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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Sep 11. 2018

사슴들의 천국엔 수크령이 한창

                                                                                                 

'한국의 갈라파고스!'라는 말과 함께 수크령이 우거진 밭 속으로 걸어가는 여인의 사진을 보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배표를 끊었다. 여행 짐을 싸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름다운 바다와 넓디넓은 초원의 모습 만이 아른거렸다.


굴업도 선착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있는 것은 민박집 간판을 단 트럭들이다. 트럭을 타지 못하면 많이 걷는다기에 짐부터 싫고 나도 짐짝이 된다. 백패커들이 좋아하는 곳이라더니 카메라 가방과 옷 가방만 달랑 들고 온 우리와 달리 야리야리한 여자들도 자기 머리 위로 올라오는 커다란 백팩을 트럭에 번쩍 올리더니 단번에 올라탄다. 와우! 얼마 후 도착한 큰 말 해수욕장의 몇 채 안 되는 민가에는 무슨 무슨 민박이라는 간판이 각각 붙어있다. 8가구의 민가와 발전소 직원이 사는 2 가구가 전부인 작은 섬이다.


비밀의 정원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입구에는 관목들이 우거져 그 앞을 가로막는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도둑게(?)다. 재빠르게 나무뿌리 밑에 몸을 감추고는 낯선 이방인들을 살피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참을 같이 놀았을 터인데 빨리 오르고 싶은 마음에 그냥 산으로 오른다. 

숨이 가빠지고 숲이 끝날 무렵, 눈앞에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풀들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것은 석양에 물든 수크령이다. 냉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점점 그 모습을 나타내는 섬 아래의 절경들로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꿈을 꾸듯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의 풀무치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춤을 추듯 앞으로 나아가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아까 같이 온 캠퍼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건지 이 넓은 풀밭에 남편과 나뿐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맞춰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 좋게  귓등을 스쳐 지나간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는 수크령을 찍으러 가는 순간,

"조심해!" 

헉! 십 리 낭떠러지다. 허겁지겁 물러나는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있다. 꽃사슴이다. 


누군가 몇 마리의 사슴을 가져다 놓은 것이 천적 없이 불어나 현재 사슴의 수는 백여 마리가 넘는다. 관광객과 주민의 수를 합쳐도 그 사슴의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홀로 산을 오를 때면 무리 진 사슴 떼들이 도리어 사람에게 꽥꽥 소리를 지른단다. 

"아마 호랑이를 풀어놓아도 도망가지 않을걸요" 태어나 본 것이라고는 사람과 작은 풀벌레들 뿐이니...

이 아름다운 섬은 오롯이 사슴들의 것이다. 곳곳의 나무숲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은 사슴이다. 가까이 가지 않는 한 도망도 가지 않고  경계할 뿐이다.


개머리 언덕 끝에  가서야 캠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노을이 아름다운 곳에 텐트를 친 그들 사이로 들려오는 행복한 웃음소리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멋진 일몰을 기대했으나 가스층에 몸을 감춘 해는 다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부지런히 산을 내려오다 만난 수많은 사슴 떼! 이삼십 마리는 되는 것 같다.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그곳에 사슴들이 떼 지어 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바라보니 우리를 주시하는 또 다른 사슴 떼들. 정말 사슴 천국이다.




이른 아침 눈을 뜬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둘러멘 채 방을 나선다. 캄캄한 새벽, 산을 오르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지만 도저히 궁금하여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숲 속을 지날 때 노래를 크게 부르며 두려움을 쫓아 보려 하나 어느새 등짝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뿌옇게 그 모습을 나타낸 초원에는 밤새 서리가 내렸다. '아니 벌써?' 아! 서리가 아니다 수크령이다. 촉촉한 이슬로 바지가 젖어들며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뿌연 안갯속 수크령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그 끝에 올라서야 다음의 풍경을 볼 수가 있다. 한참을 풀밭을 헤매며 사진을 담다 보니 어느새 동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고 있다. 노을 진 모습보다 새벽 풍경이 더 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 여행 포인트


1. 굴업도로 불리는 것은

현재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나 처음 이곳에 정착하러 온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척박한 땅을 일구고 야산을 개간하여 채소, 땅콩 등을 재배하는 등 땅을 파는 일을 업으로 하였다 하여 굴업(掘嶪), 또는 섬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굴업이라고
전해진다.

2. 가는 길
인천에서 90킬로미터 떨어진 섬으로 직접 가는 배가 없다. 인천 연안부두나 대부도 방아다리 항에서 덕적도까지 1시간 10분,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다시 1시간 남짓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올해 말까지
근해 도서 섬 나들이 여객운임을 50%까지 지자체와 여객선사가 지원하고 있으므로 섬 나들이 계획이 있다면 올해 안에 가보자.(한국해운조합 02-6096-2266, 대부해운 032-887-6669, 032-886-7813)

3. 숙박 및 식사
숙박은 주로 개머리 언덕에서의 캠핑이나 큰말 해수욕장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깨끗한 모텔이 아닌 시골집 방 한 칸으로 5만 원에 식사는 8천 원 정도다. 항구부터 개머리 언덕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므로 식사는 민박집에 예약하여 민박집 트럭을 이용하여 가는 것이 좋다
(굴업 민박 032-831-5349, 장 할머니 민박 032-831-7833, 고씨 민박 032-832-2820, 현아 민박 010-8626-2554) 

4. 편의 시설
큰말해수욕장 입구에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으나 개머리 언덕 위에는 아무 편의 시설이 없으므로 아래까지 내려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민박집마다 간단한 음료, 주류, 스낵은 있으나 다양하지 않으므로 비상약 등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불볕 같은 더위가 가시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예쁜 요즘 여행하기 딱 좋다. 인천에서 반나절 가면 만날 수 있는 사슴들이 뛰어노는 푸른 초원에서의 꿈같은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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