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서울의 서쪽에 사는 우리는 어딘가 바람을 쏘이러 갈 때면 차가 막히지 않는 강화도 쪽이나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간다. 오늘은 석모도의 보문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햇살이 따뜻해질 무렵 눈썹바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강화도 가는 길이 꽤나 넓어져 쉽게 도착했다.
전에는 석모도에 가기 위해 외포리 선착장에 차를 대고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했으나 이제는 연육교가 생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왜 다리를 놓지 않는 거야"
라며 불평을 늘어놓곤 했는데 자동차로 쉽게 다리를 건너다보니 편해졌다기보다는 섬을 찾는 낭만이 사라진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낭만도 사라졌고 자동차로 쉽게 섬에 들어가고 보니 왠지 섬에 간 것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선착장 기능을 잃은 나룻부리항의 썰렁한 상점들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해 보리암과 낙산사의 홍련암, 여수 향일암과 함께 4대 해수 관음 성지로 꼽히는 낙가산의 보문사는 경관이 수려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도 하지만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라 기도를 하면 가피를 잘 받을 수 있다 하여 불자들이 소원성취를 위해 찾는다. 경내의 큰 법당보다도 굴법당과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만나는 마애불전이 좋다.
보문사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설레었다. 절 앞에서 행상하던 할머니들은 오늘은 무엇을 가지고 나오셨을까? 집에만 있던 내가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를 수는 있을까? 아직도 바삭바삭한 새우튀김을 팔고 있겠지?
다리를 놓은 후에는 절로 가는 길도 바뀌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가는 멋은 사라지고 해안도로를 타고 냅다 달렸다. 드디어 도착한 절 입구에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며 경내를 둘러보니 그동안 절이 많이 확장되었다. 500 나한상과 와불 전이 들어서는 바람에 굴법당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고즈넉하던 옛 모습이 아니다.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힘들게 계단을 오를 때는 자애로운 마애불의 미소를 보며 힘을 얻어 갔는데 새로 세워진 소원 등이 마애불을 가리고 있다. 도대체 누가 저곳에 등을 달았을까? 답답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간신히 꼭대기까지 올랐다. 마애불 가까이에서 내려다보는 바다풍경은 역시 엄지 척하지 않을 수 없다. 답답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뻥 뚫리며 툴툴거리던 나의 입 꼬리도 절로 벌어졌다. 내가 보문사를 찾은 이유는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하산길에 새우튀김에 인삼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싶었으나 그동안 새우튀김 집이 없어졌다. 전에 이곳에 왔다가 아이들 생각이 나서 튀김을 사간 적이 있다. 그날 귀갓길은 유난히 차가 막혔다. 기름 냄새가 내내 차 안에 진동하는 바람에 집에 오도록 남편에게 구박을 받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새우튀김이 갑자기 먹고 싶었다.
점심 식사 후 자동차로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몰을 기다렸다.
드디어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맞이하는 해넘이지만 가슴이 벅찼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수평선 근처까지 오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더니 갯벌을 붉게 물들이다 잠깐 반짝이고는 금세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멋진 해넘이를 보았지만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밝히는 가로등이 로맨틱하게 보였고, 말없이 옆에서 운전해 주는 남편이 오늘따라 더욱 든든하다. 많이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보문사는 역시 내 마음의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