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무진, 콩돌해변, 끝섬전망대, 심청각
백령도는 두 번째다. 2년 전 탐조여행으로 갔을 때는 그저 논밭 등 습지에 있는 철새만을 쫓아다녔으나 이번에는 폭우 덕분에 3박 4일 동안 천천히 섬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다.
백령도는 최북단 섬
백령도는 20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인천보다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북한의 장여군과 훨씬 가깝다. 북한 남포항에서 배가 뜨면 30분이면 백령도에 도착하는 최북단의 섬이라 해안과 산에는 철책을, 바닷가에는 지뢰를 매설하고 방어벽을 쌓고 용치라는 쇠파이프까지 박아 놓았다. 게다가 해지기 30분 전이면 모든 바다가 통제된다. 여태 잊고 살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휴전 상태이고 예민하게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다. 그러니 주민이 5,000 명인데 해병대 사단에 2개의 육해공군 부대까지 주둔하다 보니 상주하는 군인만 5,000 명이나 된다.
몽금포타령의 노랫말에 나오는 장산곶 마루가 바로 지척이고 왼쪽 5 킬로미터 지점은 인당수(현재는 북한의 해역)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이 빠진 곳이다. 육지에는 휴전선이, 바다에는 NLL이 있는데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경계하느라 왕래하지 못하는 곳을 자유롭게 누비고 있는 것은 중국 배다.
백령도는 철새들의 보금자리
섬은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겨 백령도라 한다. 날씨가 해양성 기후를 띠고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겨울이 되면 북쪽으로부터 많은 철새들이 날아온다. 게다가 민물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는 섬 주민들 덕분에 습지에는 새들의 먹거리까지 충분하니 백령도는 겨울 철새들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지난겨울 희귀한 새들이 줄지어 앉아 있던 논에는 가을 수확기를 앞둔 벼들이 한창이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푸른 물결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올 겨울에도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겠지! 그러나 2차 간척사업으로 늘어난 넓은 땅(80만 평)에는 곧 비행장이 들어서고 2027 년에는 하루 6번 정도 비행기가 다닐 예정이란다. 관광객들이나 주민들에게는 기쁜 소식일지 모르겠으나 철새들은 아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우연히 만난 새와 생명의 터(버즈 코리아) 대표인 나일 무어스 박사는 신공항 건설을 무던히도 반대하며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니더니 아마도 공항은 건설하기로 결정이 난 것 같다. 글쎄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건지.....
섬 둘레에는 자연이 만든 신비한 명소들이 가득!
백령도 사람들이 고속도로(?)라고 부르는 둑길 끝에는 대교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 다리인 백령대교가 있다. 길을 경계로 담수호인 백령호와 바다가 마주 보고 있다. 우측 해변은 6.25 때 미군들이 잠깐씩 전투기 비행장으로도 사용했다는 천연 비행장인 사곶해변이다. 세계적으로 천연 비행장이 딱 두 곳 있는데 이탈리아의 나폴리는 그 길이가 1,400 미터인데 백령도는 약 3 킬로미터나 된다.
모래가 규조토로 이뤄져 있어 물을 먹으면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지는데 사리 때(음력 보름과 그믐)가 되면 모래사장의 넓이도 250 미터까지 넓어진다고 한다. 단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기 전 1시간 안에 이륙해야만 한다. 사곶해변은 현재 천연기념물 391호로 지정되어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콩돌해안에 가기 전 바닷가에 있는 엄지바위와 창바위를 찾은 것은 바위가 멋지기도 하지만 처음 이 해변에 서 만났던 검은 머리 물떼새의 앙증맞은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있을 리가 없건만 넓은 해변을 보고 또 보았다.
자연 현상은 참 신기하기만 하다. 섬 바로 위쪽에는 규조토만 쌓이게 하더니 바로 다음 해변에는 2 킬로미터나 되는 해안에 콩알만 한 작은 돌멩이들을 쌓았다. 바로 콩돌해안이다. 같이 온 일행들이 너무나 좋아했던 곳으로 앙증맞은 돌을 만져보고 지그시 밟아 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바닷물이 한 번 들어왔다 나가면 그 자그락거리던 소리는 또 어찌나 청명하던지 게다가 바닷물에 휩쓸려 나가며 통통 튀던 그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엽던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게다가 푹푹 빠지는 콩돌을 맨발로 걷다 보면 지압이 되어 천근만근 하던 발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3일 내내 비가 오나 해가 나나 매일 찾았다.
