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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10. 2024

잊으려  애썼던 그 시간도 그립다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TV드라마가 '대행사'와 '사랑의 이해'다. '대행사'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였고  '사랑의 이해'는 은행원들의 러브스토리다. 20 년 넘게 은행원으로 지냈던 경험은 은행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친정집에 간 것처럼  반갑다. 내세울만한 배경 하나 없는 고아인 역의 이보영이 약을 먹으면서까지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은 바로 그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다녔던 은행은 완전한 여초 사회였다. 남자 직원이 별로 없으니 남녀 간의  알콩달콩한 재미는커녕 서열이 무척 엄격해  직장 일과 관계없는 일로도 선배들에게 불려 가 혼나기 일쑤였다. 은행 내부에는  달팽이 모양의 계단이 있었다. 그때 우리 동기들은 졸졸 몰려다녔다. 그때는 좌측통행을 하던 때였고 우리는 왼쪽에 서서 기다렸다. 은행의 최고참 선배들이  오른쪽에 있었다. 잠시 서로 멈춰 섰다가 눈치껏 우리는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그냥 웃으며 갔으면 될 것을

"원래 좌측통행 아닌가요?"

그렇게 말했던 친구는 선배들에게 불려 가 눈물이 쏙 나도록 혼이 났고 우리는 그날부터 군기가 바짝 들 수밖에 없었다. 요즘의 사회 초년생이라면 아마 그런 숨 막히는 직장에서는 얼마 견디지도 못하고 사표를 낼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이 그저 버텨내야 했다.


시중 은행에 입행한 친구들을 만나면 남녀 동기들끼리 야유회도 가고 고고장도 다니며 알콩달콩 지내는 이야기를 했다. 그저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외국은행에 간 것을 후회한 것이 몇 번 있다.  내가 일하는 은행이 아주 답답한 여초 사회임을 알았을 때 그리고 한참 주식 시장이 불타올랐을 때다. 


시중 은행에 다니던 친구들은 자사 주식을 받아 한몫 챙길 수 있었고 직장 내에서 정말 보기 싫은 직원이 있더라도 몇 년만 참으면 다른 지점으로 옮길 수 있으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시중은행에 다녔더라면 40대 초에  은행을  퇴직하는 일 없이 정년까지 정주행 했을 것이다.


갑자기 싱숭생숭해서 오랜만에 그때의 앨범을 펼쳐 보았다. 상큼했던  나와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잊힌 얼굴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생뚱맞게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은행원으로 살았던  20 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괴롭기만 했던 은 아니었다. 젊은 날의 앳된 모습과 순수했던 그때로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었다. 나도 이럴 때가 있었구나...


그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100 명도 안 되는 직원들은 남녀 출신 학교 별로 나누어 뭉치는가 하면 미스 아무개가 아닌 출신 학교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것은 내게 심한 모멸감을 주었다. 그때 가장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을 하자 허전한 마음에 난데없이 대학 입시를 준비해 야간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취업도 한 상태라 대학은 애당초 포기했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고맙다고 해야 할까? 내가 나태하지 않게 늘 채찍질을 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 옛날 일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드라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을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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