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칼라파테, 엘 찰튼, 카프리 호수
버스 차창으로만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고 온 것이 많이 아쉬웠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짧게나마 트레킹 코스가 있었다. 피츠로이 트레킹은 파나고니아 3대 포인트 중 하나로 피츠로이 산의 카프리 호수까지 산책 삼아 다녀오는 것이다.
한국 지인에게 전화라도 오면
"비행기 타는 거 지겨워 죽겠다."
"아니 누구 약 올리는 거니? 난 이 겨울에 비행기 타고 여행이나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이렇게 비행기 타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처음이다. 물론 전에 해외여행 가느라 10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을 때 죽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때는 오고 갈 때뿐이었다.
" 14번이나 탔다고요? 스튜어디스도 28일 동안 그렇게 많이 타지는 않을걸요"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렇게 버스로 이동하는 구간이 참 반갑다. 이번 여행에서 국경을 넘을 때 버스로 이동한 적이 두 번 있었다. 볼리비아 사막의 고원지대에서 칠레로 넘어갈 때, 또 칠레 파타고니아에서 아르헨티나 엘 칼레파테로 갈 때였다. 좋다고 느꼈던 것은 아마 차창 너머로 풍경 보며 이동하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평온한 풍경에 취해 비몽사몽 하다 눈을 떠보니 전에 보았던 풀덩이가 날씨 탓인지 공해 때문인지 거무튀튀하게 지나가고 있다.
피츠로이로 가기 위해 우리가 묶었던 호텔이다. 일출을 보러 새벽에 나가보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아래 엘 칼라파테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빛나는 빙하수가 모인 호수와 설산 아래에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은 칼라파테로 파나고니아 여행의 중심지다.
3000 미터가 넘는 산들이 묵묵히 차창으로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불타는 고구마"로 불리는 피츠로이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려갔다. 거센 바람은 큰 버스를 마구 흔들어 댔고 요란한 바람 소리가 차 안까지 들려왔다. 솔직히 바람소리 보다 귀에 거슬렸던 것은 산악 가이드와 버스기사의 수다다. 도대체 뭐라고 저렇게 오랫동안 떠드는 걸까? 피츠로이에 대해 설명이나 해주면 좋으련만.......
엘 찰튼에서 피츠로이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트레킹에 앞서 산악가이드는 우리에게 준비운동까지 시켰다.
잠깐 비탈길을 오르자 방금 떠나온 엘 찰튼이 훤하게 내려다 보였다. 피츠로이 산 때문에 유명해진 마을이다. 산에는 거센 바람 때문인지 키가 큰 나무는 살지 못하고 작은 나무만 자란단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바람도 그다지 세지 않은 데다 하늘도 예뻤고 푸른 오솔길도 거의 평지 수준이라 걷기 좋았다.
이곳 바람은 어떤 때는 시속 140 킬로미터나 되는데 그를 무시하고 산행에 나섰던 등산객 10 명이 죽는 사고가 있었단다. 그리고 보니 길 양 옆에는 부러지고 넘어진 나무가 유난히 많다.
얼마쯤 올랐을까? 숨이 차서 어딘가에 앉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눈앞에 멋진 계곡이 나타났다. 아마 이 맛에 사람들이 산을 찾지 않을까? 요즘은 주로 나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많다. 설마 사람들이 꺾인 나무를 장식해 놓은 것은 아니겠지!
드디어 카프리 호수다. 호수 위로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불타는 고구마 "다. 거대한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훼방꾼 구름들을 화악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거의 1년 내내 저 모습이란다. 혹시 우리 팀 멤버 중 날씨 요정이 있었다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매서운 바람맞으며 도시락을 다 먹을 때까지도 구름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우리 팀 인솔자는 우리가 고구마 고구마 하고 다니는 이유를 묻는다. 바로 해 뜰 때 빨갛게 해가 비추는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을 몰랐단다. 아쉬운 마음은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달래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에 파타고니아 지역을 트레킹으로만 다녀오고 싶지만 28일 여행 후 20일이 넘어도 아직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 몸상태를 보니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요만큼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