. 법전에는 봉다방을 도와줄 장치가 딱히 없으니 실전으로 진검 승부를 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행복분식의 뒤를 따라 좀 더 후미진 어딘가로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주머니 두둑하게 떠나는 분식집의 뒷모습을 쓸쓸하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겠지. 하지만... 그저, 뭐, 일은 이렇게 되었지만, 함께하던 무리에서 원치 않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와중에도 새로운 행복을 위해 힘을 줘야 했던 그 선택 자체에서는, 묘하게도 슬픈 느낌이 든다. 어둠을 뚫고 책상으로 흘러내리는 탁상 등의 불빛 때문일까, 새벽을 앞둔 심야가 주는 고독함일까, 아니면 내 지난 인간관계가 떠올라서 일까.


꽤나 쾌활했던 시절이 있었다.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고 그녀도 나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여겨졌다. 사춘기 찾아들던 그 시기에, 그녀의 존재는 인생을 다 걸만큼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무리에 섞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 무리에 있는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난 솔직한 편이었다. 그녀에게도 내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했고 그 무리의 친했던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했다.


어느 날 그들을 만나기 위해 갔을 때, 내가 전혀 다른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편에 열 맞춰 선 그들은 시종일관 불쾌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그녀에 대한 솔직함, 그 주변인에 대한 진심이 얽히면서 난 꽤나 난잡하고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 얘에 대해서 뭐라고 했다고?”


진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좀 해보고 싶다고 했다며?”


그런 단어를 쓴 적이 없다.


“그걸 걔한테 얘기했다고?”


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얘가 걔 좋아하는 건 알아?”


몰랐다. 정말.


“둘이 오늘부터 사귄대.”


나에게 보인 모습은 뭐였을까.


“우린 너란 새끼가 어떤 놈인지 알게 된 거야.”


둘의 만남이 왜 나의 인간성과 연결이 되었던 걸까. 왜 그들은 우리라는 단어를 쓴 걸까. 왜 날 그렇게도 몰아세우고 비아냥거렸던 걸까. 그저 처음부터 난 그곳에 초대받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걸까. 그들을 떠나는 내 뒷모습은 어땠을까. 적어도 주머니는 두둑해 보였겠지? 욕을 그리 많이도 챙겼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먹으라며 죽 끓여주시는 엄마가 남으로 느껴질 만큼, 내 세상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많던 생각들은 몇몇의 간단한 명제로 축약되었다. 말은 옮겨간다는 것, 바로 옆 사람의 귀는 모든 사람의 입을 뜻한다는 것, 때문에 솔직함에도 깊이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


그 맘 때쯤 지금의 내가 태어난 것 같다. 그 정도의 솔직함만이 존재하는 그저 그런 성격의 봉팔이.


쓸 만한 자료를 추리고 나니 자정이 되었다.

인간 노트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세부 전공서의 목차들을 반복해서 보았다. 그중 인상적인 내용은 페이지를 펼쳐서 직접 읽어보았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연두색 테이프를 붙였다. 그래 이거야, 하다가도 확신이 서지 않는 내용엔 파란색 테이프를 붙였다. 꽤 확실하다고 생각되면 노란색 테이프를 붙였다. 노란색 테이프가 붙어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사례를 찾아보았다. 성공사례가 많고 좀 더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엔 영광의 주황색 테이프를 덧붙였다. 그렇게 자정 무렵이 되자 대여섯 권의 전공서는 다리 수십 달린 지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네 중에서도 유독 주황색 다리가 많은 놈이 눈에 띄었다. 그 몸통에는 ‘행동심리학’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뇌라던가 신체처럼 둥그런 그림들이 많은 다른 전공서적에 비해 유독 각진 도형들이 많이 배치되어있는 책의 표면, 그곳에서 행동심리학의 남다른 각이 느껴진다. 실제로 심리학의 많은 세부 분야 중에서 그 개념이 가장 깔끔하고 분명한 분야는 행동심리학이 아닐까 싶다. 확실하고 장기적인 무언가 필요한  현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서인지 웬만해선 파블로프의 개 정도는 알고 있고, 그것이 마치 행동심리학의 상징처럼 표현되고는 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그런 상황 속에서 개처럼 침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고전파 행동심리학의 조건반응 원리만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행동심리학에는 숀다이크(Thorndike)도 있고, 왓슨(Watson), 스키너(Skinner)도 있다. 그들은 ‘효과의 법칙’이라는 이론을 통해 강화, 처벌, 선행 자극 등, 인간의 광범위한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개념들을 발전시켰다.


