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지금 한창 꽃들이 만개하여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매화뿐만 아니라 낙선재 쪽 담장 너머로 길게 늘어진 수양벚꽃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까지 활짝 피어 말 그대로 꽃대궐이다. 다양한 꽃들로 단장한 우리의 고궁은 한층 고풍스럽다.
한복을 입은 처자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고운 자태가 절로 시선을 끈다.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들이 왕비가 된 듯 여기저기에서 나타나 궁은 생기로 가득하다. 웅장한 인정전에서 금방이라도 나랏일을 보시던 임금님이 호통을 칠 것만 같다. 매년 돌아오는 봄, 매년 피는 꽃이지만 사람들은 꽃을 보며 정말로 행복해하고 있다.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법궁으로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쳐했다.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은 이곳 인정전에서 즉위식 및 결혼식, 세자 책봉식을 비롯하여 문무백관의 하례식까지 공식적인 국가 행사를 가졌다.
진선문을 지나면 인정문이 있고 그 안에 인정전이 있다.
청기와를 얹어 눈에 띄는 궁이 선정전이다.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이었던 편전으로 인정전 동쪽에 있다. 뒤쪽의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순조 이후에는 이곳을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아담한 정원이 있는 왕비의 처소는 섬세하고 여성미가 물씬 풍겨 난다. 한 나라의 왕의 부인이 되어 부귀영화는 누렸을지 모르지만 정원 너머 높게 쌓은 궁궐 담 너머로는 죽어야만 나갈 수 있었다니.....
낙선재 쪽에는 창덕궁의 봄을 알리는 일명 핑크 팝콘이라고 부르는 홍매화가 있다. 정말 자세히 보니 팝콘을 닮았다. 산수유와 나뭇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수양벚꽃까지 있어 꽃으로만 보면 이곳이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답다.
낙선재 뒤쪽으로 보이는 상량정의 풍경은 궁이 아닌 대갓집과 같다.
아름다운 궁궐을 보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이 궁궐 한 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봄을 제대로 만끽한 것 같다.
왕들이 살았던 궁을 본 김에 양반들이 살았던 한옥마을까지 돌아보기 위하여 북촌으로 향했다. 빨간 모자를 쓴 여행 도우미 '레드엔젤'이 반갑게 맞아준다. 도우미의 안내로 북촌길로 쭉 직진하다가 CU가 있는 곳까지 가서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자 한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촌로 12길 일대의 한옥은 높은 담 위에 지어졌다. 그 조용하고 한적한 길에는 오로지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느라 우렁차게 울어대는 개 짖는 소리와 담장 너머에서 이리저리 뛰는 소리만이 들려와 위화감까지 느껴졌다.
한옥을 보러 오는 중장년층의 사람들은 아마 저마다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고향 집 같은 친근함에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높은 주춧돌과 작은 화단. 그사이로 스며드는 나지막한 오후 햇살이 정겹다.
북촌 전통공예 체험관이란 팻말을 보고 안에 들어서니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는 쥔장 덕에 마음 편히 이곳저곳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운치 있는 격자무늬 창 사이로 보이는 꽃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요 기와와 황토와 돌로 앙증맞게 꾸며진 담은 그리 높지 않아 좋다.
집과 집 사이에 한치의 틈도 없이 기와를 맞대고 골목길 양쪽으로 빼곡하게 늘어 선 한옥들. 오래 묵은 좁은 골목길을 바라보며 잠시 옛 생각에 빠져든다.
CU의 길 건너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마을이 가회동이다.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었던 가회 방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는 가회동에도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한 한옥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한옥들은 고미술품 가게를 비롯하여 기념품점 꽃집 커피숍 등으로 독특하게 꾸며졌다.
서로 얼굴을 맞댄 한옥들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한옥 너머로 남산 타워까지 보인다. 고금이 어우러진 색다른 이 모습에 자주 찾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오래도록 이 모습 이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폐가 될까 천천히 사뿐사뿐 걸었다. 아마도 그 옛날 이곳에는 고관대작들이 살지 않았을까?
골목 끝까지 오르면 동양차 문화관이 있는데 입장료 5천 원을 내면 차 한 잔을 자유롭게 마시며 얼기설기 보이는 한옥들의 지붕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국립 민속박물관은 덤이다.
가끔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고궁이나 북촌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왠지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다. 마음을 가다듬고 싶을 때 찾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