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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02. 2019

이스탄불의 역사 속으로

히포드롬 광장, 아야 소피아 박물관, 블루 모스크, 테오도시우스 성벽

이스탄불은 지정학적으로 흑해로 이어지는 길목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어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실크로드의 종착지로  한 도시가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 있다.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이스탄불로


기원전 7세기 그리스 도시국가 메가라의 왕 비자스는 델피 신전에서 기도 끝에 '눈먼 자의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신의 게시를 받아 천혜의 요새이자 절경이 뛰어난 땅에 도시를 만드니 그 땅을 '비잔티움'이라 했다. 

황금의 땅인 비잔티움은 중계무역 등으로 부를 누리게 되었고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었으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이 되었다. 



996년 동안 비잔티움으로 번성하였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정복된 뒤에는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부르며 1,123년 동안 번성을 누렸다.  '이스탄불'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도시를 향해'란 뜻을 가진 말로 그곳을 탐내는 사람들의 구호가 되었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로마 제국의 철옹성이 이슬람 제국에 의하여  무너진 날, 술탄은 이 도시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게 된다.



세계를 지배했던 3대 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많은 충돌은 이곳에 이질적인 문명과 종교가 공존하게 했다.  모스크의 첨탑과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한눈에 들어오고, 히잡을 쓴 여인과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손잡고 거리를 다니는 절묘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히포드롬 광장(술탄 아흐메트 광장)        

                                         

히포드롬은 '말의 길'이라는 뜻으로, 말이 끄는 전차 경기가 열리던 곳이다. 과거에는 10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큰 광장이었기에 시민들은 히포드롬에 모여 경기도 하고 정보도 나누고 정치적 의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532년에는 전차 경기와 검투사의 대결의 함성이 아닌 "니카 니카!"라는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니카(이겨라) 반란의 현장이 되었고, 1826년 오스만 제국시대에는 반란군 소집 장소가 되어 술탄에게 맞선 예니체리 반란군이 전멸당하여 수많은 반란군의 무덤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그리 넓지 않은 광장에는 이집트 카르나크 아몬 신전에서 가져온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기단에는 경기를 관전하는  테오 도시우스 황제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오벨리스크 건립에 관한 비문도 남아 있다.                                       

오벨리스크


 

광장 한가운데에 큰 뱀들이 서로 엉켜 있는 청동 기둥이 서 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군을 물리친 그리스인들이 제작한 전승 기념비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청동 기둥


560년 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곳을 새로운 수도로 삼으며 도시의 이름도 황제의 이름으로부터 따 온 '콘스탄티노플'이라 하고,  원형 경기장을 세우고 기독교의 나라에 태양신의 상징인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뱀 머리가 없어진 델피 신전의 청동 뱀 기둥으로 장식하였다.   


★ 성 소피아 박물관


이스탄불에는 많은 비잔티움 유적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 소피아 성당(성스러운 지혜의 성당)이다. 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인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완성된 그리스 정교회의 본산으로 그리스 정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성당의 외부는 예수의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색 벽돌을 사용했으며 직사각형으로 몸체를 만들고 그 위에 하늘과 영원을 상징하는 거대한 돔을 얹었다. 모든 사람이 앞쪽을 잘 볼 수 있고 예배에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다. 돔을 바치는 기둥이 하나도 없이 가장자리에 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을 뿐이다. 성당은 대리석에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고 누렇게 반짝이는 부분이 모두 금이라 한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성당은 오른쪽과 같이 군데군데 보강 공사중이다


큰 돔 아래에 작은 돔을 여러 개 만들어 큰 돔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치밀하고 과학적인 공법을 사용하였다 하나 현재 조금씩 기울고 있어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 튀르크는 성당을 개조하여 이슬람 본부로 삼고 성당 밖에 첨탑을 추가하고 십자가를 떼어내고 기도실을 만들어 모스크로 썼다. 천장의 천사의 얼굴에는 덧칠이 되어 있고, 기독교 성화에도 회칠로 가리고 알라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찬양하는 거대한 아랍어 표시로 성당을 뒤덮었다. 

성당을 파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점령지에 있는 기독교 소년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슐탄을 보호하는 인간 병기로 키워진 오스만 제국의 친위대 예니체리였다.

 


나선형 통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갤러리와 만나게 되는데 1931년 이후 미국 고고학 팀이 회칠을 벗겨내고 복원한 황금 모자이크화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세례자 요한이 그려져 있다. 출구 뒤편에는 비잔틴제국의 황제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콘스탄티노플과 아야 소피아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나타낸 모자이크화가 있다.                                                       


성당 곳곳에는 가톨릭과 이슬람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다. 서방 국가들이 성당을 그리스 정교회로 반환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통에 이제는 박물관으로 지정하였다 한다.


★술탄 아흐메드 자미(블루 모스크)


아야 소피아 성당에 아무리 회반죽으로 발라 놓아도 그 속에 남아있는 기독교 성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는 소피아 성당보다 더 크고 더 웅장한 모스크를 지어 그 이름을 '술탄 아흐메드 자미'로 했다.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으나, 내부 장식으로 썼던 파란 타일과 카펫은  타일 박물관과 카펫 박물관으로 각각 옮겨갔기에 지금은  블루 모스크의 분위기가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슬람 세계에서 모스크의 권위는 첨탑의 개수로 표현된다. 1개의 첨탑은 개인이 만든 사원, 2개면 국가, 4개면 술탄이 만든 사원인데 블르 모스크는 첨탑이 6개다. 아흐메트 1세가 황금(altun 알툰)으로 명령한 것을 신하들이 6(alti, 알트)으로 알아들어 6개가 되었다 한다.


사원의 입구 문에는 육중한 쇠사슬이 걸려 있는데 술탄이라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알라 앞에 갈 수 없다는 의미라한다.

               

오른쪽 사진은 여자들의 기도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전등이 사원 아래쪽에 많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경전 '코란'을 읽기 위함이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푸른색 이즈닉 타일이 아름답다.     

  


도시를 크게 감싸는 22킬로미터의 성벽을 '콘스탄티노플 성벽'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내륙에 있는 5.7킬로미터의 성벽을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이라 한다. 첨단 콘크리트 축조 술로 쌓은 성벽은 훈족, 페르시아, 러시아 등 많은 침략자들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하였다. 성벽을 넘었다 해도 폭 20미터의 해자가 있고 다시 7미터의 성벽을 넘어야 했기에 철벽 중의 철벽은 무려 1040년이나 지속되었다.



약관 21세인 메흐메트 2세는 무모해 보이지만 담대한 방안을 선택하게 된다. 루멜리 히사르에 정박해 있는 함대를 육지를 가로질러 골든혼 안쪽으로 이동시켰던 것이다. 한밤중의 어둠을 타서 병사들과 소떼들이 목재 위에 올려진 67척의 배를 밀어 골든혼 해안에 내려놓고는 병사들은 바다 건너 성벽 아래로 이동시켰다.

성벽을 향한 발포가 시작되었고  성벽 방어에 집중되어 있던 병력의 일부를 급하게 골든혼 쪽으로 이동시켰으나 예니체리가 이끄는 수만 명의 군대는 드디어 성벽을 뚫고 말았다.  16만 명의 오스만 대군이 성벽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들어갈 때 비잔티움의 병력은 고작 7천 명이었다 한다.



기독교인들이 쌓아 올린 성벽은 무너져 내린 채 방치되고 있다. 성벽 말고도 넘치는 문화유산이 많기 때문인지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기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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