가장 많은 주황 딱지가 붙어있던 개념은 ‘강화(reinforcement)’였다. 무엇이 그리도 나를 매료시킨 것일까. 강화는 어떤 상황에서 특정 행동으로 인해 보상이 주어졌을 때 이후의 유사한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할 확률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선생님께 집중력이 좋다며 칭찬을 들은 수업에서는 이후에도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 비가 올 때 우산을 펼치면 비를 안 맞을 수 있게 되고 이후부터는 비가 올 때 우산을 펴게 되는 것,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더니 음료가 나와서  그다음에도 음료를 먹기 위해 동전을 넣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 행동을 반복한다는 이 간단한 원리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조금만 응용하면 꽤나 강력한 장치를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던 행동에 갑자기 보상이 없어진다면, 우린 그 행동을 또 하게 될까?


또 한다. 이전보다 많이 하진 않지만 당분간은 보상이 없어도 그 행동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러다가 다시 보상이 주어지면 그 행동은 더 강화된다. 놀랍게도 특정 행동에 대한 규칙적인 보상보다는 불규칙적인 보상이 주어질 때 그 행동은 확연하게 더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강화 전략 중에서도 으뜸인 ‘간헐적 강화’이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는데 음료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으면 오히려 동전을 많이 넣을 리가 있냐고? 물론 그럴 리 없다. 하지만 그 자판기가 배팅 머신으로 바뀌는 순간 얘기는 달라진다. 간헐적 강화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사례에는 도박이 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도박판에 들어가면 못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도박판에서는 초반 유입자에게 많은 보상을 얻게 한다. 그렇게 배팅 행위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유지되고 나면, 관리자는 점차 보상의 빈도를 불규칙하게 줄여간다. 그럼에도 유저의 배팅 행위는 오히려 증가하게 되고, 결국 이전의 몇 배에 달하는 배팅에 한두 번씩만 보상을 주어도 그 행동은 유지된다. 실제로 그렇다. 매우 무서운 일이다.


봉다방이 도박장도 아니고 줄 수 있는 보상도 제한적이지만, 오히려 그 ‘제한’이 간헐적 보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뿔테의 디저트는 이 작은 시장 골목에서 팔기 아까울 정도로 그의 프로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맛은 물론이고, 재료의 아낌이 없으니 이윤도 거의 남지 않는다. 준비했던 대부분의 디저트는 저녁 시간 전후로 다 팔리고는 한다.


지금까진 다 팔린 후라도 재료를 더  사 와서  주문받은 디저트를 추가로 만들고는 했다. 그때마다 뿔테는 맛의 품질을 우려했다. 미리 숙성시켜 놓지 않은 재료이기 때문에 그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 만들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봉다방 앞에 '품절' 간판을 세운다. 오늘은 그 디저트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걸 공유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 품절 간판을 보게 되니, 디저트를 먹기 위해 봉다방을 찾는 행동을 간헐적으로 강화시키는 셈이다. 물론 디저트의 품질도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다.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 소리를 내며 정적을 깬다.


“새벽 2시야. 잠도 없냐?”


- 크크 왠지 안 자고 있을 것 같더라.


“이 시간에 웬일이야?”


- 니가 보라고 했던 영화 봤거든.


친구에게 추천했던 영화가 있었다. 방금 그 영화를 다 봤고, 결말 부분의 장면에 대해 얘기하려고 전화했단다. 새벽 2시에 그런 일로 전화하다니, 아주 촉촉한 놈이거나 아예 아무 생각이 없는 놈이다. 영화 후반부, 무명에서 한 순간에 대스타가 된 운동선수가 기자들 틈에서 한 남자를 바라본다. 묵묵히 자신을 믿고 지원해준 에이전트. 그들은 서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뜨거워지는 눈에 힘을 준다. 그렇게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사나이들의 포옹을 한다. 그 장면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단다. 그런데 지금 내가 나누고 싶은 얘기는 사나이들의 포옹이 아니다.


- 진짜? 진짜 좋아한다고?


“뭐. 그렇게 됐다.”


친구는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 야야. 거봐. 절대 시간 말이야. 있다니까?


그는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녀도 나를 향해 오고 있다나….


