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마할, 젤마할, 잔타르 만타르, 아바네리 쿤다, 앨버트 박물관
자이푸르는 델리나 카주라호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시내 전체가 온통 붉은 데다 잘 정돈된 거리며 사람들까지 밝고 세련되어 보인다. 물론 온갖 차량과 오토바이와 릭샤가 북적거리며 요란한 경적소리가 내는 것은 같지만!
자이푸르는 라지푸트 족의 도시
델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70 킬로미터 떨어진 라자스탄 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는 사막 가장자리에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힌두교인 라지푸트 족으로 5세기 중엽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인도 북부로 내려와 이슬람교도들과 항쟁을 거듭해 왔다. 그들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했다. 악바르 대제와는 혼인정책을, 영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영국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며 안정된 기반에서 발전을 도모했다.
자이 싱 2세(왕들의 이름에 ~싱하고 들어간 것은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를 뜻함)는 산 중턱에 지은 암베르 성에 살다가 물이 부족해 자이푸르로 내려와 인도 최초의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성벽 안에 만든 구 시가지는 바둑판 모양이다. 각 방향마다 3개의 문이 있고 문에서 문까지는 직선으로 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게다가 필요한 물건은 바로 근처에서 살 수 있도록 다양한 가게와 시장까지 갖췄다. 핑크빛 건물들은 무굴양식과 라지푸트 양식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다.
1876년 영국 앨버트 왕자를 초대하고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꾸미던 중, 존경과 환영을 뜻하는 핑크빛으로 도시 건물을 치장했다. 그 후 자이푸르는 핑크시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마치 우리의 종로나 청계천을 걷고 있는 듯한데 특히 보석상이 눈에 많이 띈다. 자이푸르가 부유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보석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젤시티라고도 한다. 한 낮인데도 가게 앞에 길게 누워 자는 사람은 노숙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없는 사이에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나! 4만여 명 정도가 살던 도시는 지금은 200만 명이 넘게 사는 큰 도시로 변했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주변에 신도시까지 들어섰다.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자이싱 2세의 손자인 프라탑 싱이 지은 하와마할은 왕의 후궁들의 처소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성은 특히 창문이 정교하고 화사하다.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소리까지 들린다고 한다. 이 여인들 역시 우리나라처럼 한 번 궁에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갈 수 있었고 바깥세상 구경은 오로지 950개나 되는 창문을 통해서만 허용되었다. 여인들이 사막의 열기로부터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창문을 특수 고안했다. 바람이 돌로 만든 창의 작은 구멍을 통과하면 시원해지기 때문에 고온에서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이름도 바람의 궁전이다.
바람의 궁전, 잔타르 만타르 그리고 아직도 왕족이 살고 있다는 시티 펠리스 등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길이는 8 킬로미터나 된다.
하와마할의 입구는 특이하게 뒤에 있다. 각 층마다 이름이 있는데 1층은 가을 축제가 열렸기 때문에 샤레드 만디르, 2층은 벽에 눈부신 공예품이 있어 라탄 만디르, 3층은 왕이 크리슈나를 경배했기 때문에 비치트라 만디르, 4층은 양쪽에 열린 계단 때문에 프라카시 만디르, 5층은 하와마할인데 이 궁 전체를 하와마할로 부르고 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천문 관측소, 잔타르 만타르
(잔타르는 기계를 뜻하는 얀트라와 같은 의미이며 만타르는 계측을 뜻한다)
18세기 초에 세워진 천문대가 잔타르 만타르다. 천체를 관찰할 수 있게 설계된 20여 개의 관측기구들이 모여있다. 이 기구들로 시각을 계산하고 천체의 높이나 일식과 월식, 별자리와 행성들의 위치를 볼 수 있었다. 자이싱 2세는 천문학과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천문대를 짓기 위해 과학자를 외국에 보내기도 하며 우자인, 바라나시, 마투라 등에 잔타르 만타르를 세웠지만 그 후의 왕들은 이에 관심이 없어 여태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그중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우리는 소 말 등의 띠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물고기 염소자리 등의 별자리가 있다. 낮에 볼 수 없는 별자리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하고, 해시계도 있다. 이는 자이푸르의 시간으로 인도시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300년 빠른 15세기에 천체를 읽었으며 해시계와 물시계도 만들어 냈다.
물의 궁전, 잘마할
48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에 왕들이 시원하게 살기 위해 만든 궁전이 잘마할이다. 암베르 성에 갈 때는 호수의 물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더니 오후에는 그나마 형태가 보였다. 가뭄에 대비하여 만들었다는 만사가르 호수 안의 궁전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궁 같다.
앨버트홀 박물관
웅장하고 아름다운 박물관 건물은 앨버트 왕세자가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1887년 사무엘 스윈튼 제이콥이 지은 것이다.
왕의 초상들로부터 시작하여 전시실에는 목공예품 도자기 석재 및 금속 조각품 등 세계각국에서 받은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집트의 미라까지 있다.
아바네리 쿤다(우물이라는 뜻)
서쪽 건조한 지역에서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물이다. 아바네리 쿤다는 8-9세기경 아바네리의 통치자였던 찬드라왕이 만든 우물로 그 후 800년 동안 사용했다. 아바네리는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입구에는 힌두교 신자로 보이는 사람이 시바신의 조형인 링가와 요니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어지럽게 무너져 내린 사원이 있다. 이 또한 이슬람교도들이 파괴한 것이라 한다. 왜 이들은 이런 사원을 여태 보수하지 않고 무너진 상태로 놔두는 것일까?
아바네리 쿤다는 우리의 아담한 우물과는 차이가 있었다. 깊이가 19.5 미터나 되는 사각형 우물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좁아져 물이 잘 모이게끔 했다. 3,500개나 되는 돌계단은 강수량에 따라 수위가 차이가 나므로 아래위를 넘나들며 물을 퍼가게 하기 위함이다.
우물 북쪽에는 왕의 숙소 겸 공연장 그리고 신전과 목욕공간까지 갖추고 있다. 언젠가 미국사람이 이곳에서 떨어져 죽은 후로 우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졌다. 담을 따라 회랑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수많은 계단이 기하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제일 아래쪽에 정사각형 모양의 대형 우물이 있다. 계단의 맞은편에 있는 다양한 공간은 여름에는 궁으로 또 목욕탕으로 또 신전으로도 사용되었다.
릭샤가 다니는 것 말고는 자이푸르는 우리의 도심 풍경과 비슷했다. 하긴 앉아 있는 소에게 야채를 사서 먹이며 방생하는 모습이 꽤 이색적이긴 했다. 핑크시티라는 도시명에 처음에는 매혹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모든 것이 영국 지배하에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치장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씁쓸했다. 일제 36년을 지낸 우리에게도 그 잔재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티투어를 하는 도중 혜나 체험도 했다. 순식간에 멋진 그림을 손목에 그려주어 혹시나 부서질세라 잔타르 만타르를 돌 때는 한 손을 높이 쳐들고 다녀야 했고, 길가에서 마신 라씨 덕분에 한동안 배앓이를 계속해야 했지만 아직도 섬세한 그들의 궁전이, 천연덕스러운 조각품들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