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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r 23. 2023

실향민의 마을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속초

아바이 마을, 칠성조선소, 상도 돌담마을

내게 속초는 힐링의 도시다. 직장 생활할 때 지칠 때면 무작정 달려가곤 했다.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설악산의 자태에 눈이 호강하고, 피곤한 몸을 풀어주는 척산 온천에, 묵은 스트레스를 몽땅 날려 주는 동해 바다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처럼만에 찾은 속초는 많이 변한 것 같다. 관광객들로 왁자지껄 했던 설악동의 모텔촌은 코로나 때문인지 대부분 문이 닫혀 있는가 하면  고속터미널 부근에는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빽빽하다. 


작은 바닷가에 몰려든 실향민들로 이뤄진 아바이 마을

6.25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되던 1983년 여름, 온 나라는 눈물바다였다. 전쟁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헤어져 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음악과 함께 가족을 찾는 종이 한 장을 벽에 붙이거나 목에 걸고 있다가 가족을 만나 오열하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실향민의 동상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는 휴전 협정서로 통일을 기다리는 그들의 애절함이 담겨 있다.


흥남부두에서 메리디스호를 타고 2박 3일 동안 남으로 내려왔던 14,000 명 중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크리스마스날 거제도에 도착했다. 그 3일 동안 임산부 5명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김치 1, 김치 2로 불렸다 한다.  실향민들은 통일이 될 날만을 기다리며 고향 가까운 속초 앞바다의 모래사장에 모여 살았다. 바로 아바이 마을이다. 아바이란 함경도 사투리로 아저씨나 아버지 등 남자들을 총칭하는 말로 주로 집안의 장남들이 내려와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졌단다.  



시립박물관에 가면 실향민들이 생활 했던 작은 하꼬방 등을 재현해 놓았다.


그렇게 70년을 기다렸건만 실향민 1세대들은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제는 2세 3세들이 살고 있다. 아바이 마을은 2000 년에 들어서며 드라마 '가을 동화'와 '1박 2일'이라는 예능프로그램 덕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아바이 마을에 가면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먹던 음식인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가자미식해 함흥냉면 등을 맛볼 수 있다.


아바이 마을에는 독특한 교통수단인 갯배가 있다. 청호동과 속초 시내로 가는 도로가 없어 널빤지처럼 생긴 배를 타고 쇠줄을 당기며 건너간다.  대부분의 실향민들은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고 있었기에 그 당시 갯배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 후 청호동과 장사동을 잇는 설악대교와 금강 대교가 개통되며 갯배의 역할은 희미해졌지만 이제는 관광자원으로 남았다.


바다가 만들어 낸 호수 영랑호와 청초호

파도가 밀어낸 모래가 길게 쌓여 커다란 웅덩이가 생기고 그곳에 설악산 계곡 물이 내려오니 점차 짠 바닷물은 옅어졌고 호수가 되었다. 영랑호와 달리 청초호에는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잡아 온 생선을 파는 장이 열린다. 




1999년 강원 국제관광 엑스포를 청초호에서 개최하며 엑스포 공원과 엑스포 타워가 세워졌다. 전망대에 오르면 설악산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시원한 풍경을 관람할 수 있다. 타워 바로 아래는 철새 도래지로 청둥오리와 쇠오리 흰 뺨 검둥오리 등이 노닐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화랑인 영랑이 영랑호를 지나다 맑고 잔잔한 호수와 그 뒤의 웅장한 설악산의 모습에 매료되어 한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호랑이를 닮은 범바위 등 호수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아 속초 팔경으로 꼽고 있다. 8 킬로미터 가량의 호젓한 영랑호 둘레길은 걸어도 좋고, 스토리 자전거를 타고 전문 해설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도 좋다.


