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는 지금 갯무꽃이 한창

by 마미의 세상


협재해변에서 한껏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작은 섬, 에메랄드빛 바다 건너 보이는 그 섬이 바로 비양도다. '하늘을 날아온 섬'이란 뜻을 가졌으나 실제로는 바다에서 솟은 화산이 굳어 이뤄졌다. 옛날에는 대나무가 많아 죽도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대나무가 비양봉 중턱에 조금 남아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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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해변에서 가까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가는 길은 5 킬로미터나 되어 배로 15분 정도는 달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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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개포구에 도착하자 귀에 익은 리듬이 우리를 반겨준다. 비양도 북카페 기타 동아리 회원들의 '섬을 위한 노래'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우리를 환영하기 위한 행사인 듯 하나 관광객들은 이미 삼삼오오 순식간에 어디론가 가버리고 몇몇의 사람들 만이 호응해주고 있다.

"감수광 감수광 나 어떡할 랭 감수광~"

흥얼거리며 잠시 듣다가 뱃시간 때문에 살며시 그 자리를 떴다. 들려오는 가사가 내내 귓등을 애절하게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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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바닥이기에 우선 비양봉부터 오르려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니 커다란 연못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유일의 염습지로 밀물 때는 해수가 밀려들고 썰물 때는 다시 담수호가 된다는 신비로운 펄낭못이다. 연못 너머로 너른 바다 풍경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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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색의 작고 여린 갯무꽃은 해안도로를 걷는 내내 곳곳에 피어있다. 돌담 옆에도 길섶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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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생성물인 호 니토(용암류 내부의 가스가 분출하여 만들어진 작은 화산체로 보통 내부가 빈 굴뚝 모양)가 바닷물에 잠겨 발견되고 있다는 비양도 서쪽 해안에 높이 4.5 미터 직경 1.5 미터의 큰 바위가 눈에 띈다. 마치 아기 업은 사람의 모습과 같다 하여 '애기 업은 돌'로 불리는 이 바위는 오늘도 관광객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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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의 바닥은 화산 송이(스코리아)로 이뤄져 붉은색을 띤다. 제주의 몇몇 오름이 붉은오름으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송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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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바다 풍경에 빠져있을 때 '호 이익 호 이익'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파도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그 소리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들이 들어간 바닷가에 남겨진 낡은 유모차 때문이다. 젊은 처자가 아닌 고령의 아낙네들인가 보다. 평생을 물질을 하며 살아온 그녀들의 팍팍한 인생이, 파도에 씻겨나간 그녀들의 설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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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코끼리 바위가 비양도에도 있다. 그런데 겨울도 아니건만 하얗게 눈에 덮여있다.

순간 옆 바위를 보니 그것은 눈이 아니라 새들의 분비물이었다. 이궁~ 정말 그럴듯하게 코끼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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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봉 올라가는 입구를 찾은 것은 섬 한 바퀴를 거의 돌고 난 다음이었다. 정상까지 500 미터란 표지를 진작에 읽었다면 오르지 않았을 것을... 손에 움켜쥘 정도로 작은 섬인 줄 알았건만. 높이가 100여 미터 안팎이라던 오름은 수직 계단으로 이어졌다. 오르고 또 오르고 몇 번이나 쉬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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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내가 혼자 대나무 숲을 지날 때는 으슥한 분위기에 오싹하기까지 하다. 쏴아~ 쏴아 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폭포 소리처럼 크게 들려온다. 바로 옆의 대나무는 거의 미동조차 하지 않건만 바깥쪽의 대나무가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나 보다. 그때 나를 친구해 준 것이 '호로록호로록 뿅'하고 들려오는 새소리다.


그 대나무 숲을 나와 조금 더 오르자 믿기 어려운 갯무꽃 밭이 등대까지 펼쳐졌다. 허리를 넘나들게 높이 자란 꽃밭을 헤치며 오를 때는 숨이 찬 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비양도를 지금 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갯무꽃을 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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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아래에서 비양도에 대한 나의 기억은 에메랄드빛 해변이 펼쳐진 꿈과 같은 휴양지가 아닌 소박한 갯무꽃이 만발한 아늑한 어촌 마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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