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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11. 2018

아픈 손가락

5시가 되어가자 하나 둘 친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올해로 아흔 번째 생신을 맞이하는 시아버님의 생신날이다. 오 형제 중 맏형인 아버님과 넷째 작은 아버님만 살아계시나 남편의 사촌이 25명이나 되니 부부만 모여도 50명이 넘는다.


시할아버지 생신상을 차리는 것은 큰집 며느리인 형님과 나의 몫이었다. 시할아버지 생신상에 오를 메뉴 하나하나까지도 체크하시던 아버님의 효심은 대단했다. 그 극진했던 마음을 알기에 90회 생신을 음식점에서 뚝딱해치우는 것이 죄송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는 부모님 생신을 집에서 꼬박꼬박 일박이일 행사로 치렀었기 때문에 90회 생신을 저녁에 만나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것이 썰렁하기 그지없다. 빵집을 하면서도 일박이일 행사를 빠뜨리지 않고 해 드렸건만 나 말고 할 사람이 없어지자 2,3년 전부터는 여주 식당에서 대충 한 끼를 때우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주름진 얼굴 속에 못마땅하신 마음이 읽어졌지만 애써 외면한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은 반가움에 이리저리 악수하고 인사하고 수다 떨고...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 막내 시누이다. 시동생이 자살한 뒤 아들 하나로는 안 되겠다고 시험관 아이로 어렵게 낳은 둘째가 발달장애아다. 어려서는 잘 몰랐지만 크면서 점차 제어가 어려워지는 아이를 남에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아마도 오늘 모임에도 그 아이 때문에 참석을 안 하려다 억지로 온 것 같다. 


초췌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너무 속상해서 옥상에서 둘이 떨어져 죽으려고 했었어!" 

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녀가 막내라 철부지라고 생각했다. 에미가 어디서 그런 말을 하냐며 핀잔을 했다. 

작년 김장날 같이 내려온 아이는 갑자기 같은 말을 되뇌며 고집을 부렸다. 안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건만 말을 듣지 않자 얌전한 사위가 느닷없이 아이 빰을 갈기는 것이 아닌가? 온 가족이 놀랐고 시누이는 그 녀석을 안고는 한없이 울고 말았다. 그제야 그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고생으로 그늘로 뒤덮인 그녀가 단상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아들 모습에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박수까지 치고 있다. 저렇게 예쁜 그녀인데...  잘난 첫째 아들도 벌써부터 동생에 대한 짐을 안고 산다.  자식보다 부모가 오래 살 수는 없는 것이니 막연한 부담감이 그를 누를 것이다.


작은 딸이 "고모는 요즘 잘 지내고 계세요?"라는 말에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언니는 이렇게 예쁜 딸이 둘이나 있으니 너무 좋겠어요" 쌓였던 그녀의 아픔이 터지고 말았다. 

연회가 끝나고 난 뒤 사진들을 정리하여 동영상을 만들어 발송하고 사진 보내주고. 휴~~

정 많은 막내는 감사 톡을 보내며 언제 그랬냐는 듯 수다가 이어진다. 이렇게 밝은 성격인데!

그 가족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고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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