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배꼽이라는 쿠스코

쿠스코 대성당,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 12 각돌

by 마미의 세상

페루의 쿠스코 지역은 잉카제국이 번영하기 전부터 여러 고대 문명의 거주지였다. 900년에서 1200년 사이에는 킬케문화가 존재했고, 13세기 중반부터 잉카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넓고 파아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과 대조적으로 비탈진 산자락에는 아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곳에 5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안데스만 넘어가면 브라질의 광활한 땅이 있는데 7,000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안데스의 고봉을 넘지 못하고 해발 3,360 미터나 되는 고산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잉카 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중심지였던 이곳을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 즉 중심이라는 뜻으로 "쿠스코"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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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스페인식 사각형 분수 공원이 있고 아르마스 광장의 동쪽에는 비라코차라는 잉카의 신전 터에 세워진 쿠스코 대성당이 있다. 광장의 남쪽에는 잉카의 우아이나 카팍 황제의 왕궁터에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가 있다. 아름답지만 잉카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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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에서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잉카의 9대 왕인 파차쿠티 황제, 한 손에는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짚고 한손은 내밀어 잉카의 부활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쿠스코에 오기 전부터 고산병 약을 먹었지만 일행들은 숨이 가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감기몸살에 구토 설사까지 다양한 증상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이곳에서 태어났다 해도 그들도 이런 악조건을 이기며 살아갈 게다. 실제 길거리에는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잎을 팔고 있고 호텔에도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커피 대신 마테차 종류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쿠스코 대성당

작은 부족국가였던 잉카는 15세기 중반 9대 왕인 파차쿠텍의 시대부터 강대한 국가가 되었다. 남동쪽의 창카족을 격퇴시키고 황제로 등극한 후 나스카 친차지역을 점령, 북쪽의 치무 문명을 정복하며 북쪽으로 에콰도르를 지나 콜롬비아의 일부와 남쪽으로는 칠레의 중부 지역까지 진출하였고, 남동부 지역의 라플라타 강 유역까지 제국의 영토로 삼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제국을 형성하였으나 1532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쿠스코에 도착해 말을 탄 기병대가 달리며 총과 화약으로 기선 제압을 하자 순식간에 7,000여 명이 죽고 아타왈파 왕까지 죽자 잉카제국은 어이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피사로는 파차쿠텍이 머물던 궁전을 부수고 100년 가까운 공사 끝에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을 지었다. 성당 건설을 위한 석재는 쿠스코 옆 언덕에 있는 삭사이와만에서 가져왔다. 내부는 페루 최대의 광산이었던 포토시 광산에서 캐온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성당 안에 있는 검은색 예수상과 최후의 만찬 그림이 유명하다. 메스티소 화가였던 마르코스 싸 파타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원주민을 핍박했던 피사로를 악인에 비유해 검게 그렸으며 식탁의 음식은 페루 전통 음식인 기니피그 요리를 그려 넣었다.


쿠스코 대성당이 있는 아르마스 광장은 스페인 제국의 군인들이 군대를 서열 하던 연병장으로 잉카문명과 식민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조화로운 모습을 이루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L1071648.jpg 광장의 중심에는 카테드라인 쿠스코 대성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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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11대 왕 우아이나 카팍의 궁전 자리에 있는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는 대성당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섬세하고 우아한 조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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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로가 살았던 잉카의 궁전에는 12 각돌이!

12각 돌 등은 잉카제국의 건축 기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쿠스코 광장에서 아뚠류미옥 거리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원래 13개의 궁전이 있었는데 프란체스코 피사로가 12개를 부수고 제일 좋아 보였던 한 채를 남겨 자기가 살았다는데 원래 잉카 로카가 살던 곳이다.


돌과 돌 사이에는 석공의 굵은 땀방울과 능숙한 손놀림이 배합되어 접착제가 없는데도 잘 붙어있다.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돌의 수직 표면은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었다. 이는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돌과 돌사이의 경계선에 닿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다. 오랫동안 물이 닿고 고이면 돌이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고 건축물 전체가 약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들의 숨은 지혜와 정교함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지진이 났을 때 스페인 제국이 지은 건물은 무너졌지만 잉카의 건물은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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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각형이나 되는 거대한 돌을 다른 돌들과 짜맞춘 듯 잘 끼워져 있다


아래 사진의 톡 튀어나온 부분은 운반할 때 지고 갔던 흔적이라고도 하고, 횃불 등을 걸어놓았던 곳이라고도 하고, 해가 떴을 때 그림자로 시간을 봤다고도 하고, 그냥 그림자가 지는 것을 데코용으로 봤다고도 하지만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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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잉카시대의 건축물과 달리 반대편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잉카인들은 퓨마를 신성시했다. 12각 돌이 있는 건물 한쪽 벽도 자세히 보면 퓨마 형상을 하고 있다.

그들은 도시를 만들 때 머리 부분은 평소에는 종교의식을 행하는 중심지이자 전시에는 요새로 활용했던 삭사이 와망을, 허리는 태양 신전인 코리칸차(현재는 산토도밍고 성당)를, 제사를 지내던 심장은 무언 카파타 대광장(현재 아르마스 광장) 그리고 꼬리는 와타나이 강과 다른 인공 수로가 만나는 곳으로 만들었다. 대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상태로 뻗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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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산지역과 잉카의 유적이 어우러진 풍경이 꽤나 이색적이다. 특히 잉카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힘주어 그들의 문명을 설명하던 가이드의 초롱초롱하던 눈매가 아직도 선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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