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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03. 2019

이스탄불의 역사 속으로(2)

톱카프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콘스탄티노플 점령이란 꿈을 실현한 오스만 제국의 수장 메흐메트 2세는 보스포루스 해협, 골든혼, 마르마라 해가 만나는 바닷가 언덕에 그들의 웅장한 궁전을 지었는데, 톱카프 궁전이다. '톱'은 대포라는 뜻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본 궁전의 정문 앞에 커다란 대포가 있어 이렇게 불렀다 한다. 15세기~19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궁정의 역할을 한 곳으로 술탄 군왕들이 거처했던 성인데, 술탄과 그 가족 외에도 오만 명이 넘는 시중들과 군사 관료들도 거주했다고 한다. 


                                                   


신의 은총과 허락으로 두 대륙의 술탄이자 두 바다의 지배자 현세와 내세에서의 신의 그림자, 동방과 서방에서 신의 총애를 받는 자, 육지와 바다의 통치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성의 정복자인 술탄 메흐메트 한의 아들인 술탄 무라트 한의 아들이신 술탄 메흐메트 한께서 신의 부를 영원히 간직하기를....

                                                                    (황제의 문에 새겨진 글귀)  


제1 정원으로 들어가는 관문 '바브 휘 마윈'(황제의 문)에서 검색대를 통과하여야 한다.


           비잔틴 제국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던 샘터위에 아프메트 2세가 정자를 세웠다

 

소피아 성당의 화려한 규모에 비하여 소박하게 지어진 성 이레네 성당은 정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다.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톱카프 궁전을 지으며 두 성당 사이에 높은 벽을 만들어 갈라놓았다. 소피아 성당과 달리 모스크로 개조되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무기고로 썼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곳이 원래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던 자리였다. 지배자에 따라 신들의 자리가 바뀌어진 것이다.            

                                               

                                                                 

예니체리 마당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제1 중정은 예니체리들의 주거지와 훈련장, 무기고, 제국 조폐 소, 병원 황실이 사용할 일상용품을 제조하는 공방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일반 백성들도 자유롭게 들어가 황제에게 청원할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16만 대군이 비잔티움 제국을 쳐들어 갔을 때 비잔티움에는 겨우 7천 명의 병사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황제에게 군이 반란할까 두려워 군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영토확장을 위하여 군을 육성하였고 그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부패가 심해지면서 군은 정치에까지 개입하며 술탄을 죽이거나 폐위시키기까지 하였다. 결국 예니체리와 메흐테르는 1826년 해체되었다.


2정원으로 가는 관문의 '바브 셀람" 매표소로 일반 백성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제2 중정, 이곳에는 술탄과 중신들이 회의를 열어 국가 정치를 논하던 오스만 제국의 중요한 국정 장소인 
'디완 건물'과 황실 주방인 부엌 궁전이 자리한다.  디반의 정원에서는 출정식 왕세자의 할례식, 공주의 결혼식, 바이람 등 이슬람 축제 외국사절 접견 등이 이뤄졌던 곳이다.  

                                               


디완건물(각료 회의실)과 정원


주방 기구만 보아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술탄의 알현실


술탄의 소파와 술탄과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수도


술탄의 여인들이 기거했던 내실 하렘은 오직 술탄만이 드나들 수 있는 금남의 구역이다. 정복한 나라에서 잡혀온 미인들은 250여 개의 방에서 오직 술탄의 부름만 기다리며 숨죽이며 창살 속에 살아야 했다. 술탄이 옥좌에 앉아 여인들이 벨리댄스를 추며 재주를 뽐내는 것을 보고 술탄의 어머니에게 눈짓을 하면 어머니가 동의한 후에 술탄이 어깨에 손수건을 올리면 그날 밤을 같이 하였다 한다. 수많은 여인들의 애환이 서렸던 곳은 1909년 압둘 하미드 2세가 퇴위를 당하며 폐쇄되었다.



압둘 마지드 1세는 유럽의 위세에 눌려 날로 힘이 빠지는 제국의 영화를  되돌리겠다는 생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기 위해 배를 육지로 끌어올렸던 역사적인 장소에 베르사유 궁전과 오스트리아 빈의 쉔부른 궁전을 모방하여 화려한 궁전을 지으니 돌마바흐체(가득 찬) 궁전이다. 




43개의 연회장과 285개나 되는 방에는 돌마바흐체의 의미대로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을 쏟아부었다. 사치와 호화로움은 전 세계 어느 궁전에도 뒤지지 않았으나 20년밖에 사용되지 못했고 70년이 지나지 않아 오스만 제국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로마제국의 과잉 영토의 문제가 오스만 제국에도 나타났다. 영토가 넓어지자 술탄은 궁전에만 안주하게 되고 지역을 관리하는 관료들의 입김은 거세졌다. 더군다나 왕위 계승자 이외의 형제들은 모두 죽여버리는 야만적인 계승 제도로 인하여 무능한 자가 왕위로 오르거나 술탄이 자식을 낳기 전에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대가 끊기는 일이 생기기에 형제들을 죽이지 않고 밀폐된 곳(카페스라는 금빛 감옥)에 가두어 두기까지! 수년 동안 갇혀 지내던 사람이 세상 물정을 알리가 없으니 관료들에게 휘둘려야만 했다.



로마제국을 함락시키고 기세 등등하던 절대 강자 오스만 제국이 지은 톱카프 궁전과 쇠락해가는 제국의 말로로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은 많은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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