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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l 18. 2022

닭갈비 먹으러 춘천까지!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이디오피아의 집, 소양강 스카이워크, KT상상마당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춘천의 풍광은 우리를 뜬금없이 경춘선에 오르게 한다. 춘천은 서울에서 적당히 떨어진 데다 기차를 타고 가는 로망도 있고, 잔잔한 호수 풍경은 바라만 봐도 지친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닭갈비와 막국수 같은 독특한 먹거리까지 있어 예전부터 친구들끼리 자주 찾던 여행지 중 하나다.



몇 번이나 용산역에서 ITX 열차를 탔건만 혹시나 놓칠세라 전광판을 보고 또 보며 안달하는 순간 드디어 춘천행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후덥지근하고 답답했던 역사에서  쾌적하고 시원한 공간으로 이동하니 나는 벌써 의암호 호수 위를 나르고 있었다.





지난 어버이날 시부모님과 함께 춘천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삼천동에서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 정상까지  3.6 킬로미터나 운행된다. 움직이는 내내 멋진 호수 풍경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어디에도 못 가고 집에만 계시던 시부모님께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 친절했던 직원들. 몸이 불편하셔 휠체어를 타신  시어머니를 어떻게 움직이는 케이블카에 태워드리나 심했는데 능수능란하게 도와주신 덕에 부모님은 아무 없이 케이블카 관광을 하실 수 있었다. 정말 어찌나 고맙던지 어깨라도 두드려주고 싶었다.




즐거운 상상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은 점점 서늘하다 못해 양팔을 부둥켜안고 오들오들 떨어야 했던 열차 내의 낮은 기온 때문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왜 이렇게 에어컨을 세게 틀어대는지 알 수가 없다. 춘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서둘러서 열차에서 내렸다. 아, 그런데 춘천이 춘프리카라고 했던가? 구름 한 점 없이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이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정말 극과 극의 체험이다.


춘천역에서 한 15분쯤 걸어가니 소양강 스카이워크다. 자동차를 타고 스쳐 가기만 했지 입장해 본 것은 처음이다. 150여 미터나 이어지는 투명 유리 다리 위를 걷다 보니 의암호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한 현기증이 나며 밟고 있는 유리가 혹시나 깨지지는 않을까 하여 이내 철로 된 곳으로 발을 옮기고 만다.



이곳이 청정하다는 것을 말해주듯 호수 한가운데는 맑은 호수에나 산다는 쏘가리가 고고하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높이 쳐들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싱그러운 호수와 시원스레 펼쳐진 수변 풍경에 온 몸이 상쾌하고 맑아진다.



스카이워크와 소양 2교 사이에 있는 소양강 처녀상은 가까이 보니 의외로 크고,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을 가진 처녀라기보다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생활력이 엄청 강한 아가씨로 보였다. 반야월은 배를 타고 노을이 지는 소양강을 바라보며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1967년 의암댐 건설로 호수가 생기며 서면 사람들이 통통배를 이용하여 새벽에 농산물을 싣고 나와 난장을 열었다는 번개시장은 바로 사거리 건너편에 있다. 억척스러운 아낙네들의 교육열로 박사가 여러 명이나 나와 박사마을까지 생겼다고 한다.

주로 야시장을 서는 장이어서인지 코로나의 여파 때문인지 시장 분위기는 이곳저곳 문이 닫혀 있는 것이 썰렁하기 그지없다. 말갛게 웃고 있는 강아지처럼 상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뜨거운 해에 달궈진 몸도 식힐 겸 식사를 하러 간 곳은 이디오피아의 집 근처다. 


"우리 닭갈비 먹으러 가지 않을래?"

갑자기 이뤄진 친구들과의 번개팅으로 멀리 남춘천역까지 와서는 닭갈비와 막국수에 옥수수 막걸리까지 한 잔 하고 나면 친구들은 세상이 우리 것인 양 한껏 목소리도 커지고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던지  웃음꽃을 피우며 이디오피아의 집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호수가 보이는 통창 앞에 자리를 잡고는 각자의 짝사랑 이야기며 상사나 직장동료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다 보면 다음 코스인 산책길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돌아갈 기차를 놓칠세라 택시를 타기도 했다.


다시 찾은 에티오피아의 집 아래 호수에는 오리배까지 있다.  전망을 가로막은 다리도 생겼고 넓게만 느껴졌던 호수도 어쩐지 작아진 것만 같아 예전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으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는 그저 열여섯 개의 나라가 6.25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줬고 덕분에 우리나라는 구사일생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왔으나, 왜 춘천에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관과 커피샾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기념관에 들러보니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해 준 에티오피아의 각뉴(상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거나 궤열 시키는 부대라는 뜻) 대대는 평균 만 이천여 명 규모의 병력과 적십자 소속 간호요원 등을 춘천 근교에 파병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기념관을 세웠다고 한다.



몇 년 전 미국 여행 시 들른 식당에서 한국 전쟁에서 불구가 된 상이군을 만난 적이 있다.  당사자인 우리는 벌써 전쟁에 대해 잊고 있는데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전쟁의 그날들을 되새기며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목숨 바쳐 싸웠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의 조국을 찾아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운것 같다. 에티오피아의 한국 참전용사들도 그처럼 한국을 기억하며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한국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본국에 귀국하자 곧 공산정권으로 바뀌는 바람에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빈민가로 쫒겨나게 되었다. 최근 민주화가 되고 나서야 우리도 그들을 도와 줄 수 있게 되었으나 우리는 벌써 전쟁의 상흔을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꾸준히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신광철’이라는 사람이다. 현재 101번째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며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민이 아닌 감사의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며 그것도  본인의 이름이 아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돕고 있다고 한다. 정말 박수치지 않을 수 없다.

한경 기사에서 캪쳐

커피의 고향이 에티오피아라, 기념관 옆에는 이디오피아의 집이라는 커피숍도 만들어졌다. 기념관에는 참전기념 전시실과 에티오피아 풍물 전시관 등이 있어 에티오피아 군의 참전 배경과 전투 상황, 에티오피아의 전통역사 및 문화 종교 생활 풍습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다리 건너에 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길을 가보니 그곳은 '황금비늘 테마거리'다. 물과 안개가 많은 이곳 공지천에서 많은 문화인들이 예술적 감수성을 잉태하였다 한다. '황금비늘'은 꽁지머리 작가 이외수의 소설로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것이 아마 레고랜드 같다.


의암호의 아름다운 전경과 어울려 지역 대표 문화공간인  KT&상상마당에서는 김수근의 세련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강 쪽으로 기울어진 경사지에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듯 지어진 건물의 가운데는 야외 공연장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거친 질감의 벽돌과 창 그리고 조명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낮은 경사로의 길은 편안하게 사선으로 이어져 있어 공간을 미학적으로 나누고 있다. 군데군데 만들어진 통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은 마치 액자 같다. 특히 자연 프레임 안으로 보이는 의암호는 한 폭의 산수화다.





고소한 빵 내음과 커피 향이 퍼지는 '댄싱 카페인'이라는 쉼터에서는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땡볕 더위에 시원한 곳에서 의암호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하는 기분은 아마 최고일 것이다. 외부 잔디밭 등 곳곳에는 문화예술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다녀온 춘천.  그곳에는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내 젊은 날의 추억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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