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기로 유명한 칠레 국경을 통과하고는 다시 고원지대를 달렸다. 얼마 동안은 볼리비아에서 처럼 푸석한 땅에 자라는 풀덩이들이 지나가더니 드디어 푸른 농작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와 달리 황량함도 고산병도 사라졌다. 깔라마는 산티아고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룻밤 머물렀던 도시다. 황량한 사막 지대에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도시는 광산 도시였다.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대륙의 끝 빙하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칠레를 여행할 때는 사계절의 기후를 다 느낄 수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와의 남미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는 아타카마 사막 일대와 광산개발권 얻고 영토는 30% 이상이나 넓어졌다. 특히 사막에 매장된 초석과 구아노 덕분에 칠레는 아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산티아고는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이 그들의 수호성인의 이름을 붙여 만든 도시인데 1818년 독립 선언 이후 칠레의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다. 만년설이 쌓인 산맥으로 둘러싸인 안데스 바로 아래 해발 500~600 미터의 지대에 있다. 1880 년에는 질산염을, 20세기에는 소금을 채취하며 경제가 부쩍 발전하며 칠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벤이 테스 공항을 나와 버스가 마포초 강을 건너며 본격적인 시티투어가 시작되었다. 남미 대륙 곳곳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무기광장이라는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이곳 역시 식민지 시대의 유럽풍 건물부터 현대적인 건물이 혼재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산티아고를 처음 만들기는 했지만 침략자였던 에스파냐의 발디비아 장군의 동상도 있었다. 그 동상의 장군은 말고삐도 없고 지도도 펼치지 않고 있다. 바로 고삐가 없어도 말을 움직일 수 있고 지도가 없어도 이곳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발디비아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산티아고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두 개의 높은 탑과 웅장한 돔이 돋보인다. 바로크와 네오 클래식의 건물로 식민지 역사와 종교적 유산을 잘 보여준다. 잦은 지진으로 몇 번이나 파괴되었다가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성당 안에는 금빛 재단과 스테인드 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지하에는 주요 인사들의 묘소가 있다.
모네다 대통령궁은 리모델링 중
1805년에 신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궁에 동전이라는 뜻의 "모네다"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전에 조폐공사가 쓰던 건물을 1846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로 우파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당선되어 대통령궁은 현재 보수 중이었다. 대통령궁 주변에는 그동안의 대통령들의 동상이 있는데 정치를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을 모두 세워 그 본보기로 삼고 있다고 한다.
스카이 코스타네라 전망대는 2010년에 완공된 남미에서 가장 높은 빌딩(300 미터)에 있다. 산티아고를 360도 파노라마 전망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와인은 처음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유럽 품종의 포도를 가지고 왔지만 안데스와 태평양 연안의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더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 탄생되었다. 마이포 밸리와 콜차과 밸리에서는 레드와인이, 카사블랑카 밸리에서는 화이트 와인이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와인이 만들어지는 공장이다. 레드와인은 철로 된 통에 포도를 넣고 15일 동안 발열을 하는데 청포도는 껍질 없이 넣지만 레드와인은 향과 색상을 살리기 위해서는 껍질까지 넣는다고 한다. 발열 후 통을 옮겨 내부 온도를 10도 정도로 유지하며 18개월 동안 발효를 시키는데, 포도주 종류도 5가지나 되고 생산과정이 다 다르단다.
와인의 생성 과정을 들은 후 시음도 하고 직접 사기도 했다.
발파라이소 벽화마을을 보기 위해 간 곳은 소토마요르 광장이다. 프랏부두와 마주한 광장 정면에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지어진 해군 총사령부가 있는데 지하에는 해군 영웅들의 묘소가 있다. 칠레가 선진국으로 클 수 있었던 것은 페루와 볼리비와의 전쟁 덕분인데 이때 해군의 역할이 매우 컸다.
경사형 엘리베이터인 아센소르 콘셉시온이다. 가파른 언덕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운송수단이다.
광활한 태평양을 바라보는 고지대에 벽화마을이 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던 집이 있다. 네루다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시를 짓다가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집을 옮겨와 살게 된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쓰던 그는 비밀경찰의 표적이 되었고 그를 잡아가야 하는 오스카마저 네루다의 문장 속에 매료되었다지만 어느 날 네루다는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처음 달동네에 살고 있던 남자들이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려면 자기 집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항구에서 페인트를 구해다 노랑 빨강으로 집 외벽에 그림을 그려놓다가 마을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지금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발파라이소의 역사를 대표하는 항구인 프랏부두로 파나마 운하가 생겨 아메리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통과하기 전 19세기에는 남미에서 제일 잘 나가는 항구였단다.
Sin miedo는 스페인어로 "두려움 없이"라는 뜻이다. 피노체트가 두려움 없이 살아가자고 쓴 것을 보고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힘을 얻었다고 한다.
바닷가로 이동 중에 뜬금없이 서있는 이스타 섬의 모아이 상은 현재 라빠누이 원주민들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시티투어 일정을 끝내고 내일은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간다. 파타고니아는 현재 5도에서 11도까지로 기온이 낮다고 한다. 페루에서 시작해 남으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아메리카의 남쪽 언저리까지 왔다.
파타고니아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