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추픽추에 오르는 날이다. 솔직히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남미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이나 사진에서 보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잔뜩 흥분해서는 카메라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비를 챙기고 방을 나섰다.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내려왔던 우루밤바의 숙소는 쿠스코보다 저지대인 데다 마추픽추나 오얀따이 땀보 등의 유적지를 탐방하기 좋다. 라마의 나라라더니 호텔 앞에는 흔한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닌 라마가 돌아다니고 있다.
전용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오얀따이땀보다. 바로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레일을 타는 곳이다.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은 4~5일 동안이나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마추픽추에 오른다고 한다. 20만 원이 넘는 기차요금이 비싸서가 아니다. 자연을 만끽하며 숨은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편하게 1시간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쾌청했던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며 가방 속의 우비를 확인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천장이 뚫린 기차는 답답하지 않고 주변 경관을 보며 갈 수 있어 좋았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장맛비가 되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마추픽추에 갈 수 있나요?"
"네 갑니다."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저 예정된 코스만 다녀오면 그만이라는 거지.
우린 멋진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버스 탈 시간이 남아 있다고 각자 시간을 보내다 오란다. 커피숍에 들어간 우리는 창밖만 내다보며 안절부절못하다가 애꿎은 하늘을 바라보며 제발 비가 그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세상에 이 빗속에 마추픽추를 가겠다고 온 사람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버스가 우리 앞으로 10대는 간 것 같은데 아직도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30 분 정도를 올라갔다.
비를 맞으며 산행이 시작되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로 아래의 길과 저 멀리 구름으로 뒤덮인 봉우리뿐이다. 몇 년 전 장가계에 갔던 날처럼 구름 낀 봉우리만 보고 오는 것은 아닐까? 발걸음이 무거웠다.
드디어 목적지까지 올랐다.
"어디가 마추픽추예요?"
가이드가 가리키는 쪽에는 그저 뿌연 안개만 보였다. 그래도 몇몇은 그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비를 맞으며 현지 가이드는 마추픽추에 대해 설명했다.
쿠스코는 퓨마의 형상이더니 마추픽추는 콘도르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란다. 잉카인들은 이곳이 스페인에게 발견될까 봐 저 아래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였단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속에 만들어진 이 공중도시는 400 년 동안이나 숨겨져 있었다.
이 도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다. 그는 어딘가에 잉카의 황금도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찾아 헤매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꼬마를 만났다. 그 꼬마는 부모에게 누가 묻더라도 마추픽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라는 말을 누누이 들었지만 빙엄에게 이 위에 무언가 있다는 말을 흘렸다. 빙엄은 1 솔을 그 꼬마에게 주며 가이드를 부탁했다. 마추픽추의 최초의 가이드였다.
빙엄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는 그저 셀바 같은 밀림지역이었다. 빙엄은 밀림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흔적을 60 장 이상의 사진을 찍고는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그곳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빙엄이 찾는 곳은 이런 도시가 아니라 황금의 도시였다.
빙엄은 "잃어버린 잉카의 도시"라는 기사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기고함으로써 마추픽추는 세상에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다. 하와이 출신의 빙엄교수는 고고학자가 아닌 역사 교수다. 특히 중남미 역사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페루를 방문했다가 유적지를 발견하는 큰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잉카인들은 왜 하필 이 높은 곳에 도시를 만들었을까? 태양신을 모시기 위해 최대한 하늘 가까이에서 제사를 지내려던 것일까? 도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돌을 옮겨와 집을 지은 걸까? 최상의 위치에 최고의 기술력으로 지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늘 비가 많이 온다더니 저 높은 봉우리와 구름들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을까? 모든 게 의문 투성이지만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이 도시는 세계 최대의 불가사의로 남게 되었다.
바로 뒷산을 가리키며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늙은 산이라 하고, 바로 앞 산을 가리키며 와이나 픽추는 젊은 산이라고 말할 때부터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더니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 언덕 끝으로 달려가서는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이 순간의 감흥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수없이 보아왔던 이 모습을 그냥 처음부터 보았더라면 별로 감흥이 없었을 게다.
한 번 걷히기 시작한 구름은 어쩌면 구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모두 거두어 가더니 쨍한 햇볕까지 비추는 게 아닌가? 같이 올라왔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느새 다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올라오는 사람은 우리만큼 이 풍경이 반갑지 않을 게다.
해발 2,500 미터가 안 되는 마추픽추는 쿠스코보다 낮지만 봉긋이 솟아있는 와이나 픽추 아래 들어선 도시는 주위의 높은 고봉들에 둘러싸인 채 붕 떠있는 것 같다. 잉카인들에게 이곳은 천혜의 요새였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작은 돌로 된 문은 도시로 들어가는 문이다. 돌로 된 건축물만 남아 있지만 아마도 그 위에 지프라기 등으로 된 지붕을 얹고 살았을 게다. 집들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지만 산비탈에 오목조목 들어앉은 것이 정겹다. 과연 이곳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얼마동안이나 살았을까?
창문이 각도가 약간 안으로 굽어있는 것은 지진을 견디기 위해서요, 안에 대고 말을 하면 바로 옆 창문에서 울렸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던 지역이라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바로 무너지기 때문에 석조 건축물은 빈틈없이 지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태양 신전이 있다. 신전에는 창이 있는데 이곳에 들어온 빛을 보고 시간과 계절을 예측하고 달의 크기를 보고 월식을 가늠했다고 한다. 휘영청 달이 밝을 때의 모습은 얼마나 멋질까?
건너편에는 계단식 논이 이어졌다. 수로에는 아직도 물이 흐르고 있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토록 과학적으로 도시를 만들었을까?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
또 다른 곳에는 이 도시 건설에 쓰였을 돌들이 마구 뒹굴고 있었다. 아무 도구가 없던 잉카인들은 이 거대한 바위를 쪼개기 위해서 바위 사이에 금속이나 나무를 박아 넣고 물을 부어 놓았단다. 밤새 얼었다가 다음날 녹으면 큰 돌은 갈라지고 만다. 이런 방식으로 이 큰 도시를 만들었다니!
다음 공간은 신께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신선한 의미를 갖는 까만색의 야마를 바쳤는데 어떤 세리머니를 한 후에 그 동물을 잡아먹었고 3이라는 숫자를 신선하게 보아 무엇을 하든 3개씩 사용했다고 한다.
빙엄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도 야마의 뼛조각이 있었다고 한다. 창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 조각상을 두었단다.
건물 사이에 있는 레일에는 실제로 기차가 다닌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 데 큰 개가 여러 마리 있었다. 그때 기차가 달려오자 달리는 기차 앞을 막아서며 마구 짖는 것이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지 않을까 조바심을 냈지만 아마도 매번 그랬던 것인지 주위의 사람들과 기관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천천히 지나갔다.
마추픽추에 큰 감흥을 받았고 식사도 맛있게 했다. 식사 중에 악사들이 부르던 엘 콘도 파사는 어찌나 마음속에 스며들던지. 정말 최고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