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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우리는!

by 마미의 세상

망상 해수욕장과는 정말 이상한 악연이 있다.

우리 부부는 큰 시누이와 내 친구의 소개로 대학 입학식 있기 바로 전 주인 2월에 만났다.

“xx 씨는 대학 새내기이고 나는 4학년이라 취업 준비를 해야 하니 우리 주말에 도서관에서 만나는 거 어때요?”

촌스러운 장발 머리에 007 까만 가방을 들고 나온 그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딱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주말마다 도서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7월이 되었을 때, 친구네 커플은 같이 망상 해수욕장으로 놀러 가잔다. 사실 그때까지도 그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캠핑이 처음이었고 여름에 바닷가로 놀러 간다니 구미가 당기는 데다 친구네와 함께라 외박에 대한 염려도 없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통통했던 내 몸매는 생각도 안 하고 수영복 등 비치용품을 잔뜩 구비하고, 푸른 하늘과 갈매기 그리고 쉴 새 없이 파도치는 동해만 떠올리며 휴가 떠날 날을 기다렸다. 그날 해변 분위기도 좋았고 날씨는 더 끝내줘 그저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마침 친구네 커플이 저쪽 해변으로 산책을 가자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새로 산 수영복에 비치가운을 걸치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잔뜩 폼을 잡고 나오는데

“xx 씨 다리는 왜 그렇게 굵어요?”

‘이런 미친놈!’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바로 텐트로 들어가서는 당장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당황하며 내 손을 잡는 그를 세차게 뿌리치고 엉엉 울며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 몇 번의 싸늘한 통화만 오가다가 12월의 어느 날 우리 집 근처로 그가 찾아왔다.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애타게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뺏더니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서는 책 마지막 페이지에 ‘사랑한다’고 적었다.

‘쳇’

이미 상처받을 대로 받은 내 마음이 그런다고 열릴까? 여린 내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혀 버렸고 두 번 다시 무례하고 눈치 없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2년 후, 그는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는 뜬금없이 우리 엄마를 찾아왔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마침 사귀던 사람들과 헤어졌을 때였다. 그도 더 이상 도서실에서 만나 데이트하던 꾀죄죄한 공대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고 양가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부부가 되었다.


몇 년 전, 남편의 부부동반 모임으로 망상 해수욕장에 다시 가게 되었다. 하필이면 남편이 사고를 친 직후였다. 갑자기 자주 산을 찾는 그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껴 몰래 그의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한 카톡방에 그 일당들이 산에서 여자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예쁘지도 젊지도 않았고 마치 족발 집 아줌마 같은 여자 들이었다. 남편은 그녀들 가운데 끼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하트까지 만들고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당장 남편에게 그만 다니라고 경고를 했지만 그 산행은 계속 이어졌다. 참다못해 그 모임을 추진했던 남편 친구에게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는 불호령을 내렸다. 덕분에 남편과 그 친구는 헤어졌고 내 뒤통수로 갖은 욕이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 망상 해수욕장에 가게 된 것이다.


불편하게 식사를 마친 후 다 함께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검푸른 밤바다를 보자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치코치 없는 남편은 거나하게 술에 취해 바다가 떠나도록 소리를 높이며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일행과 떨어져 해변 벤치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친구의 부인이 다가와 앉으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눈치만 보던 다른 친구들도 슬그머니 다가왔다.

“oo아 저기 가운데에 가서 앉아봐. 어때 누가 더 끌리냐?”

“물론 이쪽이지.”

이런 미친! 아직도 상황 분석을 못한 남편은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친구 와이프의 팔을 덥석 잡는 게 아닌가?

남편 때문에 그날 그 밤바다를 밤새 울며 돌아다녔고 땅을 치며 그와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왜 내가 저런 인간과?”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일행들과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고 시댁인 여주로 가서는 시부모님께 이런 사실을 전부 말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며느리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란 시아버님께서는 남편에게 각서를 쓰게 하며 이 일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절대로 망상 해수욕장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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