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만 해도 강원도에서 때아닌 폭설로 난리라지만 3월 하순으로 접어들자 어느새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이 오고 있다. 벌써부터 사진 동호회 사람들은 야생화 사진을 찍겠다고 풍도로 몰려갔지만 나는 장봉도로 향했다. 국사봉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이어진 산봉우리들을 넓은 바다를 보며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섬트레킹을 수목이 푸르를 때가 아닌 요즘에 간 이유는 나뭇가지가 앙상할 때 바다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서해의 섬을 자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갯벌이 있어서다. 깊게 파인 뻘의 골짜기를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진득한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애틋하다. 어느 날 갯벌 사진을 찍느라 마냥 해안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였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뻘 위에 갑자기 하나 둘 나타나는 녀석들이 있다. 바로 칠게다. 우리가 꽥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재빠르게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슬금슬금 나오는 녀석들이 귀여워 한참 동안 칠게를 놀려주었다. 칠흑 같은 갯벌만 보면 왜 이렇게 가슴이 뛰고 애잔해지는 걸까?
삼목선착장에서 출발한 배는 신시모도에 대부분의 관광객을 내려놓고는 잠시 후 장봉도에 도착했다. 섬도 아름답다지만 수도권에서 가까워 캠핑이나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곧 신도와 영종도를 잇는 연육교가 완성될 예정이라니 머지않아 장봉도까지 연도교가 놓일지도 모르겠다.
옹암 선착장에 도착하자 우리는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섬의 서쪽 끝인 장봉 4리까지 갔다. 섬 서쪽 끝에서 산에 올라 선착장 부근에서 내려 올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봄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다소 썰렁했지만 원하던 대로 바다를 훤하게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몇몇 같이 온 등산객들은 벌써 어디로 가버렸는지 산에는 우리뿐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지칠 무렵이면 멋진 바다가 나 보란 듯이 뽐내고 있었다. 핑계김에 잠시 숨을 돌리며 기쁘게 바라본다. 물 빠진 바닷가에서 작은 통을 들고 가는 사람들은 조개라도 잡은 것일까? 갑자기 갯티길로 간 사람들이 부러웠다.
오랫동안 침식으로 독특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은 곳이 윤옥골이다. 우측으로 가면 해가 질 때 동만도 서만도 너머로 아름다운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는 가막머리 전망대가 있다. 그곳까지 다녀올 체력이 되지 않아 이번에는 포기했다.
섬 산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섬에 있는 산들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다. 그런데 150 미터 밖에 안된다는 국사봉이 꽤나 힘이 든다. 아마 서쪽부터 길게 걸어왔기 때문인가 보다.
중간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출렁다리 등을 만나는 것도 지친 산행길에 즐거움을 준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장봉도는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 등산 초반길이 좀 가파르기는 하지만 비교적 완만해 나 같은 등린이도 다녀왔다. 다음에는 갯티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