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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l 26. 2024

누런 월급봉투의 추억

내게는 투박하고 누런 봉투에 대한 추억이 있다. 월급날이면 친정아버지는 두둑한 월급봉투와 함께 붕어빵이나 군고구마가 들어있는 커다란 간식봉투를 들고 오셨다. 일곱 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내가 은행에 처음 취직 했을 때만 해도 월급을 통장에 입금하지 않고 현금으로 받았다. 서무과 직원들의 지폐 세는 소리와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들리면 우리들의 주판 튕기는 소리도 빨라졌다.  

   

결혼 후, 남편 회사에서는 연말이면 특별 보너스를 가끔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은행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따로 봉투에 담아주었다. 아마 아내 몰래 비상금으로 챙기라고 애써 나눠 주었던 것 같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 돈까지도 내게 주는 남편이 고마워 월급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때는 대부분의 돈 관리는 아내가 했고, 월급하면 누런 봉투가 생각난다.

     

요즘 새내기 부부들은 월급을 따로 관리 한단다. 결혼할 때 집 마련할 때도 똑같이 대고, 생활비도 일정한 금액을 한 통장에 넣고는 공동으로 사용한다. 너무 계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사촌 시동생 내외와 식사를 같이 했다. 우리와 10 년 정도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들도 결혼 초부터 따로 돈 관리를 하고 있단다. 정해진 경비를 지출하고 나면 나머지는 각자의 것이다.  멀뚱멀뚱 쳐다보며 이야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월급도 내 월급도 다 내가 관리했지만 내게는 내 돈이 없다. 매달 받던 월급에 퇴직금까지도 잔뜩 받았는데 말이다. 물론 남편도 마찬가지다. 명절이나 시부모님 생신 등의 행사에 돈을 쓸 때는 당당했지만 남편이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친정집에 돈을 쓸 때는 공연히 눈치가 보였다.     


연금이 나오고부터는,

“이제부터 연금은 각자가 쓰고 은퇴하면 생활비는 집을 모기지론 해서 살자 ”     

국민연금이라고 해봤자 큰돈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만날 때도, 사진 여행을 갈 때도 남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그 연금은 죽을 때까지 나오니 굳이 애써 저축할 필요도 없다.   

  

노후 연금을 받기 시작하고부터 상황이 역전된 집도 있다. 남편 친구네는 여자는 교원연금을 받고 남자는 국민연금을 받다 보니 남편의 용돈이 더 빠듯하다. 남자는  해외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할 때면

“이번 여행 경비에 당신이 좀 보태면 안 될까?”

“오늘 밥값은 당신이 좀 내지!”하며 볼멘소리를 낸단다. 

     

난 음식을 이것저것 늘어놓고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길을 가다가 싱싱한 배추나 야채를 보면 사들이고, 홈쇼핑 등에서 먹음직한 식료품 광고가 나오면 냉장고에 식재료가 가득한데도 또 사고 만다. 

“냉장고에 만든 음식을 다 먹고 사지?”

“음식 해놓으면 누가 다 먹는데?”

“1식 3찬만 해. 우리 너무 과한 것 같아.”

“걱정하지 마. 내가 다 먹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먹는 양이 많지 않다보니 늘 음식이 남고 그게 아까워 남편은  과식하게 된다.   

  

요즘 나의 최고의 관심사는 건강이다. 눈 검사하면 백내장이라 하고, 뼈 검사하면 골다공증이라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명이 짧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 온 나는 누군가 몸에 좋다고만 하면 무턱대고 사들인다. 물론 이삼 일 먹다가 이내 쳐 박아 두었다가 유효기간이 지나 버리기 일쑤이긴 하다.     


얼마 전 호주로 여행 갔을 때다. 독소를 빼준다고? 눈에 좋다고? 혈관을 튼튼하게 해 준다고?  전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닌가! 우리 부부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사다보니 건강보조 식품을 사는데 천만 원 가까이 쓰고 왔다. 덕분에 여유 있던 통장 잔고는 바닥이 나고 말았다. 

며칠 먹다가 도리질을 치는 내게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물 한 잔과 약을 내민다. 도대체 그 약은 아무리 먹어도 줄지를 않는다.     

또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제 모임에서 만난 여자는 건강식품을 너무 많이 먹어 간수치가 올라갔단다. 

“에고 내 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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