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가볼 만한 곳, 운탄고도, 도롱이 연못, 만항재
정선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카지노? 탄광?
어렸을 때 한 때 신촌에 살았던 적이 있다. 창문을 열면 연탄 공장에서 만들어진 검고 작은 원통 모양의 연탄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랐다. 골목길 대문 옆에는 다 타버리고 난 연탄이 늘 쌓여 있었고 눈 온 다음날이면 그 연탄재는 아주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과거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연탄은 중앙난방 아파트가 생긴 후로는 서서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운탄고도 마을 호텔'이라는 방송을 보고는 문득 그 많은 연탄을 만들기 위해 석탄을 캐내던 탄광과 광부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점을 안고 무궁화 열차에 올랐다. 청량리 역을 떠난 열차는 중앙선에서 태백선으로, 또 높은 산들을 통과하는지 꽤나 긴 터널을 지나는가 하면 높은 고도 때문인지 몇 번이나 귀가 먹먹해진 후에야 사북 역에 도착했다.
광산촌의 역사는 뿌리관에서
사북역을 나와 안경다리를 넘어 푸른 공원을 지나니 옛 복지관 건물을 리모델링했다는 뿌리관이 있다.
오지 중의 오지였던 고한과 사북지역은 사음대(마름의 터)로 불렸던 정선의 산골짜기 마을로 주로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다. 1960년 초 정부의 근대화, 산업화 정책이 가속화되며 동원탄좌, 삼척탄좌와 같은 굴지의 탄광회사가 들어와 대규모 광산촌이 되었다. 사택촌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은 꿈을 안고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옥수수와 보리밥만 먹던 어려운 시기에 일만 하면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단다. 부촌인 광산촌의 광부들은 산업화의 주역이기는 했으나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산업재해와 진폐증 등을 이겨내야만 했다. 대체 에너지인 석유 및 천연가스 등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점차 석탄의 수요는 줄어들고 광산의 채산성이 낮아지자 정부는 폐광과 감산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산업전사에서 졸지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일터를 잃은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기나긴 대 정부 투쟁에 들어가게 되었고 1995년 3월 3일이 되어서야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합의하게 되었다.
뿌리관 앞에는 1995년 3.3. 합의 전문이 있다.
나는 鑛夫다.
과거에는 조국 근대화 산업화이 역군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남겨진 것은 진폐증과 탄광 사고라는 상처투성이의 훈장뿐인, 나는 광부다.
나는 光夫다.
상처투성이의 훈장을 달고 있지만 밝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나는 이 시대의, 이 지역의 광부다.
활기를 잃어가던 도시에 카지노 운영 주체인 강원랜드가 설립되며 이 지역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강원랜드와 콘도 등 위락시설의 설립으로 사북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전국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폐광촌이 카지노 산업으로 성공한 사북의 성공사례를 보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동원탄좌는 변신 중
동원탄좌가 있던 곳에는 근로자들이 실제 출근할 때 사용했던 버스나 석탄을 캐던 갱도 등 탄광의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를 활용한 탄광문화촌과 생활사 박물관 등을 만들기 위해 현재는 리모델링 중이다.
강원랜드의 사회공헌 재단에서 주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고토(033-592-3300)에서는 정선 남부지구의 전직 광부 등 어르신들에게 하이원리조트 숲길의 제초 작업 및 화단 조성, 목재 조형물 설치와 같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기부금만으로는 어르신들의 처우 개선이 어려워 점차 영리 사업까지 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한 쪽에 있는 삼탄 아트마인은 구 탄광에 세계 각국의 예술품도 함께 전시함으로써 탄광에 색을 입혀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아우르는 운탄고도 1330
영월 청령포에서 삼척 소망의 탑까지 이어지는 '석탄을 운반하던 옛 길'인 운탄고도는 이제는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고운 길'이라고 불린다. 가장 높은 곳은 만항재로 함백산의 1,330 미터가 되는 곳으로 늘 야생화가 피어있는 '천상의 화원'이요, 다른 구간의 평균 고도도 546 미터나 되는 길이 173 킬로미터나 이어진다. 폐광산 폐열차를 이용한 숙박시설 등 광산촌 마을의 흔적을 만나며 걷는 길이다.
등산이 어려운 사람은 하이원리조트 마운틴콘도에서 운영하는 곤돌라를 타면 약 15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늘길의 바닥에는 탄광촌답게 선탄 작업에서 골라진 돌들이 깔려 있어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다.
차가 다니던 길은 널찍한 데다 높낮이가 없어 걷기 좋다. 고도도 높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산길은 한 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선선하다. 간간이 보이는 산 아래 모습은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구름에 쌓인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너무 작기만 하다.
여유를 부리며 콧노래까지 부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나타난 것은 노루다. 하이원 리조트에서 만항재까지 걷는 동안에 두 번이나 만났다.
어르신들이 꾸민 아기자기한 각종 조형물과 꽃들로 꾸민 쉼터는 숲길을 걷는 관광객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고 있다.
석탄의 채취로 인해 화절령 근처는 지반이 약해져 웅덩이를 만들었으니 도롱이 연못이다. 늘 갱도에 들어간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던 아낙네들은 이곳에 도롱뇽이 살고 있는 한 남편이 무사할 것이라고 믿으며 기도했다고 한다. 현재 연못은 야생동물들의 쉼터가 되고 야생화가 피는 화원이 되어 찾는 이 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0회 이상 졸업생을 배출한 운락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가 공터로 남게 된 것도 지반 침하가 원인이다. 학교는 철거되었고 빈 공터에는 교실의 주춧돌만 남아있다.
1177 갱 즉 이곳의 높이가 1,177 미터라는 뜻이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인 곳이다. 이로써 화절령 주변에는 10여 개의 군소탄광이 생겼고 채탄된 석탄은 인근 함백역까지 운송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바로 운탄고도다.
천상의 화원 만항재는
차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다는 만항재도 운탄고도에 속한다. 지금은 아스팔트까지 깔려 드라이브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야생화가 있고 겨울에는 눈꽃까지 볼 수 있어 천상의 화원이다. 어찌 꽃뿐이겠는가 사진 촬영 차 전에 왔을 때 만난 나비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컸고 화려했다.
탄광촌을 둘러보고 운탄고도를 걸으며 우리나라 산업화에 힘쓴 광부들을 돌이켜 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정선 아리랑으로 유명한 이곳의 숙박업소들은 봄가을이 비수기라고 한다. 숲길이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 호젓하게 운탄고도를 걷다 보면 오롯이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청량리역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사북이나 고한역에 내리면 '와와'라는 정선 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대중교통만으로 다녀올 수가 있다. 자세한 운행시간 등은 '정선군 대중교통정보'를 다운로드하여 참고한 후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고한역에서는 정암사와 만항재까지 다녀온 후 이색적인 마을 18번가를 돌아봐도 좋다.
현재 정선의 많은 시설 중 카지노만 흑자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카지노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연계하여 산나물 채취나 탄광 여행, 운탄고도 걷기 등에 테마를 둔 여행관광상품이 개발된다면 관광차 정선을 찾는 사람도 많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