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 함께 한 나의 유년 시절

by 마미의 세상

어릴 때 내 애증의 대상은 남동생이었다. 이미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었으나 아들 하나 더 낳겠다고 엄마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낳은 남동생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내 바로 위에 태어났던 언니가 어려서 병으로 죽자 내가 태어났을 때는 특별히 작명 집에 가서 삼천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이름을 지어주고 애지중지 키웠다지만 남동생이 태어나고부터는 나의 존재감 따위는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동생이 나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다. 그 녀석은 먹을 것이 생기면 나부터 챙겨주는 착한 아이다. 다만 주위의 어른들이 동생만을 사랑해 주는 것이 문제였다.


예산에 살고 계셨던 외할머니가 가끔 올라오시기라도 하면 방금 삶아 낸 꼬막을 한 가득 가져 오셨다. 그 꼬막 껍데기를 까서 먹기에는 동생뿐만 아니라 나도 힘이 들었으나 아버지는 동생만 까서 먹여 주시는 것이다. 어찌 그뿐인가? 갈치를 먹을 때도 양쪽의 가시 부분은 아버지가 드시고 가운데 살만 동생에게 주시니 난 늘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그런 일 때문에 동생에 대한 미움이 커져만 갔다.


하루는 어떤 일로 삐져서 화를 내다가 아래채에서 혼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위채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자고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 혹시 나를 데려 왔냐고 물었으나 엄마는 그런 적이 없단다. 혼자 100여 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서 잠이 든 채 한밤중에 걸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동생이 항상 밉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동생은 내 하나밖에 없는 놀이 상대였다. 하루는 언덕배기에 주차해 있는 자동차에 올라타서는 동생을 옆에 태우고 운전 놀이를 했다.

“자 우리 떠나볼까?"

1단, 2단 … 어! 어어~자동차가 움직인다. 언덕배기에서 굴러 내려가기 시작한 차는 점점 속력을 내며 건너편 닭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얼음이 되었으나 동생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평지에 이르러서야 자동차는 가까스로 멈춰 섰고 나는 그날 엄마한테 죽도록 혼이 났다. 그리고 다시는 자동차가 우리의 놀이터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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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에는 먹거리가 많아서인지 쥐가 많다. 그리고 닭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많은 개도 있었다. 작은 애완용 개가 아닌 나만큼 덩치가 큰 개들이었다. 비록 묶여 있기는 했으나 개 또한 우리들의 친구였다. 어느 날 엄마가 해주신 독특한 맛의 고기를 먹으며

“엄마 이게 무슨 고기야?”

“응 똘똘이지”

어제까지 동생과 함께 귀엽다고 같이 놀던 녀석이 밥상에 올라온 것이다. 우리는 대성통곡을 했고 그 뒤로는 절대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영등포 시장에 가면 종종 보이는 검붉게 잘린 개 다리의 흉측한 모습을 볼 때면 그때 그 녀석의 천진한 얼굴이 떠올라 혐오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낯선 사람들이 양계장을 돌아다니더니 다음 날 그 많던 개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 그들은 쥐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었는데 쥐를 잡는다고 놓았던 쥐약은 쥐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십여 마리나 되는 개까지 모두 죽인 것이다. 나는 그 뒤로 정말 쥐가 싫다.


동생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던 양계장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확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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