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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n 23. 2023

여기 어때? 우리 지금 영주!

무섬마을, 꽃계마을,  근대문화역사거리, 여우생태관찰원, 순흥벽화고분

서울 및 수도권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은퇴 후에는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기를 희망하지만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경상북도에서는 4도 3촌(4일은 도시에 3일은 농산어촌에서 지내기) 생활로 관계인구를 늘리려는 특화 프로젝트가 생겼다.  '여기 어때? 우리 지금 영주!'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영주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보통 영주하면 부석사와 소수서원 정도를 떠올렸으나 의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무섬마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는 국가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무섬마을이 있다. 반남박 씨가 만죽재를 건립하여 터를 잡은 후 100여 년 후 그의 증손서인 선성김 씨가 처가에 자리를 잡고 두 성씨는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무섬마을은 그 옛날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마을은 고풍스러웠다. 거목 옆으로 보이는 흙벽과 돌담 그리고 초가지붕까지. 하늘 높이 치솟은 그 어떤 현대 건축물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우리의 정감 어린 모습이다. 마을 한 바퀴 사브작 사브작 걷다 보면 어디선가 갓을 쓴 선비가 불쑥 나올 것만 같다. 집집마다 쌓아놓은 장작과 아담한 텃밭 그리고 돌담 너머 수줍게 얼굴을 내민 접시꽃까지 소박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찐 모습이다.




태백산에서 이어지는 내성천과 소백산에서 흐르는 서천이 만나 태극모양으로 돌아가는 형세가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아 무섬마을이라 한다. 하천에는 외부랑 연결해 주던 독특한 외나무다리가 있는데 그 곡선미가 뛰어나 진사나 젊은이들이 멋진 장면을 담기 위하여 찾고 있다. 

지금은 물이 없어 그렇지 물이 많을 때는 건너기가 쉽지 않겠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찌나 어지럽던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을 보니 얕기에 망정이지 깊은 강이었다면 오금이 저려 건너지도 못할 것 같다.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을 때는 잠시 비켜서면 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는 무섬 외나무다리


농촌체험으로 찾은 꽃계마을

눈을 씻고 봐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데 웬 꽃계마을?  그곳은 야생화와 개울이 아름다운 마을, 즉 화계(花溪)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동장 씨와 의성 김 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화계마을에는 현재 60여 가구 중 40여 가구가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 때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해 주던 우물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와 한방길 끝에 한 그루씩 있다.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데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무성하게 잎을 피워낸 것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고목 바로 옆에는  450년이나 된 인동장 씨의 종택이 있다.  웅장한 솟을대문과 넓은 마당만 봐도 당시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안채로 들어서니 대청마루의 선반에 작은 상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고 사당과 유물각 등도 있는 것을 보니 오래된 종택의 느낌이 난다. 그 아래 창문을 열어 놓으니 뒷산의 야생화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요새는 제비 보기도 어려운데  그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도망갈 생각도 안한다.


이 더운 여름 에어컨 없어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온 문을 개방하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한 한옥의 구조 덕분이리라.


꽃계마을이 전에는 벼농사가 중심이었으나 요즘은 생강 고추 오미자 외에도 특수작물 재배를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아름답고 조용한 농촌마을이다.




레트로 여행지 관사골

영주가 근대도시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영주역이 중간역으로서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구 영주역 근처에는 역무원들이 살던 관사골이 있다. 한때 번화했던 마을은 도시 공동화, 중심상권 이동으로 지금은 다소 소외된 지역이 되었으나 도시 생활사적으로 가치가 큰 곳이다.  현재 5호와 7호 관사가 남아 있는데 철도 관련 콘텐츠로 부상한 관사골에서 독특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총 4억 1천500만 원을 투자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사업으로 벽화거리도 조성되었다. 벽화 대부분이 철도와 관련된 그림이라 관사골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코로나 19로 경제활동이 위축된 예술인들에게 일자리 창출 및 지역 특색에 맞는 공공미술을 구현하였다.  




언덕을 잠시 오르면 영주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가 있다.   이황이 이곳을 지나다 경치가 너무 좋아 부용대라 했고 현재는 관사골 공원으로 단장하여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영주동 근대 한옥은 일제 강점기 건축물이다. 본채는 사라지고 1920년대 신축한 개량 한옥만 남아 있다. 한의원과 하숙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집을 팔고 나간 쥔장이 아침에도 근처의 풀을 뽑고 갔다고 한다. 비록 많이 노후화가 되었지만 아직도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다.



여우생태 관찰원

반달곰을 복원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여우 복원 사업이 있다는 것은 처음이다.  소백산에서 토종 붉은여우의 종 복원 사업을 하여 방사하고 있다고 한다. 여우는 무덤이 있는 지형을 좋아하고 야행성 동물이라 주로 밤에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로 안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실은 수줍어하는 성향을 띠고 있어 사람을 피해 다닌다고 한다.

 

방사장에서 만난 여우들은 거의 자고 있었고 몇 마리 만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여우가 사라지게 된 것은 쥐 잡기 운동 때 사용된 쥐약과 여우 목도리를 애용하였기 때문이라니 황당하기만 하다.  생물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복원은 꼭 필요하다고 한다. 겨우 방사한 여우는 산 높은 곳이 아닌 민가 근처에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로드킬을 당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그저 조심조심 다녀야 할 것 같다.


여우 사육장


순흥벽화 고분

순흥지역은 강원도와 충청도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접경지역이었으니  이곳에서 고구려 벽화 고분이 발견된 것은 과거에 고구려의 영역이 이곳까지 미쳤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고분으로 삼국시대 회화와 종교관 그리고 내세관 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재다.


도굴로 인해 무덤 내부가 훼손되고 인골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시상대에는 무덤주인과 가족이 바닥에는 하인이 안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벽에는 여러 개의 산과 구름 새가 그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라기보다는 도교와 불교를 토대로 한 종교관이나 내세관을 반영한 것이다. 


입구에서 널길과 이어진 벽면에는 뱀을 든 역사상과 버드나무 가옥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가내 생활도라 한다.


새처럼 보이는 것은 삼족오의 전신 또는 서조로 죽은 이를 위해 노래하며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남쪽 벽에는 무덤의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묵서명문이 동쪽에는 역사상이 있다.


무덤 주인의 시신을 안치하가 위해 마련한 침상에도 벽화가 있다.


6월 초부터 두 차례 방문한 영주의 방문으로 영주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북적이는 도시에서는 살 집이 없어 전셋집을 돌고 있는데 지방에서는  인구 감소로 폐허가 되는 집이 늘고 있다. 농촌에서도 소득과 미래가 보장된다면 젊은 사람들이 서울로만 향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이 두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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