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미의 세상 Dec 28. 2023

다시 델리로!

시칸드라(후마윤의 묘), 바하이 사원, 꾸뜹 미나르, 인디아 게이트

인도에 오기 전에는 인도는 간디의 나라, 불교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도는 힌두의 나라였다.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며 대통합을 이루었으나 1947년 영국의 지배를 벗어난 뒤, 힌두권인 인도와 이슬람 권인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로 나뉘었다.


"인도는 어땠어요"라고 묻는다면 글쎄..... 

복잡 미묘하고 큰 땅덩어리의 북쪽만 며칠 다녀오고서 한 마디로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색다른 그들의 문화에 그저 갸우뚱거릴 뿐이다. 공통 언어는 힌디어지만 남쪽과 북쪽의 말이 달라 영어로 소통해야만 하고, 먹는 것조차 지역마다 다르다. 소를 신으로 모시고 숭배하며 소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더니 수컷으로 태어난 소들은 길거리로 내쫓겨 배회하다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카스트 제도가 없어졌다고 하나 짜이나 라씨를 마신 도자기컵을 버리는 것은  다른 계급의 사람의 입이 닿고 만지는 것조차 부정 탄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보면 신과 인간 동물과 사람, 부자와 빈자가 서로가 방치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알쏭달쏭할 뿐이다.


북인도의 유적지에서만 본 그들의 모습은 솔직히 누추했다. 하지만 그 똘망똘망하게 빛나던 수많은 아이들의 눈에서, 자신은 브라만이지만 한국의 공사판에 와서라도 일을 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겠다는 젊은이의 힘찬 말에서 그들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카스트 계급 중 하층에 속했지만 선출된 정치가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쳐 인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도하는 곳이기에 또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에  화장실을 만들 수 없다며 노상방뇨를 일삼던 나라였다. 자체 기술로 벌써 달 남극에 탐사선을 보냈고, 인공위성도 쏘아 올렸는가 하면 IT 강국에 핵탄두도 보유한 나라다.


북쪽 지방에서 우리가 보고 온 것이라고는 오래된 그들의 종교 문화 유적지와 도시의 남루한 일면뿐이다. 처음 우리가 도착했던 그들의 수도인 델리로 향했다.


후마윤과 악바르의 무덤이 있는 시칸드라

아그라에서 서북쪽으로 약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후마윤과 악바르 대제의 무덤인 시칸드라가 있다.  악바르는 평생 전쟁만 하다가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살고 싶어 시칸드라성을 만들었으나 그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그의 종교 통합정책에 따라 성은 이슬람과 힌두교 그리고 불교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후마윤이 좋아하는 붉은색과 악바르가 좋아하는 흰색이 섞여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의 무덤은 타지마할과 달리 검소하고 소박했다. 


한적한 숲에  눈에 띄는 빨간 건물이 시칸드라다. 늘 보던 이슬람 양식으로 네 귀퉁이에는 채트리(기둥 위에 돔이 얹혀 있는 작은 정자처럼 보이는 구조물)가 있고 정문을 들어서자 한적하고 넓은 정원이 있다. 위엄 있는 붉은 사암으로 지은 성 안에는 가족묘 중심으로 여럿의 무덤이 있다.




바하이(연꽃) 사원

바하이(알라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페르시아어) 교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로 시작된 신흥 종교다. 부처나 예수 등의 성인은 하느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현신한 존재이며 바하이교의 창시자인 바하울라가 마지막 화신이라고 주장한다.


혼란이 가중되는 현세에 순수함의 상징인 연꽃으로 사원을 만들었다. 사원은 하얀 대리석으로 27개의 연꽃

잎을 만들고 , 반쯤 꽃이 핀 연꽃은 수면에 떠 있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주변에 9개의 연못을 만들었다.

그들은 각자의 신은 모습을 달리 했을 뿐 같은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서는 각자의 종교에 따라 기도를 올리라며 단지 침묵하라고 한다.  내부는 밖과 달리 평범한 예배당 같다. 


사원에 들어가려면 다른 사원처럼 맨발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인도에서 정말 다양한 종교를 접했다. 윤회나 보시 그리고 화장하는 면에서 비슷한 자이나교와 불교는 수행자가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면에서는 같으나 불교에서는 가사를 입고 자이나교에서는 남자 수행자는 누드로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힌두교에서는 금욕적으로 수행만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가 성이라고 한다. 힌두의 유적지를 파괴한 이슬람교는 모든 신을 부정하고 오직 알라만을 유일신으로 내세웠다. 

이런 극단적인 차이로 나라가 분열되고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종교에 빠지지 못한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중 하나다.


카주라호의 자이나교 사원


꾸뜹 미나르와 알리 미나르

델리 최초의 이슬람인 '술탄 꾸뜹 우 딘 아이바크'가 델리의 마지막 힌두 왕국을 멸망시키고 기념으로 세운 승리탑이 꾸뜹 미나르다. 72.5 키터나 되는 탑에는 승리의 글이 새겨져 있다.  1층은 힌두양식 2,3층은 이슬람 양식이며 각 층에는 발코니가 있다. 원래 4층이었으나 1326년 투그라크 왕조의 페로즈 샤가 5층으로 개축했다. 당시에는 지붕에 돔도 씌웠었으나 1829년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한다.  중간에 코란경을 문양으로 새기며 거대한 곡선으로 말아 올린 탑은 1993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북쪽에 있는 미완성의 탑이 알리 미나르다. 겨우 1층만 짓다 만 것으로 요렇게 만든 후 꾸뜹 미나르처럼 겉치장을 하는 것이라 한다. 



인디아 게이트

파리의 개선문처럼 웅장한 인디아 게이트는 뉴델리의 상징물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사망한 인도사람을 추모하는 42 미터 높이의 위령탑이다. 1972년 인도 독립 25주년을 기념하여  85,000명의 전사자 이름을 벽돌 한 장 한 장에  새겼고 문 안 쪽에는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있다.


식민지 시절에는 총독 하우스로, 영국 총독 관저로 사용되던 건물은 독립 이후 대통령 궁으로 사용되고 있다. 


드디어 인도 여행이 끝났다. 아쉬운 점도 있긴 하나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배앓이와 클랙슨 소리 등의 소음 그리고 이곳 특유의 매캐한 공기 때문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하긴 맑다고만 생각했던 서울의 공기도 돌아와 보니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긴 했지만.


나는 늘 여행을 꿈꾸지만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좋다. 여행에서 만난 대구의 노부부는 해외의 멋진 유적지나 경관이 너무 훌륭하다고 우리나라에는 정말 갈 곳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왜 우리의 작지만 섬세한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지 못할까?


나는 이집트의 어마무시한 피라미드를 봐도 미국의 그랜드 캐넌을 보고 와도 우리의 설악산이나 오밀조밀한 궁이 더 분위기가 있고 멋스럽다. 어디를 가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우리의 화장실은 또 얼마나 깨끗한가? 외국에 나가면 지저분한 데다 돈까지 받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못살겠다고 아우성치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생계의 위협까지 받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우리의 빈민층에 대해 내가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유흥지에 가도 식당에 가도 우리의 살림은 좀 더 넉넉해 보인다. 여행지마다 밝은 빛이 있고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도 있겠지만 그저 한참 전쟁 중인 나라에 태어나지 않고 인도나 이집트의 빈민층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이다. 


다음에는 힌두예술의 절정을 만나는 남인도에 가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