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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17. 2023

겨울에는 역시 눈꽃 산행이 최고!

선자령

폭설 주의보! 

눈이 온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요즘 서울에서는 눈이 내려도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기가 쉽지 않다. 모처럼  눈 구경이나 실컷 해보고 싶은 우리는 무조건 강원도로 떠났다. 눈꽃 산행지로 유명한 곳 어디로 갈까? 선자령, 발왕산, 가리왕산, 오대산 선재길....


남편이 월요일까지 휴가를 냈으니 몇 군데를 다녀올 수도 있다. 강아지 때문에 잠깐 고민을 하기는 했으나 추운 날씨에, 폭설에, 케이블카에 강아지는 태울 수 없다는 말까지 들으니 미안하지만 큰 딸에게 강아지를 맡기고는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남편은 눈길 운전 걱정에 스노 체인을 살 수 있는 곳부터 찾고 있었으나 나는 그저 설경을 볼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는 동아리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일본 홋카이도로 사진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엔화도 떨어진 데다 비에이 등의 설경은 이 겨울에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흔해버린 그 사진을 나까지 찍어오고 싶지는 않아 대뜸 대답을 못하고 있던 참인데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단다.




강원도에 들어서면서부터 길가의 나무들은 하얗게 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휘영청 늘어뜨린 우람한 나뭇가지 위에도 야리야리한 풀 위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몇 번이나 환성을 질렀는지 모른다. 월동장비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남편은 혹시 눈길에 사고라도 날까 옆에서 떠들어 대는 마누라의 수다는 들리지도 않는가 보다. 횡계 휴게소쯤이었을까? 우리는 겨우 스노 체인을 샀고 오늘의 목적지는 구 대관령  휴게소(대관령 마을 휴게소)에서 바로 시작되는 선자령으로 정했다. 




모두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휴게소 주차장은 주차하려는 차들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사람들은 모두 차 밖으로 나와 웅성대고 있었다.

족히 20 센티미터 정도 쌓인 눈 때문에 차들은 계속 헛바퀴만을 돌리다가 지그재그로 멈춰 서 있었고 따라 들어가던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어코 레커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거의 한 시간 정도 헤맨 후에야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선자령 가는 길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빽빽하게 한 줄로 서서 올라가는 줄은 거의 정상까지 이어졌다. 찻길에서 보던 설경과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제대로 담고 싶었으나 줄지어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그저 빠르게 셔터를 누르고는 자리를 비켜 줘야 했다. 어쩌면 나무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선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눈은 또 저렇게 희한하게 쌓였을까? 이제는 무뚝뚝한 남편까지도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등산로는 험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단지 5.8 킬로미터나 되기에 한참을 걸어야 할 뿐이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머리카락이 눈인지 땀인지에 흠뻑 젖어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하긴 여러 겹의 옷에다가 비옷까지 껴입었고 눈길을 걷고 있으니 땀이 날 수밖에 없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춥다는 바람의 언덕에서도 춥기는커녕 기어코 두꺼운 패딩 점퍼를 벗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저 바로 앞사람의 등과 바닥만 보며 걸어야 했지만 가쁜 숨이라도 내쉴라고 멈춰 서면 나무들은 바로 옆에서 현란한 몸짓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홀려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었는지 모른다. 하긴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스쳐 지났을게다.  어쩜 저렇게 멋지게 자랐을까? 

정말 이토록 종일 눈을 맞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폭설은 폭설이다. 그래도 바닥에는 눈이 쌓이지를 못한다. 그저 아이젠과 스틱의 무성한 자국이 남았을 뿐이다.



갑자기 너른 들판과 풍력 발전기가 나타났다. 사진에서 보던 광활한 풍경은 내리는 눈 때문에 보이지 않았으나 넓은 광장에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펼친 임시 비닐 텐트와 눈썰매를 타거나 눈싸움을 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산행 도중 만난 사람 중 어린아이는 별로 없고 도리어 검버섯이 반쯤은 내려앉은 어른들뿐이었다.  그런데 눈은 그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풍력발전기 근처까지 온 나는 동심의 세계에 빠져서가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묵직한 장작깨비가 되어 겨우 움직이고 있는 다리를 잠시나마 쉬게 하기 위해서다. 의자도 없이 손바닥만 한 깔판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잠시 눈멍을 했다. 


거의 내 또래인듯한 여자는 눈썰매도 아닌 비닐에 반쯤 누워 눈이 쌓인 언덕길을 내려가며 온 산이 떠나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다. 쌓인 눈은 그녀를 제대로 미끄러뜨리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한가 보다. 그런가 하면 '나 잡아봐라' 하며  달리고 넘어지고 또 그 장면을 찍고. 모두가 이렇게 즐거운 것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 때문이리라. 몇 번이나 잘 왔다고 외치며 '나 좀 찍어봐'하며 멋진 설경 앞에 폼 잡는 남편까지 모두가 너무 행복해 보인다.



무릎에 무리가 간다고는 하나 역시 하산은 훨씬 쉽다. 선자령이 얼마나 남았는지 이정표를 보고 또 보며 올라올 때는 그렇게 미터 수가 변하지 않더니 내려가는 길에는 그 숫자가 휙휙 지나고 있다. 벌써 이만 보 넘게 걸었다. 우와~  집에서는 만보 채우기가 그렇게 어렵더니 산행 한 번 하고 나니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지난주 연골 주사를 놓으며 '많이 걸으면 안 돼요'하던 의사의 얼굴이 잠깐 스치기는 했으나 11킬로미터를 그것도 눈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온  내가 대견하기만 하다. 원래 1박 2일로 떠난 여행길이었으나 폭설이 내리고 있는데 또 어딘가를 가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 종일 고생한 내 몸에 보상을 해줘야지. 마트에서 수입고기나 고르던 내가 선뜻 평창 한우집으로 가서는 고기에 냉면에 된장찌개까지 숨쉬기가 어려울 때까지 먹었다. 그리고는 내내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한 숨 자고 나니 벌써 서울이다. 오늘의 눈꽃 산행으로 당분간 눈을 보지 못해도 그렇게 아쉽지는 않을 것 같다. 행복한 산행길에서 만난 눈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음에는 날이 좋은 날 올라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광활한 산풍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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