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우미견 훈련/동거일기
이름: 핀치
생년월일: 2023. 04. 17
견종: 래브라도 리트리버 (진한 갈색)
몇 년 전부터 안내견퍼피워킹을 하고 싶어 알아보고, 연락해 보고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번번이 나의 스케줄은 24/7 케어가 필요한 친구를 학생신분으로 데리고 있어야 하고, 게다가 매주마다 30km 떨어진 곳에서 훈련을 받으러 가야 하는 commitment 때문에 다음에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수의대를 생각하던 때에 동물병원 알바를 해보다가 나는 동물을 치료하는 것을 사랑하는, 그 아이의 생명을 책임져주고 싶은 것보다는, 그 아이가 나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위해서 치료를 하는 그런 열정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동물과 주파수를 맞춰가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거워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수의대를 포기했다. 아 물론, 사람과 동물 사이의 큰 차이를 좁혀주는 게 수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그 과정이 나에게 즐겁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동물이 아플 때 그걸 나타내면 이 가족에서 추방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픔을 숨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호자들이 참 많았다. 또 다른 보호자는 본인이 이 친구의 죽음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안돼서 간질환으로 고통이 너무너무 심하고 더 이상 손 쓸 바가 없는 친구를 최대한 빠른 안락사가 아니라, 일주일이나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노랗게 변해버린 아이를 보는 내내 인류애가 꽤나 많이 사라졌었다. 이걸 평생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었다. 동물들과 사람이 함께 발맞춰가는 기쁨을 다른 사람과도 공유하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동물들에 대한 존중도(?)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나는 PADS라는 단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 단체에서는 안내견은 훈련하지 않고, 다른 assistance dog 중에서도 service dogs, PTSD service dogs, hearing dogs, Facility dogs를 양성한다. 이곳 역시 사회화 훈련이랑 기본 매너 훈련을 위해서 8주 - 1년 반에서 2년 정도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케어하는 과정인 puppy raising 프로그램이 있었다. 마침 사람이 부족해서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의 동의를 구한 후 바로 신청했다.
강아지가 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한 달간 마치고 (그 과정이 무엇인지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강아지를 기다리던 중에, 약 3주 뒤에 매칭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이름은 핀치, 암컷, 5개월, 그리고 시터를 여러 번 옮겼다고 한다. 아마도 raiser 가 없어서 sitter (강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raiser 하지 않고 임시로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sitter라고 한다. 이것도 다음에 다루겠다.)를 옮겨 다닌 듯하다.
4월 11일.
핀치가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 된 날이다. 6일 뒤면 핀치는 1살이다.
매주마다, 매달마다 핀치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나의 다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매달 PADS 단체에서 "Monthly Pupdate"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그거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처음 만난 핀치는 한 2주는 정말 나도 핀치도 적응하느라 애썼다. 정말 많은 정보들이 한 번에 주어졌는데 매일매일 성장할 나이였던 6개월 된 핀치에게 (나에게 오고 6일 뒤에 핀치는 6개월이 되었다) 나는 용기 있게 많은 경험을 시켜줬어야 했는데, 되려 겁이 나서 public에 많이 데리고 다니지를 못했다. 오히려 핀치를 갈팡질팡 하게 데리고 다녀서, 핀치도 꽤나 혼란스러워했었다.
더 이상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해서 나는 PADS google classroom에 있는 2021년도부터 현재까지 모든 자료들을 다 보면서 최대한 빨리 훈련법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Loose leash walking (줄 당김 없는 산책), Tucked in Sit, Folding down, 등등 나에겐 굉장히 생소한 훈련법들이 가득했고,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설레게 했다. 반려인으로써 그동안 궁금했던 훈련법들, 북미 지역에서 선호하는 훈련법들이 무엇일지 궁금했었는데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너무 행복했다.
6개월 중에 12월 한 달은 핀치가 첫 heat (월경)를 해서 public access 가 제한 됐었다. 다른 개들, 특히 수컷들을 만나서는 안됐고 하루종일 doggy panties를 착용해야 했다. 강아지들은 일 년에 2-3번, 적으면 한번 정도 발정이 찾아오는데 이 기간은 약 30일이 지속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달은 개인 사정으로 펫시터에게로 보냈어야 했다. 감사하게도 단체에서 활동하는 펫시터들이 있어서 언제든 부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6개월 중에서 실제로 훈련하고 붙어 지낸 건 한 4개월 정도인 듯하다.
