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으로의 봄나들이

유기방 가옥, 천리포 수목원

by 마미의 세상

밤새 내린 봄비가 화려한 벚꽃을 다 떨어뜨렸을 때, 하늘을 보며 원망했다.

"일주일 정도는 남겨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투덜대고 있는 내게 친구가 서산의 유기방가옥으로 수선화를 보러 가잔다. 몇 번이나 가려다 못 가본 곳이라 냉큼 따라나섰다.


유기방 가옥의 뒷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수선화를 보고는 뭔가에 홀린 듯 꽃밭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 예쁜 모습을 담아보려 한껏 허리를 숙여보지만 다섯 개의 꽃받침 사이로 나팔이라도 불고 있는 듯한 수선화 꽃은 뭐가 그리도 수줍은지 외면한 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제발 조금만 고개를 들어줄래?'

하긴 나도 한때는 저렇게 수줍어서 고개를 들지 못할 때가 있었다.

문득 햇살 같았던 그때가 스치듯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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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은 조선 후기 상류 양반가의 전통 한옥이다. 한동안 버려졌던 집에 후손들은 수선화를 심었고, 번식력이 강한 수선화는 한쪽 산자락을 가득 메우며 꽃바다를 이루었다. 고즈넉한 한옥 너머에 꽃과 소나무가 가득하니 한국적인 정취가 더 느껴진다. 게다가 완만한 동선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다. 이렇게 예쁜 꽃길을 걸으며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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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수선화에 둘러싸인 한옥은 정겹기 그지없다. 어깨를 마주하며 한껏 치켜 올라간 기와지붕, 작고 네모난 창너머로 보이는 투박한 장독대, 낮은 담장 따라 보이는 삶의 흔적들까지 보고 나면 공연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기억조차 희미해진 어릴 적 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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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 수목원은 1962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의 페리스밀러(한국이름 민병갈) 박사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다. 바닷가 바로 옆에 900여 종의 목련과 다양한 나무를 심어 놓았다. 여러 수목원을 다녀봤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꽃을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인 것 같다. 숲과 해안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차가운 해풍 때문인지 서울에서는 이미 다 져버린 목련꽃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생생하다. 게다가 꽃의 색과 모양도 다양하다. 연분홍, 진분홍, 노랑, 별모양인 큰 별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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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닥 나무(좌)


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바닷가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걸음도 생각도 느려진다. 늘 쫓기듯 뛰어다니는 내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냐고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삼지닥 나무의 꽃을 본 것도 처음이다. 민 박사는 어떻게 이곳에 수목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꽃과 나무는 어제 내린 비를 머금어 아주 싱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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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식동굴이 있다 해서 찾아간 곳은 파도리 해수욕장이다. 마침 썰물이라 훤히 드러난 갯벌과 깎아지른 절벽을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바닷물과 바람에 깎인 절벽은 결을 내며 부서지다 어떤 곳에는 희귀한 동굴까지 만들었다. 두 갈래로 뚫린 동굴은 인증숏 찍기 딱 좋아 연인들이 많이 찾아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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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으로 시작해 바다까지 이어진 당일치기 여행 코스, 너무 좋았다. 수선화가 채 자라지 않은 것이 많았으니 앞으로 며칠 후가 더 장관일 것 같다. 흠이라면 입장료가 꽤 비싸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로 우대도 70세부터다. 아직 어르신으로 보지 않으니 좋아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