- 내가  그쪽으로는 전문가야. 믿어라!


뭐, 그 녀석의 전문성을 못 믿는 건 아니다. 다만 절대 시간에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춘기의 한차례 쓰나미를 겪은 후 난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간 적이 없다. 그렇게 긴 시간을 밀물만 바라보며 지냈다. 그런데 그 규칙에 잠시나마 균열이 생겼던 날이 있다. 봉순에게 다가간 순간이다. 그녀는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었다. 대학생활 내내 한결 같이 이끌어 주었다. 편했다. 이제는 좀 더 솔직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그녀가 편안했다. 어쩌면 4년간의 대학생활 동안 이미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절대 시간은 언제 완성된 것으로 정의해야 하는 걸까.


“봉팔이 맞지.”


8년 만에 들었어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봉순이였다. 그녀가 나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 순간, 지난 8년이 그녀의 전화를 받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 한 통의 전화에 8년간 축적한 삶을 거짓말처럼 내려놓았다. 이러니저러니 했어도 이렇게 결국 그녀의 옆이다. 형광펜 도배된 두꺼운 서적을 넘기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다. 이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란 말인가.


인지부조화로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봉순에 대한 오랜 노력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녀를 좋아했던 것으로 나를 정의하고… 아니, 아니다. 그 노무 인지부조화는 애초에 맞지가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쯤 봉다방에 대한 이야기가 어딘가에 실려 있어야 한다.


뭐, 아무렴 어때. 내가 쓰면 된다. 그녀와 봉다방의 이야기.

거실에서 텔레비전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 휴무이신 아버지께서 늦게까지 거실을 지키셨나 보다. 행여 텔레비전 소리에 가려져 있었던 내 인기척이 드러날까 숨을 죽인다. 봉다방을 선택한 뒤로 부모님과의 관계가 편치 않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모님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이 늦은 시간까지  그놈의 ‘알바’를 위해 어둠 속에서 퀭한 눈으로 불 밝히고 모습을 보신다면, 한숨을 톤 단위로 쏟아내실 게 분명하다. 이해한다. 봉다방은 나에게만 봉다방 일뿐이니까. 자, 시간이 없다. 집중.


실제로는 보상의 효과가 없는 대상에도 그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가령 오른손을 들 때마다 원하는 보상을 주면서 노란색 종이를 보여주면, 이후에 원하는 보상을 주지 않고 노란색 종이만 보여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손을 드는 행동이 유지된다. 보상의 효과와 노란색 종이가 연합된 것이다. 그리고 연합이 강력할 경우엔 별도의 보상 없이 그 대상만으로 행동을 강화시킬 수 있다.


적절한 예가 떠오른다. 돈. 우린 왜 그리도 돈에 목숨을 거는 걸까. 돈은 교환의 수단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돈을 사용하지도 않고 쟁여놓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자식 같다던 아이의 주머니를 찢기도 한다. 그 자체로만 보면 소금 한 줌보다 가치 없는 종이조각인데 말이다. 종소리에 침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야말로 돈을 지불하는 행위와 그로 인한 보상이 강력하게 연합….


깜빡 졸았다.

집중!


연합이 가능하다는 것은 일반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 보상을 받았던 기억과 유사한 상황이나 장면에서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봉다방의 디저트 품절 간판을 본 행인들은, '원하던 무언가를 얻지 못했던' 유사 경험에서의 태도나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렇게 어제 품절되었던, 혹은 오늘 품절될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작정 봉다방 문을 여는 것이다.


그렇게 불특정 다수의 접근 행동이 증가하다 보면, 운 좋은 날은 그 좁은 유리문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좋다.  그중 몇은 기다리다 못해 1층의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괜찮다! 다시 봉다방을 다시 찾을 것이다. 미쳐 못 먹었던 디저트를 먹기 위해.


휴대폰의 정각 알람이 울린다. 6시다. 정말이지 새벽의 기운은 묘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실제로는 더 빨리 흐르나 보다. 내일을 위해, 아니 곧 있을 그녀와의 재회를 위해 자야 한다. 자자.


봉다방에서의 시간은 청년으로써의 마지막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듯 강렬하고 즐거웠다. 그녀는 이제 너무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녀에겐 다른 이가 담겨있다. 내 자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상황은 해결해야 한다. 그녀의 모든 것이 있는 이곳을 지켜내야 한다.


다윗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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