두무진에 닿기 전부터 절경은 시작된다. 바로 장촌포구에 있는 용틀임 바위와 등대해변이다.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듯 잔뜩 꼬여있는 모습이 장관인 용틀임 바위와 과거에 등대가 있었다는 등대해변도 해안 경관이 장관이다.
다시 더 가면 서해의 해금강이라 할 수 있는 두무진이 나타난다. 명승 8호로 지정된 두무진은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 웅장하고 기묘한 기암괴석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도보로 한 번 다시 유람선으로 한 번 돌아봐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백령도 주민의 주 생업이 농업?
망망대해의 섬인 백령도 주민들은 어업이 아닌 농사를 짓고 있다. 1차 간척사업으로 17 번째 큰 섬에서 14 번째의 섬이 된 백령도는 논이 많아 1 년 농사를 지으면 백령도 주민이 3~4 년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수확한다고 한다.
어업이라고 해봐야 주로 5월 한 달은 까나리, 6월과 9월에는 꽃게를 잡는 정도란다.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섬 주변의 소나무 아래에는 빨간 통들이 줄지어 있다. 까나리가 그 빨간통 안에서 2 년 정도 햇볕을 받으며 숙성이 되면 액젓이 되고 토굴에 들어가면 짭조름한 밑반찬이 되는 것이다.
백령도 주민의 95%는 기독교와 천주교
중화동포구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기독교 역사관과 127년 되었다는 중화동 교회가 있다. 비교적 수심이 깊은 중화동 포구를 통해 들어온 외국상선에 있던 선교사들은 백령도에 기독교와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섬 중앙의 성터에는 성당도 있다. 불교신자는 5%가 안 되어 주말이면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한산하다고 한다.
사자바위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바위는 사자가 아닌 이구아나처럼 보였다. 이는 앞발이 파도에 부서졌기 때문이다. 사자바위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주 작은 사당을 보았다. 지난번 외국여행에서 험악한 산중에서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것과 유사해 물어보니 이는 섬사람 대부분이 기독교도인 탓에 뱃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풍어제 따위는 지내지 않아 선원들은 바다로 나갈 때면 술을 한 잔씩 부으며 안전을 기원한다고 한다.
물범 만나러 가는 길
갑작스러운 비바람으로 우리는 일정보다 이틀이나 더 백령도에 머물러야 했다. 어렵게 먼 길을 왔으니 그대로 방콕만 할 수는 없어 동네나들이에 나섰다. 관광지이어서인지 주로 유흥주점과 슈퍼들이 많다. 백령면사무소 가는 길의 벽에는 과거 추억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애써 찾아간 하늬해변은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다. 바닷길이 막히면 철문도 닫힌다는 것을 몰랐다. 멀리서나마 점박이 물범을 보고 싶었으나 그냥 돌아서야 했다.
끝섬 전망대에 오르면 용기포항이 한눈에
망원경으로 아무리 당겨도 뭔가 앉아 있는 것만 같은 느낌만 있을 뿐이긴 했지만 그 물범들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던 곳은 바로 끝섬전망대다. 용기포항과 하늬해변 등 섬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천안함 46 용사 위령탑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서남방 2.5 킬로미터 해역에서 경비작전을 펼치던 천안함이 수중 폭발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로써 아까운 젊은이들이 46명이나 희생되었고 추후 조사 결과 북한제 어뢰 추진체가 발견됨으로써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그 혼들을 위로하고자 이곳에 위령탑을 세웠다.
냉면이 겨울음식?
어렵던 시절 백령도 사람들은 겨울에야 냉면을 해 먹었단다. 백령도의 냉면의 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질긴 면이 아니다. 메밀로 만든 면이라 뚝뚝 잘라진다. 바쁜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느라 해 먹지 못하다가 한가한 농한기에나 해 먹었던 음식이다.
더불어 나오는 짠지떡은 마치 강원도 사람들이 해 먹는 김치만두와 비슷하나 만두피는 메밀과 찹쌀로 만든 데다 만두소도 두부나 잡채가 들어가지 않은 그저 김치의 속을 털어낸 김치가 들어있다.
백령도는 군인들이 많아서인지 부대찌개를 시켜도, 중국집에 가도 그 음식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아마도 배고픈 군인들을 위함이지 않을까? 대청도까지 들러오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지만 덕분에 백령도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닐 수 있어 좋았다. 바람이 하나도 없어 보였건만 나오는 날 배가 어찌나 요동을 치던지 멀미약을 먹지 않은 사람들은 꽤나 힘들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