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by 마미의 세상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긴 했나 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려 하니 모든 것이 안갯속에 쌓인 듯 희미하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앨범을 펼쳐보니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수줍은 듯 언니에게 안겨있는 내 모습은 꼭 우리 둘째 어렸을 때 같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멋쟁이 우리 아버지가 있다. 그래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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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모님은 안양에서 양계장을 운영하셨다. 새벽부터 아버지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 가족 모두 일찍 일어나게 했다. 엄마는 그 시간부터 많은 계사를 돌며 닭장에 불을 켜고는 3대 독자로 귀하게 자란 아버지의 세숫물까지 방에 대령했다.

세수를 마친 아버지는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늘 이부자리 네 귀퉁이의 각을 딱 잡아 개켜놓으셨다. 전날 수금한 돈도 앞 뒤 순서대로 정렬해 묶어 놓는가 하면 꼼꼼하게 장부 정리까지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다.

7 남매 중 막내와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군포의 양계장에서 살았고, 언니 오빠들은 모두 서울에서 친할머니와 함께 학교에 다녔다.


양계장에는 새벽에 멋지게 울어대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알을 낳기 위해 키우는 암 닭들이 왕왕 대는 소리로 늘 귀가 따가웠고 닭 똥 냄새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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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에게는 숙식을 제공해야 한다. 도우미 아줌마가 있다 해도 엄마는 늘 부엌이며 양계장을 돌아다니며 바다. 사람 좋아하는 아버지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그때마다 닭을 잡아 요리해야 했는데 아무도 닭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 엄마는 손수 닭까지 잡아야 했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 몸이 아팠을 때,

"젊어서 닭을 많이 죽여서 이렇게 아픈가 봐."

정말 그랬을까?


두세 명의 운전기사에 트럭에 승용차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꽤 잘 살았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그 부를 누릴 시간도 방법도 모른 채 가족 모두 정신없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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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아버지는 욕심을 내어 당진에 양송이 공장을 시작하셨다. 포부 있게 시작한 사업은 유류파동으로 부도를 맞고 말았다. 제대로 가동도 하지도 못한 공장의 빛 때문에 넓은 안양의 양계장과 고향 선산까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 뒤 술로 허전함을 때우시던 아버지는 50도 안된 나이에 옹기종기 7 남매 만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나의 어린 시절,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외롭고 힘든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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