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로이 트레킹을 마친 후 다시 엘 칼라파테로 향했다. 내일은 빙하를 보러 간다. 작은 딸이 캐나다 유학할 때 갔던 캐나다 여행에서 설상차를 타고 빙하로 올라가 얼음 위를 걸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 다음으로 크기가 큰 데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어떤 모습일까?
빙하 전망대가 가까워 지자 강에는 "미라도르 라고 그레이"에서 보았던 것처럼 녹아내린 빙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 남단이라 강설량도 많은 데다, 빙하 말단부의 바닥 지형이 빙하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 그동안 잘 유지되어 왔던 빙하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나 보다.
현지 가이드가 보여준 사진을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빙하는 전망대 바로 앞에 있었지만 최근 2년 동안 700 미터나 뒤로 후퇴하여 빙하는 현재 전망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독특했던 빙하의 긴 뿌리 구조도 무너지고, 빙하 두께도 연간 5.5미터나 줄어들었단다. 앞으로 저 강의 수위는 앞으로 얼마나 더 높아지려나? 몇 년 후에는 현재의 전망대에서는 빙하가 잘 보이지도 않겠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우리는 전망대 아래로 내려갔다. 짙푸른 얼음벽의 결은 어찌나 투명한지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지구온난화 걱정은 뒤로 한 채 빙하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멋대로 휘고 갈라진 얼음 덩어리는 지금도 뿌리 쪽이 강물에 녹고 있는 것도 모르고 서로 얼굴을 맞댄 체 새로 온 구경꾼을 보며 수군대고 있다.
빙하 위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산이 모레노 산이다. 아르헨티나의 탐험가이자 과학자였던 프란시스코 모레노의 이름에 페리토(전문가라는 뜻)를 붙였다.
모레노는 칠레와의 국경 분쟁이 일어났을 때, 국경 확정을 위해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 아르헨티나 쪽 입장을 확실히 하여 국토 확정에 기여한 공이 컸다. 게다가 자신의 광대한 사유지를 정부에 기증하며 최초로 국립공원 설립을 주도하였다고 한다. 이에 빙하는 그의 이름을 따서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되었다.
멍하니 빙하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렸다. 놀라 눈을 돌려보니 그 순간에도 빙하는 녹아 부서지고 있었다. 거대한 얼음 벽은 호수의 남쪽을 가로막는 천연 빙하댐을 형성하고 있는데 빙하수와 강물로 수위가 상승하면서 그 수압으로 빙하 장벽 아래가 뚫리고 물이 새어 나오다가 아치형 모양의 얼음이 폭발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더 이상은 녹지 않아야 이상 현상도 없어지고 아름다운 빙하도 계속 볼 수 있을 텐데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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