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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의 해외 나들이

by 마미의 세상


"아빠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일순간 남자들의 얼굴에 황당한 기색이 스친다. 우리가 너무 했나? 막내가 어려서 캐나다 여행을 다녀온 후로 온 가족이 여행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해외에 있다. 어렵게 남편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여행 내내 우리 세 모녀는 뭇 남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빵 가게를 그만두고 주부로 돌아온 어느 날, 증권회사로부터 우편물이 도착했다. 항상 바빠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던 것! 주주총회가 있나? 하며 열어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은행 다닐 때 재미로 주식투자를 한 적이 있었다. 출근하면 계산기를 두들기며 흥분하고 좋아했던 날들, 그러나 천 포인트를 찍은 주식시장은 이내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아주 소심한 심장을 가진 나는 떨어지는 주가에 가슴만 철렁이다 겨우 원금을 회수하고는 끝을 냈다. 적은 금액인 데다 단주 처리하는 것도 귀찮아 방치해 두었던 단주들이 10여 년 동안 목돈이 되어 돌아왔다. 어떤 회사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회사로 변해 있었다. 재빨리 현재가를 조회해보니 삼백만 원이나 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수능을 끝낸 막내딸과 대학을 졸업한 큰딸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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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환영하기 위하여 애들 좀 풀었는데..."라고 말하며 훤칠한 베트남 가이드는 연신 창밖을 내다본다. 반신반의하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눈앞에 나타난 수많은 오토바이들. 우와~ 대중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은 이곳의 시민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다. 헬멧과 마스크를 쓴 채 부릉거리며 자동차들 사이를 종횡무진 달리고 있다. 60년대쯤의 우리나라 모습을 한 도시 풍경보다 내 눈을 끈 것은 오토바이를 탄 다양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두세 명이 한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진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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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딘 광장에 우뚝 서있는 건물이 호찌민의 묘소다. 늦은 시간이라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나 묘소 안에는 미이라로 보관된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한다. 이곳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들도 그를 존경하는 마음에 자주 찾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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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그리 부유하게 살고 있지는 못하나 까무잡잡하면서도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은 까만 눈을 반짝이며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의 열강을 이겨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길거리 곳곳에는 자랑스러운 그들의 우상 호찌민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이번 베트남 여행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하롱베이다. Ha(下) Long(龍) '하늘에서 내려온 용'을 뜻한다. 바다 건너 중국이 베트남을 침략하자 이를 막기 위하여 하늘에서 용과 그의 가족이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들을 내뿜었는데 그것들이 바위가 되어 하룡만의 섬들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베트남 화폐 20만 동짜리의 뒷면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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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 섬들을 처음 본 순간 그냥 앉아서 볼 수만 없었다. 혹시 잊힐까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그 장엄한 풍경을 작은 앵글 속에 담을 재주가 내게는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섬들 앞에 콩닥 이는 가슴을 진정하고는 눈으로 가슴으로 그들을 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탄성 소리가 들리면 일제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곤 했다.

작은 배로 갈아타고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비밀의 호수다.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물이 차면 들어갈 수 없는 곳, 바깥 세계와 단절된 둥근 호수는 고요하고 아늑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배에 탄 그 누구도 숨소리마저 죽이고 그 세계에 빠져든다. 높고 푸른 하늘, 기암괴석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나무들 그리고 희귀종 원숭이들이 있을 뿐이다. 놀랍게도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이 초코파이다. 정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던져 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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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은 한참을 섬 사이로 돌아다니다 보혼섬 앞에 우리를 내려준다. 승솟동굴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좁은 통로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동굴의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각종 조명이 비친 곳에는 갖가지 형태의 종유석이 자라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신비롭고 경이로운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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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밖 높은 곳에서 바라보이는 하롱베이는 한 폭의 수채화다. 아담하고 작은 섬들이 수줍은 듯 섬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섬에 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섬 옆의 바다에 수상가옥을 지은 채 관광객을 상대로 생선을 팔고 앳된 청년들과 나이 든 여자들까지 나룻배를 저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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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맛보는 신선한 회와 각종 해산물은 정말로 꿀맛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잡히지 않는다는 다금바리란다. 회보다는 각종 쯔키다시를 좋아하는 나는 다양한 조개와 생선조림 어묵 나물만으로도 푸짐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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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은 곳이 티톱 섬이다. 인공으로 만들어졌다는 미니 모래사장도 있어 간단한 해수욕도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영화 '007 시리즈 중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을 촬영한 곳이라 한다. 영화는 봤는데 영화 속 장면이 생각나질 않는다. 다음에 영화가 다시 상영된다면 이곳의 장면을 찾아봐야겠다. 버거운(?) 식사를 하고 하고 나서 인지 이곳 정취에 빠져서 인지 그저 파라솔 의자에 앉아 먼 산만을 바라며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모처럼 여행을 나온 두 딸은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또 찍고! 뭐가 저리도 즐거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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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온종일 하롱베이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같이 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여행지가 어디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이 먹고 즐겼던 이 시간이 딸들에게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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