범바위
영랑호수 윗길과 둘레길


서울을 버리고 고향을 택한 젊은이들이 만든 특별한 공간 '칠성 조선소'와 '완벽한 날들'

젊었을 때부터 배를 만들었다는 1대 대표 최철봉 씨에 이어 3대인 최윤성 씨는 미국에 가서 선박 제작과 디자인 공부까지 하고 와서 레저 선박사업을 하려 했으나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그는 조선소와 집을 '칠성 조선소'라는 카페로 변신시켰다. 



청초호를 배경으로 낡은 건물과 목선 한 척 그리고 녹슨 철길은 과거 배를 제작하거나 수리하던 과거 조선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독특한 카페는 여기뿐이지 않을까? 


서울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최윤복 씨는 2014 년에 고향인 속초로 내려왔다.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에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인 '완벽한 날들'이 바로 그의 새로운 일터다. 독립서점이므로 책을 파는 것은 물론이요, 독서 모임이나 세미나를 하는 공간으로 또 여행객들에게는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 당시 서울의 아파트 전세금만으로 속초에서는 아파트를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를 보다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귀향했고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오후 5 시면 카페 문을 닫는다고 한다. 


서울 양양 고속도로의 개통, 춘천 속초 동서고속철도와 동해 북부선의 착공 및 신축 아파트의 공급 확대로 속초시는 줄어가던 인구수가 그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속초는 '워케이션' 장소로 적당하다. 전공을 살려 연구해 본다면 쾌적한 도시 속초에서 자기가 원하던 일을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정겨운 상도문 돌담마을에서의 민박

설악동 가기 전 해주 오 씨 강릉 박 씨 등의 집성촌이었다는 돌담마을이 있다.  사부작사부작 돌담길을 걷다 보면 정겹기 그지없다. 속초에 왔다면 흔한 호텔보다는 설악산의 정기가 묻어나는 우리의 한옥에서 하룻밤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속초문화 특화지역 조성 사업으로 세워진 문화공간 돌담은 지역민과 여행자의 교류를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2박 3일의 민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체험활동과 조식 서비스까지 주어지고 2인 기준으로 2박에  

10만 원 대다. (www.gamjatour.co.kr 033-635-3441) 돌담길 따라 마을 이야기도 듣고 독특한 체험도 즐기며 우리의 명산인 설악산에도 푹 빠져볼 수 있다.


마을 너머에는 금강송이 멋스러운 산책로가 있다. 쌍천 계곡을 보며 송림 숲길을 걷다 보면 학무정이 있다.  3.1 운동에 앞장섰던 오윤환 선생이 선비들과 더불어 글을 짓고 시를 읊으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배처럼 생긴 상도문에 닻과 돛대가 있어야 한다 해서 돌탑을 세운 것이 행주석범(行舟石帆)이다.


속초 조양동에 선사유적지가 있어요

3,000년 전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 조양동 유적지는 변두리나 산자락이 아닌 도시 한가운데 주거지역에 산책로처럼 조성되어 있다.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이면서 청초호와 접하고 있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완성맞춤이었나 보다. 택지 개발 사업 중 발견된 청동기 시대 유적지는 반쯤은 묻혀 있어 생소하다. 


설악산까지 가지 않아도 설악의 향기를 체험할 수 있는 자생식물원

속초의 북쪽 끝 학사평을 지나 골목을 굽이굽이 따라 들어가면 초본과 수목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설악산 자생 식물원이 있다. 어린이나 노약자와 어린아이를 동반한 경우 가기 좋다. 4만 평이 넘는 부지에 자생 및 희귀 식물 총 5만여본의 수목 및 초본류가 있다. 기존 천연림을 훼손하지 않고 야생화 단지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돌과 나무로 조성되어 있다.


속초에 대관람차 속초아이가 생긴 후 속초 해변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 아래 속초 해변을 거닐게 된다. 바로 건너에 있는 조도는 한때는 소나무와 풀이 무성해 초도라고도 했는데  대규모 가마우지 떼가 찾아오면서 배설물에 의해 섬이 차츰 황폐해졌으나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볼거리 많고 추억 많은 속초! 살아 숨 쉬는 속초의 다양한 모습은 늘 나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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