지금까지의 핀치는 work drive 가 강하다. 늘 배우고 싶어 하고, 훈련을 하자고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맞추고 싶어서 정말 많은 offer를 한다. 앉아보기도 하고, 켄넬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이렇게 엎드리고 저렇게 엎드리고. 그래서인지 새로운 걸 가르쳐주면 굉장히 빠르게 배운다. 그리고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계단을 내려갈 때 나중에 실제 보조견으로 활동할 때를 대비해서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가는 훈련을 했다. 내가 한 칸 내려가면 핀치도 한 칸 내려가고, 내가 "good" 아니면 "yes"를 하고 (이걸 "marking"이라고 한다. 칭찬을 함으로써 '네가 옳은 행동을 했어. 내가 원하는 게 그거야"라고 알려주는 거다) 먹이를 준다 (강도에 따라서 kibble (사료)를 주기도 하고 다른 간식을 주기도 한다). 정말 웃긴 건, 가끔은 내가 그 계단 훈련을 까먹고 그냥 막 내려가려 할 때 핀치는 첫 번째 칸에서 멈춰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오늘은 이거 안 해?"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또, 핀치는 흥분도가 높은 강아지다. 핀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강아지/고양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핀치는 신나면 앞발을 들고, 줄을 당기며 뛰어간다. 이거를 위해서 정말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정착한 훈련법은 이러하다. 나는 항상 산책을 할 때나 어딘가 나가 있을 때 늘 길을 스캔한다.
훈련 1단계:
1. 저 멀리서 강아지가 오는 게 보이면 나는 일단 줄을 짧게 잡는다.
2. 핀치가 그 강아지를 보지 못하게 루어링 (손에 간식/사료를 이용해서 강아지가 내 손을 따라오게 하는 것.)을 하면서 강아지와 마주치지 않는 길로 갔었다.
3.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가던 길 간다.
훈련 2단계.
1. 거리를 최대한 멀리 두었다. 최대한 멀리라는 기준은 핀치가 다른 강아지를 보았지만 아직 흥분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말한다.
2. 핀치가 다른 강아지를 보았을 때, "nice"라고 말해서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게 한다.
3. 루어링으로 다른 강아지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4. 만약 "nice"라고 말했음에도 나를 보지 않는다면 옆구리를 간질간질하거나 찔러서 다른 강아지를 향한 시선/텐션을 끊어준다. 그리고 루어링
훈련 3단계 (이게 지금 있는 단계다)
1. 거리는 50미터/ 건너편 길 정도까지 좁혀졌다.
2. 핀치가 다른 강아지를 보고 나를 보기를 기다린다.
3. 핀치가 나를 쳐다보면 "GOOD"이라고 말하며 간식을 주고 그 강아지와 반대길로 조금 더 걸어간다.
4. 핀치를 다른 강아지랑 등지게 하고 "Search"라고 말하며 바닥에 사료를 뿌린다. 목적은 핀치가 바닥에 사료를 먹게 함으로써 네 발이 바닥에 있게 하고, 킁킁 거리며 냄새 맡고 찾고 먹는 행동으로 흥분도를 낮춰준다. 이 사이에 다른 강아지는 지나간다.
5. 이 단계의 목적은 핀치가 다른 강아지를 볼 때 "어 다른 강아지네? 내가 핸들러를 쳐다보면 간식이 나오겠구나!" 하고 value 가 핸들러에게 있게 하는 것.
이다음 단계는 핀치가 흥분하지 않는 선에서 점점 정도를 좁혀가는 것이 목표다.
요즘 핀치는 옆옆집 정도 거리에서 강아지를 만나면 엄청나게 노력해서 그 강아지가 아닌 나를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 핀치가 가장 집중해서 배우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다.
장애도우미훈련견으로써 핀치는 카페도, 식당도, 극장도 동행이 가능하다.
그런 곳에서 핀치는 주로 발밑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핀치처럼 흥분도가 높은 친구들은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훨씬 더 어렵고 체력소모가 크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을 이겨내고 엎드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핀치는 1시간이 최대치다. 1시간이 넘어가면 핀치는 자꾸 일어나려고 하고, 한숨을 쉬고, 몸을 계속 긁고, 꿈틀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때쯤 자리를 옮기면 바로 몸을 털고 킁카킁카 냄새를 엄청 맡는다. 다음 장소로 가서는 더 짧은 시간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kibble 보다 좀 더 맛있는 freeze dried beef liver 나 다른 좀 더 냄새나고 맛있는 간식으로 훈련을 한다. 너무 힘들어하면 중간중간 일어나서 움직이게 하고, "search"하게 하고 다시 또 앉고 이렇게 반복을 한다.
이렇게 훈련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핀치는 미친 듯이 장난감을 던지고 놀려고 한다. 집안을 막 뛰어다니기도 하고 엄청 흥분을 한다. 이럴 때는 더 놀아주면 더 흥분하니까 최대한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씹을 수 있는 Benebone 도 주고, 불도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주면 어느샌가 뻗어서 자고 있다.
지금까지 미뤄왔던 핀치와의 이야기들을 이제는 조금 더 성실히 적어보려고 한다.
단순히 핀치와 있었던 이야기뿐만 아니라, 더불어 나의 성장기도 담고 싶다.
핀치와 함께 하면서 나 역시도 조금 더 명확하고, 확실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안녕 핀치!